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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사회

[병원 장사 - 김기태] 병원마저 점령한 배금주의



병원장사

저자
김기태 지음
출판사
씨네21북스 | 2013-03-11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병원이 아프다 기자가 뛰어든 ‘가짜 환자’ 실험 상업화된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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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는 형님과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엄밀히 말해 내가 그냥 들어준 쪽에 가깝다. 나이 등의 권위를 배경으로 늘어놓는 이야긴 대화의 상대가 아니므로 그냥 들어주는게 약이다)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있는가?'.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상식의 수준이다. 천하를 통일하고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진시황 마저도 동방으로 불로초 구하러 간다던 사기꾼에게 한 몫 단단히 털릴 정도로 '영생'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오래되고도 집요했다. 하지만 인간의 탄생 이래 그 누구도 삶의 유한함을 극복한 영생의 미션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이 형님의 말씀이 아주 가관이었다. 사람이 늙어 죽는 이유는 장기가 늙어 죽는 것인데 그 장기를 교체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요새 중국 같은 곳에 가면 장기를 교환할 수 있다며 돈만 있다면 살아있는 사람의 젊은 장기를 구해서 늙은 장기와 교체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 아스트랄한 이야기를 듣고 잠시 고민했다. (이게 진지하기도 하지만 약간 농담조이기도 해서) 웃어야 하는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머리 속으로야 생각만 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였다. 허나 장기이식에 따른 거부반응 때문에 알맞은 도너를 찾아 헤메는 환자의 가족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이야기다. 또한 임상적으로 그런 장기교체를 통해 인간이 영생을 할 수 있다는 학계의 보고도 들어본 일이 없다. (물론 일제의 731부대나 나치가 유태인을 상대로 저지른 미친 연구가 이뤄진다면야 나올 수 있는 결과일지도 모르나 그런 연구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은 것은 이 땅의 배금주의가 도를 넘어섰다는 생각이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은 일반인만의 몫은 아니다. (사회와 성인들의 사회를 보고 배우기에) 사회의 거울이라는 학생과 청소년의 생각을 관찰하면 그 증세의 심각함이 더욱 여실히 엿보인다. 얼마 전 청소년을 대상으로 이뤄진 한 설문조사에서 고교생의 44%가 10억원을 보상으로 준다면 감옥생활 1년쯤은 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서울경제신문 관련기사 http://economy.hankooki.com/lpage/society/201301/e2013010717394593820.htm) 이쯤되니 돈만 있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진지하면서도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사람의 목숨을 산술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인간소외를 현실적이라며 자위하는 이들은 과연 자신의 자녀에게 '돈이 없으니 나가서 장기를 팔고 오라'고 할 수 있을까. 스스로의 장기를 팔아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까. 배금주의가 판을 친다지만 사람의 생명을 금액으로 환산하거나 돈벌이의 도구적 수단으로 생각하는 태도는 결국 스스로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알면 그런 무식한 소리 떠들고 다니지 못 할거다)


김기태 기자(전前 기자라고 해야 맞겠다. 그는 내가 좋아하던 한겨레21 필진 중 한 명이었으나 이제 이 나라를 떠나 유학길에 올랐다)가 펴낸 <병원 장사>는 배금주의에 홀린 사회에 편승하여 생명구호를 최우선으로 해야할 병원이 수익을 늘리기 위한 비지니스의 공간으로 변질된 의료현장을 그려냈다. 예전에 한겨레21에 연재된 노동OTL시리즈가 <4천원 인생>으로 출간돼 큰 관심을 모았던 적이 있다. 비슷하게 <병원 장사>도 한겨레21에 연재됐던 병원OTL시리즈를 모으고 여기에 몇 가지 내용을 추가해 펴낸 책이다. 한겨레21을 정기구독했기에 관심있게 봤는데 매주 독자편집위원회와 독자인터뷰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던 시리즈이기도 하다. (역시 독자들은 기자들이 직접 발로 뛴 기사를 좋아한다. 그들은 기사에서 귀신같이 기자의 발냄새를 맡는다) 


