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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사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 악을 모르는 놈이 어찌 악을 이기겠느냐?


(사진: 만화 <드래곤볼>의 한 장면)


여전히 명작이지만 어릴 적에 <드래곤볼>이라는 일본만화가 큰 인기를 끌었었다. 이 만화는 재미도 있었거니와 책 옆면에 그려진 그림이 매 권마다 이어졌기 때문에 그것 때문이라도 작은 용돈을 쪼개 신권이 출시될 때마다 사서 모았던 기억이 있다. 어릴 적 읽었던 이 만화는 내게 잊지 못할 인생의 질문을 하나 던져놨다. 그로부터 상당히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질문의 답을 찾기는 여전히 요원하다. (만화책에서 <데미안>이나 <파리대왕>급의 영향을 받았... 만화책이라고 불량식품 취급하던 당시의 분위기가 얼마나 원시적이고 일차원적인 발상이었는지!)


<드래곤볼> 14권에서 세계를 정복하려는 피콜로 대마왕과 이를 저지하려는 (정확히는 친구가 죽어서 뚜껑이 열린) 손오공의 한 판 승부가 벌어진다. 용호상박의 전투를 벌이던 중, 열세에 몰린 피콜로 대마왕이 천진반의 생명을 볼모삼아 손오공을 협박하기 시작한다. 위의 그림과 같다. 착하고 마음 약한 손오공이 공격하기를 주저한다. 더욱 기세가 등등해진 피콜로는 손오공에게 부상을 입힌 후 그를 비웃듯 다음과 같이 말한다.



"크흐흐! 너희들 인간의 약점은 그 정신이 물렁하다는 거지... 완전히 비정해질 수 없는 놈이 어찌 악을 이길 수 있겠냐."


(어릴 적 내가 읽은 책에서는 "악을 모르는 놈이 어찌 악을 이길 수 있겠느냐"로 번역되어 기재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상을 선악의 양자구도로 파악하던, 게다가 TV에서 매일 같이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며 악당들을 해치우던 세일러문을 보고 살던 꼬마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피콜로 대마왕의 말대로라면 악을 이기려면 선이나 정의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악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을 감싸고 있던 껍데기 한층을 깨고 나와 다시 부화한 순간이었다. 


불행하게도 청소년이 되고 청년이 된 이후에도 피콜로의 말이 대개 맞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피콜로 대마왕의 말이 현실에서 실증적으로 증명되는 사례를 훨씬 많이 봤다. 물론 <드래곤볼>에서는 끝내 어려움을 극복한 손오공이 피콜로 대마왕을 쓰러뜨리고 대마왕의 세계정복시도를 무산시켰다. 하지만 그것은 역시 만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손오공이라는 초인적 능력을 지닌 인물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일상에서 악당이 더욱 큰 악당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그 끝에 위치한 '끝판왕'은 큰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며 호의호식하는 것을 뻔히 지켜보며 살아간다. 그런 부조리를 바라볼 수밖에 없으면서 아이들에게 혹은 후배들에게 '정의롭게', '바르게'를 외치는 것은 사실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런 위선을 어른들끼리 '현실이 그렇잖아'라면서 자위하는 순간의 낯뜨거운 굴욕이란...



전재산이 29만원이라며 추징을 거부한 연희동 어느 분처럼 한 사람의 생을 통해 '악'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본다. 그의 '악'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영화 <26년>을 제작하고 곧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에서 아직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는 생각도 한다. 허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Mr.29만원의 (명백한) 군사쿠데타(무려 내란죄에 해당하는!)가 구국의 거사였다는 정신나간 소리를 하거나 그런 망발에 동조하고 있다. 게다가 이 양반들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의 지위와 영향력이 있다는 점에서 망발의 확대재생산은 상당하다.


