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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사회

[의자놀이 - 공지영] 비겁한 방관자를 위한 작은 각성제

제목부터가 특이하다. <의자놀이>. 무슨 뜻일까.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책의 중반쯤을 읽을 때 그 의미가 이해됐고, 책장을 덮을 때쯤엔 우리가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벌이고 있는 '의자놀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의자놀이'란 우리가 어릴 때 몇 번쯤은 해본 적 있는 놀이다. 10명의 아이가 노래에 맞춰 놀다가 노래가 멈추면 재빨리 9개밖에 없는 의자에 앉는 놀이. 10명의 인원수에 비해 한 자리 모자란 9개의 의자 때문에 한 명은 필연 탈락할 수밖에 없는 고전 '서바이벌 게임'. 이제 우리는 의자놀이와 비슷한 부류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안방에 앉아 텔레비전으로 여유롭게 시청할만큼 생존경쟁의 논리를 내면화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도가니> 등의 작품으로 명성을 얻은 작가 공지영이 시도한 첫 번째 르포르타주 <의자놀이>는 쌍용자동차 사태와 남겨진 해고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쌍용차 사태의 심각성을 처음으로 느낀 계기는 브라운관에 비치는 평택 쌍용차 공장 지붕에서의 진압작전을 봤을 때다. 그 때는 용산참사 이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백주대낮에, 좀 살려달라는 해고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정부와 경찰은 대테러작전을 벌이듯이 노동자들을 구타했다. 헬기가 등장하고 진압작전을 벌이던 경찰이나 용역의 장비가 조금 세련되어졌을 뿐이지, 5공 때나 봤던 백골단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좀비처럼 되살아났다. 방호구를 갖춘 경찰과 용역이 방패나 곤봉을 들고 사람을 마구 구타하는... 실신한 사람까지도 찍어대던 그 야만의 화면. (훗날 당시 작전지시자인 경기경찰청장 조현오의 헛소리를 듣고 미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작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현오는 장자연 사건 수사도 그렇고... 정말 경기경찰청장 시절 빼어난 업적을 이룬 인물이다) 머릿속이 전율과 분노, 황당함 등 각종 감정으로 복잡한 가운데 결국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물러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이후로 평택에서는 음슴하고 차가운 죽음의 비보만이 장례행렬처럼 이어졌다.

 

그 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덕수궁 대한문 앞에 초라한 천막을 쳤다. 그나마도 경찰의 제지와 통제 때문에 여의치 않다. 겨우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 기대했던 시민들의 지지와 연대는 뜨뜻미지근했다. 아니, 무관심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서울시민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신들의 일상에 바빴다. 그들은 작은 천막 안에 차려진 분향소에 내어줄 시간도, 관심도 없었다. 그렇게 그들을 방치해두는 동안 가정이, 인간관계가, 경제적 상황이, 희망까지 무너진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죽음의 행렬을 이어갔다. 김지하가 다시 나타나 '죽음의 행렬을 멈추라'고 부르짖는다 하더라도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쌍용차문제는 단순히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은 정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2009년 쌍용자동차에서 대규모 정리해고 발표가 있은 후 지금까지 어언 3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벌어졌던 사건들과 그들의 가슴에 박힌 아픔을 어찌 이깟 글 몇 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의자놀이

저자
공지영 지음
출판사
휴머니스트 | 2012-08-16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정리해고는 잔혹한 의자놀이 게임,1%의 이익을 위해 99%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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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 의문에 대한 해답 또는 설명으로 소설가 공지영이 첫 르포르타주(프랑스어로 탐방 · 보도 · 보고를 의미하며, 소위 르포로 줄여 쓰는 르포르타주는 사전적인 의미로는 허구가 아닌 사실에 관한 보고라는 뜻)에 도전했다. 겨우 200페이지 조금 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무척 괴로웠다. 최근에는 <벼랑에 선 사람들>을 읽으며 비슷한 고통을 느꼈던 것 같다. 극한의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은 고통을 당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다. 쌍용차에서 벌어진 지난 3년간의 일들을 적은 <의자놀이>는 피 묻은 기록이었다. 그저 열심히 일하던 한 자동차회사의 직원,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하루아침에 불법파업노동자로 규정되어 정부와 경찰, 사측으로부터 탄압받았다. 하지만 언론은 이들을 외면했고 친척과 이웃의 싸늘해진 시선을 감당해야 했다. 동료와 가족이 죽어나갔고 본인들도 심각한 심리적 상처를 입고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다. 해고된 처지라 경제적으로 궁핍했지만 더욱 절망스런 현실은 이들의 재취업에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 '쌍용차 출신'이란 낙인이었다.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것 역시 만만치 않은 현실에 절망이라는 단어 외에 딱히 어떤 말을 쓸 수 있을까. 여기까지가 슬픔과 아픔의 기록이었다면 쌍용차를 인수한 상하이차의 약속불이행과 대규모 정리해고, 기술유출 등의 사실은 분노의 대상이었다. 상하이차의 먹튀작전에 부화뇌동한 우리나라의 대형 회계법인들과 법원의 판결은 이 사건이 소위 권력 가진 자들의 계획적인 공작이었음을 방증한다. 인원감축을 위해 회사가 어렵다는 핑계를 만들려는 수단으로 회계상 자산 가치를 필요 이상으로 감소시켜 명분을 만들고 법원은 이를 근거로 해고무효소송에서 사측의 손을 들어준다.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회사를 살리겠다며 잡쉐어링을 제안하고 자신들의 퇴직금을 담보로 대출을 제안하는 등 회사 정상화 방안을 제시하지만 사측은 이를 철저히 무시한다. 저열한 꼼수로 노동자들에게 '나가달라', 즉 죽어달라고 요구하는 사측에 순진한 노동자들이 자신이 가진 마지막 하나까지 내놓는 대목에서 분노는 클라이맥스를 찍는다.


