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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사회

[야성의 사랑학 - 목수정] 지금 우리에겐 사랑마저 사치다

 


야성의 사랑학

저자
목수정 지음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2010-09-27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목수정 그녀가, 연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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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대단히 부자유한 사회다. 부자유함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건 감수성이 무디거나 순응적인 성격이라서 그럴거다. 한국사회에서 비주류, 약자로 분류되는 사람은 생각 외로 많다. 대표적인 것이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외국인(특히 비백인...)' 등이다. 비주류로 차별받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사회의 부자유함을 가장 절실하게 느낀다. 권위주의와 배타적 차별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당연하지 않은 차별을 받는 이들이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은 적지 않다. 오죽하면 취업시즌에 여자동기들이 이런 말을 했을까.

 

"너는 좋겠다. 남자라서. 남자로 태어난 게 일단 스펙이야."

 

나 역시 마초적인 사회에서 남성으로 살았기에 그 말을 100%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 자세히 들여다본 한국사회의 맨살은 그녀들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줬다. 툭하면 '여자들은 이래서 안 돼~'라는 (남성) 중간관리자들을 너무나 많이 봤고 남자들끼리 있을 때는 특히 더 그랬다. 그 외에도 술만 먹으면 '좋은 곳' 가자는 유부남들을 보면서 그네들의 와이프를 안됐다고 생각한 게 몇 번인지 모른다.


 

목수정의 <야성의 사랑학>은 그런 남성들이 꼭 한 번쯤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여성들에 대해 잘못된 편견과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남성들이 진짜 여성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메세지가 많기 때문이다. 저자 목수정은 한국사회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유교문화의 잔재와 이식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강화가 어떻게 한국여성들을 옥죄는지에 관해 통렬히 비판한다. 남성우월주의적 시각을 가진 독자라면 조금 거슬릴 수도 있는 수위의 주장이지만 목수정은 거침이 없다. 원래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고 했으니 차분하게 읽어본다면 많이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그녀의 비판은 날카롭지만 그녀의 글은 따뜻함과 감수성이 묻어나기에 너무 겁 먹을 필요도 없다.

 

<야성의 사랑학>은 단순히 연애와 사랑 이야기만 하는 책은 아니다. 목수정은 그의 넒은 독서량과 특유의 관찰력으로 한국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분석하고 그 기저에 자리하는 사회적 병리현상을 찾아낸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청년세대의 현실을 자조적으로 이르는 신조어)를 바라보는 목수정의 시각은 이게 정상적인 인내의 과정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병리현상임을 금방 알아챈다. 그리고 조언한다.

 

"우선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 합격부터 해라. 괜히 지금 연애 시작해서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서로 망하는 수가 있다. 그 여자 분도 당신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남자라면 더 마음 놓고 사귀려 할 것이다...."

 

청년은 네티즌들의 이 진심 어린 충고를 듣고 "내 주제에 연애는 무슨 연애" 하며 잠시 머리를 산란하게 만들었던 연애 프로젝트를 뒤로 미루었을까? 그렇게 발산되지 못한 젊음은 도서관 형광등 불빛 아래 쓸쓸하게 방전되어 갔을까? 미래를 위해 저당 잡힌 젊음, 방전된 열정들은 모이고 모여서 우울한 구름을 만들어 내고, 그 구름은 그 구름은 도시 위에 우울한 비를 뿌린다. 그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는 한 가지이다. 당신의 마음이 설렐 때, 그 설렘에 화답하라고. 그 설렘을 죽이고 죽이면 다시는 당신을 찾아오지 않는다고. 삶을 모독하지 말라고. 그러면 삶이 당신을 버릴 것이라고.


- 목수정, <야성의 사랑학>, 웅진지식하우스, 2010, 43~44pp.

 

현재를 짓누르는 주변의 욕망과 어둡기만한 미래의 불안에 떨면서 뭔가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만 행복하지 않은 청년들. 부모의 욕망이 투사된 꿈(?)을 향해 달리는 레이스에서 청년들은 철저히 고립된 고독한 존재다. 설사 그 목표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다시 얼마짜리 연애상대 혹은 배우자감으로 재단받는 삶에서 진정한 삶의 행복과 사랑의 만족감을 느낄리가 만무하다. 목수정은 말한다. 지금 당신의 마음에 화답하라고. 삶을 모독하지 말라고. 그렇지 않으면 삶이 당신을 버릴 것이라고. 이런 이유로 저런 이유로 삶의 욕구가 거세된 채 불행을 감내하는 삶을 사는 누군가가 그녀의 말을 듣는다면 조금의 위로를 받지 않을까', 내가 못난 게 아니라 이게 정상이구'하는.