병원에 가면 직위고하와 나이의 젊음과 늙음을 떠나 누구나 작고 초라한 환자가 된다. 판사의 판결을 기다리는 피고마냥 불안한 마음으로 진단을 기다린다. 그런데 막상 진료와 검사가 끝난 뒤 받아든 청구서를 보면 "왜 이렇게 비싸지?ㅠㅠ"란 의문이 들 것이다. 병원도 많고 경쟁도 치열하다는데 받아든 병원비는 부담스럽기만 하다. 허나 환자인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뿐더러 문제제기를 하기도 어렵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정보의 비대칭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시장에서 공급자 사이에 경쟁이 치열하면 가격은 내려가고 서비스는 나아진다. 나쁘지 않다. 그런데 의료시장에서는 그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대학생들이 흔히 보는 <보건경제학> 교과서를 펼치면, 이런 대목이 있다. 조금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면 이렇다. “의료는 전문적이기 때문에, 소비자인 환자가 의료의 양을 결정하기 힘들다. 의사가 의료 서비스 공급량을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이유다. 따라서 보건의료 부문에서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말이 더 맞다. 보건의료는 도덕적 해이가 수요자뿐 아니라 공급자에 의해서도 발생하는 특이한 분야다.


- 김기태, <병원 장사>, 씨네21북스, 2013, 127~128pp.



공공의료체계는 거의 무너졌고 의료시장은 소위 빅5병원(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각 병원은 값비싼 의료기기를 사들이고 병상수를 경쟁적으로 늘리며 군비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에게 전가된다. 비싼 비급여 검진과 시술을 받는 것이다. 의사들도 편치 않다. 값비싼 기기를 더 많이 돌릴 수 있게끔 진단하고 처방하는 의사에게 인센티브 등의 혜택을 주며 경쟁을 붙이는 것이다. 의사도 환자도 행복하지 않은 지금 이 상황은 어디서부터 초래된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병원 장사>의 대답은 간단하다. 정부가 의료라는 분야가 지닌 공공성을 함부로 훼손하고, 재벌 등이 시장논리에 맞춰 정부로 하여금 의료를 신성장동력산업으로 지정토록 부추켜 돈벌이에 나선 한국의 의료시장의 구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병원 장사>의 머리말 첫 문장이 주는 인상은 강렬하다.



"본 환자는 노숙인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자기공명영상(MRI) 등 고액의 처방은 가능한 한 자제해 주시기 바라며, 특진비는 전액 받을 수 없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2010년 11월 20일 밤, 필자는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에 있었다.


- 김기태, <병원 장사>, 씨네21북스, 2013, 5p.



돈이 없으면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냉정한 자본주의적 시장질서에 따르면 옳다고도 볼 수 있다. 너그러이 인정해 여기까지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멀쩡한, 아직은 괜찮은 사람에게 필요 이상의 검진과 첨단기기를 이용한 값비싼 시술을 권하는 이유는 납득하기 힘들다. 유난히 허리디스크 수술과 치질수술이 많은 나라, 치과에 가면 스케일링 무료로 해줄테니 값비싼 시술 받으라고 권하는 나라. 과연 병원과 의사들이 왜 이런 수술과 시술을 권하는 걸까? 아니, 왜 병원과 의사들이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의사들의 탐욕이 유난해서도 아니다. 병원들이 돈이 없어 막 도산하려고 해서도 아니다. 사회의 일부분으로서 존재하는 병원에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서 원인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병원 장사>를 찬찬히 읽다보면 그 구조적인 이유의 실마리들이 조금은 보인다.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무색해진 의료시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의료계 스스로의 자정작용을 기대하기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다. 그 모멘텀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정부가 국민의 보건과 건강을 위해 공공의 역할을 수행해 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판단은 과연 국민을 위한 것인지 의심케 한다. 약간 길지만 <병원 장사>의 한 대목을 인용해 본다.



