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 저자
- EBS 자본주의 제작팀 지음
- 출판사
- 가나출판사 | 2013-09-27 출간
- 카테고리
- 경제/경영
- 책소개
- 신용등급이 낮아도 대출을 해주는 이유 중앙은행은 결코 물가를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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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내가 착각을 하고 살았음을 깨달을 때가 있다. 대표적으로 연애가 그렇다. 같은 곳을 바라본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재는 내 곁에 머물고 있으며 세상 그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같이 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이런 착각은 결국 스스로가 상대와 현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자신감에 근거한다. 하지만 함께 오래한 것과 달리 진실은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 수많은 연인들이 종국에 가서는 서로에 대해 각기 쌓아왔던 환상이 깨지고 상대의 실체를 파악하고야 마는 것은 어쩌면 착각에 따른 숙명이었을 것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역시 그러하다. 스스로 체험해보지 못한 이국땅의 풍토나 인심 등에는 막연한 두려움을 갖기 쉬우나,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의 제도나 분위기에는 익숙함을 근거로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쉬운 것이다. 오히려 '잘 알고 있다'는 이 자신감이 스스로를 위기로 몰아넣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부동산은 불패不敗다'는 믿음으로 부동산 신화의 전통을 잇다가 하우스푸어House Poor로 전락한 사람이 어디 한 두명인가. 실패는 잘 모르면서도 '잘 알고 있다'고 자만했던 그 순간에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이하 자본주의)는 EBS 다큐프라임 시리즈 중 제40회 한국방송대상 대상을 수상한 '자본주의 5부작'을 엮어낸 책이다. 방송이 훌륭했던만큼 책으로 엮어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컨텐츠의 질이 우수하다. 특히, 자본주의체제로 운영되는 한국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읽어봐야 할 필요가 있는 책이다. 책으로 나오기 전에 방송에서 이 프로그램을 보고 주변에 친한 지인 몇에게 몇 번 권했던 적이 있었다. 나름 약사, 자동차 대기업 과장 등 나름 자기 분야에서 엘리트며 적지 않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대체로 '이런 게 있는지 몰랐다. 알려줘서 고맙다'는 식이었다. 자본주의사회의 최첨단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음에도 자본주의를 잘 몰랐다는 이 고백은 우리가 변심한 애인을 바라보며 결혼을 꿈꾸는 착각을 하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이야기와 다름없다.
사회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려고 노력했고, 대학을 졸업하면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발버둥쳤으며, 간신히 취업한 뒤에는 회사를 위해 야근과 주말근무를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는데 정작 통장에 잔고는 얼마 되지 않고 당장 이번 달 카드값과 아파트 전세자금대출을 걱정해야 하는 지금의 현실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부모의 집에 기거하며 휴대폰 요금까지 부모가 내주는 캥거루족이야 느끼지 못할지 모르지만) 홀로서서 바람부는 광야에 스스로의 힘으로 서 있는 '일반 성인'이라면 이렇게 넓은 서울바닥에 넘쳐나는 아파트를 보면서 "왜 이 많은 집 중에 나와 내 가족이 누울 집 한 칸이 없는가?"는 의문도 들 수 있다. <자본주의>는 몇몇 자기계발서처럼 우리 개인이 무능하거나 게을렀기 때문이라고 답하지 않는다. 다만 자본주의의 탄생과 발전, 그에 따른 철학들과 아이디어, 현대 소비마케팅의 수법, 첨단금융상품 등을 설명한다. 의문에 대한 답은 <자본주의>의 조언을 통해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방송과 같이 총5장으로 구성돼 있다.
Part1. '빚'이 있어야 돌아가는 사회, 자본주의의 비밀
Part2. 위기의 시대에 꼭 알아야 할 금융상품의 비밀
Part3. 나도 모르게 지갑이 털리는 소비 마케팅의 비밀
Part4. 위기의 자본주의를 구할 아이디어는 있는가
Part5. 복지자본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내 졸렬한 글 몇 마디보다는 한국방송대상 대상을 수상한 다큐이니 실제로 한 번씩 보시는 것이 나을 듯 하다. <자본주의>는 이 영상에 몇 가지 내용을 추가해서 보완한 것이기 때문에 책을 읽기 힘들다면 출퇴근길이나 등하교길에 하루 한 시간만 투자해서 영상을 시청하면 된다. <자본주의>가 38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기 때문에 일주일도 걸리지 않아 두꺼운 책 한 권 읽는 셈이니 남는 장사 아닐런지.