 (사진: 연합뉴스)


97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한국의 노동시장에는 소위 노동유연화라는 명분으로 상시적 인력구조조정이 이루어졌다. (덕분에 구조조정이란 말은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개발이나 조직개편 등 혁신과는 거리가 먼, 오로지 '인력감축'이란 말과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877,8,9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쟁취한 노동자의 권리는 헌신짝처럼 취급됐고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떨어야 했다. 이제는 비정규직이 전체고용의 50%를 넘을 정도로 노동자의 위상은 바닥에 떨어져있다. 무엇이 이런 현실을 초래했을까? 여기서 워싱턴 컨센서스나 대처리즘, 레이거노믹스 따위를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정치적, 경제적 흐름이 몇몇 보수주의 정치인과 신자유주의 경영자들에 의해 주도되긴 했으나 이는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다시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다만 불안에 떨면서도 서로 연대하지 못하고 저항하지 못하는 작금의 노동현실을 개탄할 뿐이다. 자신도 사오정(사십대 오십대면 정년)이란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남들이 먼저 해고당하면 '나는 아직 괜찮아'라며 다행이란 한숨을 내쉬는 비겁한 태도는 결국 남들보다 조금 늦을 뿐 자신의 파국을 막지 못한다. 히틀러가 집권한 뒤 공산당을 탄압할 때, 옆에서 방관하거나 나는 다행이라고 여겼던 유태인들이 나중에 어떤 운명에 처했는지는 역사가 증명한다.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를 차가운 눈으로 지켜보거나 방관하며 스쳐지나가는 시민 노동자 역시 지금 당장 상황이 조금 나을 뿐이지 본질적으로는 똑같다는 말이다. 함께 살지 않으면 순서대로 잡아먹힐 뿐이다.


이번 리뷰에서는 되도록 정치적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역시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쌍용차 사태를 보더라도 경제문제에는 결국 정치권력의 역할과 개입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의 아버지라는 애덤 스미스도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ics-이란 말을 썼다. 맑스 이전에도) 특정 정권의 노동탄압을 비판하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해놨기 때문에 여기서 되풀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이 나라의 가장 큰 정치권력의 향배를 결정하는 대선이 코앞에 닥친 판국에 노동문제와 연관해 정치의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각 대선후보가 경제민주화란 이름으로 뭉뚱그려 이야기하고 다니는 경제정책들은 사실 그 진의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정책들이 많다. (한 야당후보는 당내 경선에서 당선되자마자 "노동계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노동시간 단축, 사측의 고용 확대 등을 주문하는데 이는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발언하지 않았는가) 선거가 끝나고 정권이 들어서면 말바꾸기 하는 경우가 많았다. 역대 정권이 그래왔듯, 노동문제는 단순히 선거 한 번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2, 3의 쌍용차 사태는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다. 지속적으로 연대하고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역할과 견제를 하지 않으면 정부와 대기업은 언제든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노동자들을 몰아댈지 모른다. 그 아래서 노동자들은 또다시 기약 없는 의자놀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의자놀이>는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과 보상이 필요하다는 것 외에도 시민 각 개인이 임금노동자로 살아가야 하는 지금,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 볼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평택에서의 잔인한 진압작전 이후에도 우리는 SJM파업사태에서 경찰의 방관 속에 벌어진 용역의 끔찍한 폭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처한 노동현실은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겁먹은 예비 노동자들은 몇 안 되는 대기업 정규직이나 공기업, 공무원 자리를 놓고 치열한 의자놀이를 계속한다. 기존 노동자들도 동료가 쓰러지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가만히 지켜보다간 언젠가 당신의 차례가 돌아올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미 재계에서는 내년 10대 그룹의 90%가 상황에 따라 감원을 계획하고 있고, 투자를 줄여 현금을 확보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다. (관련기사 http://bit.ly/O6frTC) 정권교체를 앞둔 시점에서 정권 길들이기와 노동자 겁주기의 시도로 보인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먼저 겁먹지 않아도 된다. 일단 천천히 알아 가면 된다.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 200페이지 밖에 안 되는 <의자놀이> 한 권을 추천한다. 임금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파악하는데 이만한 책도 없을 것이다. 한 권의 독서가 마음은 물론, 현실의 당신도 살찌울 수도 있다. 우리 이제, "함께 살자".


P.S) 공지영 작가와 하종강 선생, 이선옥 작가와 관련된 이야기는 생략할 뿐더러 조용히 사양합니다. 아래는 <의자놀이> 북콘서트 영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