우울한 통계가 하나 더 있다. 김윤 서울대 교수(의료관리학)가 지난 2010년에 내놓은 논문을 보면, 해마다 1만명에 가까운 외상 환자의 사망을 예방할 수 있다는 추산치가 제시됐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지난 2007년에 외상으로 사망한 환자는 2만 8359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9245건(32.6%)은 의료 체계가 적절하게 작동하고, 병원이 제대로 구실을 했다면 살릴 수 있는 생명이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예방 가능한 외상 사망률(32.6%)은 미국(15%), 캐나다(18%) 등과 비교해도 크게 높다.


정부도 상황이 심각하다고 보긴 했다. 그래서 지난 2009년 10월에 발표한 '응급의료 선진화 추진계획'에서 중증외상 환자의 예방 가능한 사망률을 2012년 2월까지 25%로, 2015년에는 20%까지 끌어내리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구체적인 안도 제시됐다. 2012년까지 모두 6161억 원을 들여 6곳에 권역외상센터를 건립하고, 신속한 환자 이송을 위해 센터마다 구급용 헬리콥터를 운용하겠다는 야심찬 내용도 나왔다.


제동은 기획재정부에서 힘껏 걸었다. 기획재정부는 2010년 4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실시한 예비타당성조사 결과 권역외상센터 사업은 비용에 견줘 효과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비용편익 비율이 0.31~0.45에 불과하다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100원을 투자하면 31원~45원 정도의 효용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쉽게 말해, 돈이 안 되니 중증외상센터를 짓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런 계산이 어떻게 나왔을까. 기획재정부의 자료를 보면, 우리 국민 한 사람이 생존했을 때 사회가 얻는 이득을 1억 5511만원으로 계산했다. 사람 목숨 값을 계산한 재주가 놀라울 따름이다. 참고로, 20조 원을 넘게 들인 4대강 사업은 재해 예방이라는 명목으로 예비 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았다.


- 김기태, <병원 장사>, 씨네21북스, 2013, 197~198pp.



대단하다. 돈만 있으면 영생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던 형님만큼이나 기재부 관료들의 재주가 놀랍다. 국민 1인당 생존시의 목숨값을 계산해낸 것도 놀랍긴 하지만 돈이 안되면 살릴 수 있는 사람 목숨도 포기한다는 면에선 영리병원들의 태도와 별반 차이가 없다. 이런 정부를 믿고 나와 가족의 건강을 책임질 보건정책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20조 원이 넘게 든 4대강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조차 면제했지만, 응급환자를 살리는 중증외상센터 건립비 6161억 원은 돈이 안된다며 포기해버린 기획재정부와 정부의 태도는 국민의 신뢰를 받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경남도에서는 공공의료기관인 진주의료원이 폐업절차를 받고 있다. (<병원 장사>에 비슷한 사례로 삼척의료원 실태가 르포 기사로 실려있다) 그 이유로 여러가지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경남도가 표면상 내세우는 명분은 적자누적과 수익성 악화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진주의료원 폐업을 공식선언했다. (관련기사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2454024역시 돈이 안된다는 말이다. 현재 한국 의료시장의 트렌드에 정확히 부합하는 사건이다. 그 끝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명약관화하다. 병원들은 돈벌이가 되는 진료에 주력하게 되고 산부인과, 외과 등 꼭 필요한 진료과목은 축소되거나 사라지게 될 것이다. 시장이 포기했지만 국민의 건강과 보건을 위해 꼭 필요하기에 공공이 맡아야 할 역할마저 정부가 나서서 돈이 안된다며 포기해 버린다. 남은 환자들과 그 가족이 기댈 곳이란 어디에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지금의 흐름은 사람을 살리는 방향이 아닌, 죽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는 그 흐름을 지켜보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병원 장사>는 그 흐름을 탐사하여 기록한 우리 시대 아픈 보고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