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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경제ㆍ경영

[고장난 거대기업 - 좋은기업센터] 기업이란 고양이 목에 윤리와 책임이란 방울 달기



고장 난 거대 기업

저자
좋은기업센터, 이영면, 정란아, 신태중, 전채연 지음
출판사
양철북 | 2013-03-11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돈을 버는 게 목적인 기업에게 윤리나 책임을 묻는 것은 잘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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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내면의 세계를 벗어나 외부의 다양하고 넓은 세계를 구경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아주 좋은 방법이 있다. 그것은 많이 듣고 많이 보고 많이 읽는 것이다. 데미안이 껍질을 깨고 나왔듯이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면 참으로 다양한 모습이 보이고 다양한 목소리가 들리며 다양한 글들이 돌아다니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꽃다운 20대 처녀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해도 그런 소식은 주요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다. 보인다해도 대다수는 외면한다. 심지어는 한 회사가 태안 앞바다에다가 석유를 잔뜩 뿌려놔서 수백만명의 시민들이 추운 바다바람을 맞으며 자발적으로 기름제거작업을 벌여도 그 감동스런 장면의 감성만 자극할 뿐 아무도 그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 책임을 추궁해야 할 정부나 언론은 꿀먹은 벙어리마냥 아무 말이 없다. 그리고 시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가 외면하고 관심 가지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노동자 사망사건과 기름유출사건의 해당 관계 기업이 어딘지는 대략 아시리라 생각한다. 기업들은 많은 비용을 들여 각종 매체를 이용해 브랜드 마케팅에 힘을 쓰고 있다. '또 하나의 가족', '사랑해요~사랑해요~' 등등 우리에게 친숙한 멘트로 유명한 기업들은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다. 허나 '선으로 가는 길은 악으로 포장되어 있다'고 했던가. 기업들의 포지티브 마케팅과 우리의 편리한 소비 뒤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윤리적 영업행위들과 사회적 책임 방기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귀하신 재벌총수들께서 리어카 같은 휠체어를 타고 뉴스 화면에 등장하실 일이 없지 않은가.


<고장난 거대기업>은 기업을 감시하는 시민단체인 '좋은기업센터'에서 기획한 책이다. 이영면(좋은기업센터 운영위원), 정란아(좋은기업센터 사무국장), 신태중(좋은기업센터 팀장), 전채연(작가, 출판기획자)가 공동집필한 이 책은 12개의 사례를 들어 기업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 사례는 다음과 같다.


네슬레 - 분유는 어떻게 유아 살상제가 되었나?

현대자동차 - 같은 일을 하는데 왜 똑같이 대우받지 못할까?

대형 마트 - 왜 대형 마트는 지역사회와 공존해야 할까?

월마트 - 유리 벽과 유리 천장 속 여성 노동자

나이키 - 하청 공장의 노동 착취, 누구의 책임일까?

마이크로소프트 - 아이디 하나로 움직이는 제국을 꿈꾸다

스타벅스 - 공정 무역 커피는 계속되어야 한다

셸 - 잘못된 석유 개발 사업이 부른 참사

코카콜라 - 콜라를 만들기 위해 식수를 훔치다

드비어스 - 아프리카의 피로 영원한 사랑을 말하다

삼성중공업과 BP - 바다를 더럽힌 두 기업, 그 태도의 차이

엔론 - 견제 장치가 고장 난 거대 기업의 종말


각 사례에서 전반부는 픽션으로 그린 사건의 개요와 문제점을 지적하고 후반부에는 그에 따른 해결과정과 남은 문제점을 서술하고 있다. 각 사건의 내용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확인해볼 수 있으니 관심있는 독자는 찾아보면 되겠다. 아니면 이 책을 한 권 구해서 읽어봄이 좋겠다. (허나 개인적으로는 책의 난이도나 깊이가 청소년용으로 적합하다는 생각이다. 이 문제에 첫걸음을 떼는 독자라면 괜찮을 정도로 본다)


<고장난 거대기업>은 너무 치우친 책이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균형과 중도가 최선이라고 여기는 한국인들에게 기업을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집단으로만 그린 <고장난 거대기업>은 대단히 편파적인 책으로 보일 것이다. 실제로도 편파적인 것이 맞다. 기업의 사회적 사업과 노력들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고 잘못한 것에만 집중한 <고장난 거대기업>이 균형잡힌 책이라는 평가는 옳지 않다.


허나 경제, 사회적으로 거대한 힘과 조직을 갖춘 기업과 나약한 일개 개인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이런 편파는 오히려 균형추를 맞춰준다. 기계적인 중립이나 균형을 생각해서는 이 말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쉽게 생각해 보자. 내 친구 중에 지방의 한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다. 이 친구의 말은 이러하다.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게다가 어렵고 힘든 일은 더 하는데도) 단지 비정규직, 계약직이란 이유로 정규직의 절반 밖에 안되는 임금을 받고, 심지어 정규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뇌물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 동네에서는 이미 파다한 소문이다. 조직되지 않은 각 개인노동자는 그저 정규직채용의 성은이 언제 내려질지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슈퍼갑인 기업과 을도 아닌 병이나 정인 노동자를 기계적인 균형에서 평가한다는 것은 마치 호랑이와 고양이의 레슬링을 공정한 경기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고장난 거대기업>의 문제의식과 지적은 참 좋다. 분명 거대기업들의 이윤추구에는 고장난 행위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 역시 없지 않다. 부제인 '우리 시대 기업에 따뜻한 심장 달기'를 해낼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다. 아마 좋은기업센터에서도 고민하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의 해결과정에서는 (아쉽게도 거의 해외사례다) 다수의 시민들과 단체들이 참가하여 기업에 사회적 압력을 가한 결과 일정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한국의 상황에 대입해 본다면 어떠할까. 당장에 정치권에서는 불법시위엄단, 자유시장경제수호 등의 구호가 튀어나올 것이고 보수언론들은 좌빨, 빨갱이, 종북세력으로 몰아댈 것이다. 양측의 협공에 시민들의 외면까지 더해지면 그저 공허한 목소리가 될 뿐이고 결국 흐지부지 되기 마련이다.


스스로가 재벌의 자손이 아닌 이상에야 이 사회에 사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업에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이자, 기업의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이다. 기업의 문제가 우리와 멀리 있지 않는 이유다. 우리가 일하는 공간을 제공하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상품을 생산하기도 하는 기업이 우리 사회의 누군가를 부당하게 착취하고 있거나, 해외공장에서 아동노동을 이용하고 있다면 우리는 과연 윤리적인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을까? 이것은 그저 정규직이란 상층노동계급에 진출하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끝없는 각개전투를 벌이는 우리 사회 개개인에게 던지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