Mr.29만원 급의 거물 악당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작은 악들이 우리와 함께 공존한다. 그리고 심지어 그 악이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폭력이 되는 발언과 입장을 지닌 사람들이 다수에 속했다는 점을 내세워 아무런 죄의식 없이 폭력행사를 묵인하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번은 호모포비아와 대화하다 왜 그러냐 물어본 일이 있다. 그랬다가 "민주주의는 다수결 아니냐. 다수는 정의다"는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 (그게 파시즘이지 민주주의냐 -_-)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내가 의도치 않았던 악을 행하게 되거나 혹은 그런 집단에 속해 힘을 보태고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는 한 이런 횡포와 폭력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선하다고 믿는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말이다) 이쯤되면 피콜로 대마왕의 말을 빌어 "악을 모르는 놈이 어찌 악을 이길 수 있겠느냐."고 말하고 싶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저자
한나 아렌트 지음
출판사
한길사 | 2006-10-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아이히만의 재판에 대해 보고를 하면서 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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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본질을 집요하게 탐구한 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 대목에서 우리에게 악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던져준다. 아렌트는 그의 명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재판에 직면한 한 사람이 주연한 현상을 엄격한 사실적 차원에서만 지적하면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 말한 것이다. 아이히만이아고(오델로를 이간하여 오델로와 그의 연인 데스데모나 모두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인물)도 맥베스도 아니었고, 또한 리처드 3세처럼 "악인임을 입증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그의 마음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어떠한 동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상관을 죽여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살인을 범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문제를 흔히 하는 말로 하면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로 하여금 경찰 심문을 담당한 독일계 유대인과 마주앉아 자신의 마음을 그 사람 앞에 쏟아 부으며 어떻게 자기가 친위대의 중령의 지위밖에 오르지 못했고 또 자기가 진급하지 못한 것이 자기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또다시 설명을 하면서 4개월 동안 앉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같은 상상력의 결여 때문이었다. 그래서 법정에서 있었던 최후 진술에서 그는 "(나치) 정부가 처방한 가치의 재평가"에 대해 말한 것이다.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였다.


-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사, 2006, p391


보자마자 한 눈에 알아볼 악당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악은 평범하게 우리의 주변에서 일상을 함께 할 수도 있다. 허나 일상생활이나 소속된 조직의 논리에 매몰되면 악은 쉽사리 우리를 점령한다. 우리가 어리석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가 스스로에게 나태해지는 순간 우리의 사고가 멈추게 되기 때문이다. (무사유 thoughtlessness)


대통령 선거가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한나 아렌트의 충고는 더욱 자주 떠오른다. 여전히 뻔뻔하게 자신과 자신이 속한 조직이 자행한 악을 인정하지 않고 큰 소리를 치는가 하면 심지어 상대를 파렴치로 모는 염치 없는 사람들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뻔뻔한 사람들을 너무 증오한 나머지 닮아버린 자칭 '좌파', 깨어있는 시민'이나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는 분들을 보면서도 걱정이 되는 것이다. 니체가 <선악을 넘어서>에서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 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경고한 그대로다. 이 분들은 스스로가 일상의 평범한 악이 될 수도 있다는 상상력이 메말라서인지 자신은 선이며 상대는 악이라는 이분법적 세상에 갇혀있다. 게다가 악을 상대로 승리하면 피의 보복을 하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아 섬뜩하다.


지나친 열정은 짐짓 본래의 선의를 잊고 엇나가 엉뚱한 결과를 불러온다. 이는 역사가 증명하니 굳이 여기서 더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본디 선의와 초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고민이 필요하다. 열정에 취해 이를 방기한다면 어느샌가 알지도 못한 채 악을 닮아버린 자신을 발견할 뿐이다. 이 나라의 부정한 역사와 분위기를 바꾸고 싶다는 정의감은 쉽게 부패하는 음식과 닮았다. 여기에 치열한 자기 성찰이라는 소금을 뿌려주지 않으면 금방 상해버려 애초 자신이 증오했던 부패한 음식과 닮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디 조금만 더 냉정하게, 그리고 차분하게 판단하고 행동했으면 한다. 그래야 악도 보인다. 또 악을 닮으려 하는 자신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 <드래곤볼>에서 피콜로 대마왕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악을 모르는 놈이 어찌 악을 이기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