 

목수정은 특히 한국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분석하는데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자본의 지배력이 날로 강화되고 있는 지금의 한국에서, 여성은 현격한 몰락을 거듭하고 있다. 일터에 나가는 것 자체가 굴욕인 월 100만원 이하의 일자리들은 여성들의 안타까운 목구멍을 낚아채고, 남자들은 야근과 술, 성매매, 야동에 빠져 있다. 교육 환경은 지옥이고, 아이들을 향한 성범죄는 급증한다. 비정규직 계약서에 발목 잡힌 그 누구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도록 불안에 장악된 영혼들이다. 내 삶이 한껏 발을 뻗고 꿈을 펼칠 곳이 없는데, 연애도 작동이 안 되는 상황에서 어떤 어미가 또 다른 생명을 세상에 내놓고 싶겠는가? 상위 10%든 나머지 90%든 자본이 아무런 완충장치 없이 찍어 내리는 압력에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버텨 내는 것이 이명박 치하의 우리 삶이다. 이런 환경에서 인간의 이기적인 유전자들은 움츠리고 잠복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 목수정, <야성의 사랑학>, 웅진지식하우스, 2010, 162~163pp.

 

작금의 현실과 여성들의 처지를 짧으면서도 강렬하게 정리한 목수정의 일갈이다. 이보다 더 정확하면서도 적나라하게 우리의 오늘을 표현한 단락이 있을까? 그 중에서도 OECD 최고 수준의 남녀임금차를 자랑하는 한국여성들의 처지는 특히 참혹하다. 식당가서 하루 12시간씩 서빙하고 설거지 하는 아주머니들이 한 달에 얼마나 쉬고 어느 정도의 급여를 받는지 물어보라. (한겨레출판에서 나온 <4천원 인생>보면 여기자가 감자탕집에서 홀서빙 하고 쓴 이야기가 좀 나온다) 여성이란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받는 것은 임금 외에도 너무 많으나 우린 외면하고 산다. 모나지 않게, 둥글게.

 

마지막으로 밤만 되면 술이 얼큰하게 취해 여성을 구매하기 위해 흥정하는 남성들을 위한 목수정의 조언을 소개한다.

 

이 나라 남성들에게 꼭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여자를 사는 짓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멍청한 짓이라고. 그리하여 삶의 희열과 고락을 함께 누리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라고.

 

자신의 매력을 가꾸어 좋아하는 암컷을 유혹하는 보르네오 섬의 새처럼. 자기 자신을 삶을 살아 있는 조각품처럼 멋진 예술품처럼 가꾸어, 그 매력으로 여성을 유혹할 수 있는 남자가 되라고. 돼지처럼 벌어서 변사또처럼 거들먹거리며 여자들을 유린하지 말고. 당신의 매력이 흘러넘칠 때, '()라당' 의원들처럼 욕망을 흘리고 다니지 않더라도, 당신의 매력을 알아보는 멋진 여성들이 분명히 주변에 다가설 테니. 돈을 버는 데 쓰는 시간과 노력을 조금 절약하여 자신의 매력과 지성, 감수성을 가꾸시라고.

 

- 목수정, <야성의 사랑학>, 웅진지식하우스, 2010, 166p.

 

우리는 사랑이라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마저도 계량화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인식의 틀에서 인간의 감정마저 소외되고 말았다. 자기 짝마저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소득, 집안 등 격을 맞춰 찾는 것이 그리 놀랍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시대다. 황폐화된 인간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삶의 희열과 사랑의 기쁨이 빛날리 만무하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이명준이 북쪽에서 회색 광장을 봤다면 우리는 지금 검은 광장을 보고 산다. 생의 기쁨이 거세된 채 물신에게 영혼을 판 사람들이 이룬 광장은 생명의 빛이 사라진 검은 광장이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밤마다 술집과 주점을 전전하고 여성들은 쇼핑을 하며 소비로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회. 아이들은 미친 듯한 입시경쟁의 대열에 몰려 왜 사는지, 삶의 즐거움이 뭔지도 모른채 연명하는 사회. 노인들은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폐지를 줍거나 깡통을 주우며 살아야만 하는 사회. 그 어디에도 건강한 욕망과 감정이 자리할 곳은 없다. 뒤틀린 욕망만이 밤거리 네온사인처럼 번뜩이고 누구 하나 행복하지 않은 이 곳에서 목수정의 <야성의 사랑학>은  반가운 책이다. 김규항의 추천사처럼 목수정은 차근차근 들려준다. 황폐를 벗어나 삶의 기쁨과 환희를 되찾으려면 무얼 해야 하는지. 새해가 밝았다. 날씨가 춥다. 봄은 또 몇 년 후로 미뤄졌다. 남은 건 사람과 사랑 뿐이다. 마지막 남은 사랑마저 사치가 된 사회에 저항하길 바라는 당신에게 <야성의 사랑학>을 권한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2013년 되시길.

 

*이 리뷰는 반디앤루니스 홈페이지 '오늘의 책' 코너에도 동시에 올라가 있습니다.

(http://www.bandinlunis.com/front/display/recommendToday.do?selectYear=2013&selectMonth=1&selectDay=13&todayYear=2013&todayMonth=1&todayDay=15&viewTy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