여기서는 <자본주의>의 5장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서 밝히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전하고자 한다. 색안경을 끼고 보신다면 그 색안경 잠시 벗어두셔도 된다. 이것은 북한이 작성한 통계자료가 아니라, 통계청이나 질병관리본부 같은 대한민국의 국가기관들과 OECD 같은 국제기구들이 작성한 자료니까.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조세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4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소득 상위 1%가 한 해 버는 돈이 38조 4천 790억 원. 상위 1%가 국민소득 16.6%를 가져가는 상황이다. 더 놀라운 것은 OECD국가 중 미국의 17.7%에 이어 2위라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심각한 소득불균형 상태에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놀라운 데이터는 또 있다. 한성대학교 이내찬 교수의 [OECD 국가의 삶의 질의 구조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4.2점에 불과하다. 전체 34개국 중 32위를 차지했다. 1위는 덴마크로, 8.09점. 우리나라보다 낮은 나라는 2점대의 터키와 멕시코뿐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지난 50년 동안 엄청나게 올랐다. 1960년대 100여 달러에서 시작해 현재 2만 달러. 세계11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누가 봐도 놀라운 성장이지만 문제는 우리가 느끼는 행복도가 경제 성장과 비례해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경제학자인 리차드 이스털린이 주장한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정체된다'는 '이스털린의 역설'이 고스란히 적용된 결과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말해주는 또 다른 지표들을 보면 그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빈곤율 28위: OECD 34개국 중 사회복지 지출 비중 33위
*연평균 근로시간 1위: 2193시간 (2011년 국가경쟁력 보고서)
*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률 세계 1위: 인구 10만 명당 자살 사망률 28.4명 (OECD 국가 평균 11.2명)
*청소년 사망원인 1위 자살 (2009년 통계청)
*중고교생 5명 중 1명 자살 고려: 20명 중 1명 실제 자살 시도 (2010년 질병관리본부)
*어린이와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 65점 (3년 연속 최하위, OECD 23개국 중 23위)
*고3 학생들, 행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 1위는 '돈' (2011년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국제비교)
- EBS <자본주의> 제작팀,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가나출판사, 2013, 361~364pp.
부디 이 데이터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 수치들은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세계에서 제일 많이 일하는 국민들은 복지예산을 삭감하는 국가에 의해 방치될 뿐이고, 각 개인은 경제적인 고통과 의료혜택의 사각지대에서 육체적인 고통으로 자살을 선택하기에 주저함이 없다. 한창 꿈과 희망을 키워나가야 할 어린이와 청소년은 교육에도 적용된 무한경쟁의 논리에 매몰돼 그 아름다움을 꽃피우지도 못한채 불행한 삶을 살고 있고,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다섯에 한 명꼴로 자살을 생각한다. 경쟁과 돈만이 남은 건조한 사회를 보고 자란 아이들의 영혼은 이미 황금만능주의의 유령에 사로잡혀있기에 앞으로도 물신숭배의 풍조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런 미래를 행복한 미래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인들은 지난 60년을 기아와 궁핍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나라가 시키는대로 스스로의 권리도 포기한채 산업전사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 많이 사람들이 현장에서 다치거나 숨졌고, 작업의 후유증으로 장애를 얻거나 목숨을 잃기도 했고 독일이나 중동의 이역만리로 떠난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그런 희생을 바탕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경제체제에서 변방에 불과했던 한국이 준핵심부로 진입했다는 사실은 (결국 이명박의 420조짜리 사기에 불과했지만) G20 정상회의 의장국을 지낸 것으로 대표되는 가시적 성과들로도 확인된다.
하지만 정작 그 놀라운 성과를 이뤄낸 국민들에게 자본주의가 선사한 답례는 실망스럽기 짝이없다. 어려운 시절을 견뎌낸 노인세대는 제대로 된 의료혜택도 보지 못한채 경제적 궁핍 속에서 불우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 장년층은 더욱 격화된 직장내 경쟁과 메워도 메워도 차지 않는 자녀양육 및 학비에 허우적 거리고 있고, 100명이 지원해 3.5명이 합격한다는 취업시장에서 낙오한 청년층의 좌절과 분노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노력하기만 하면 모두에게 풍요와 행복을 준다던 자본주의는 열심히 달려온 한국인들에게 약속한 풍요와 행복이 아닌, 빈곤과 육체적 고통, 좌절을 안겨줬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더 참고 달려라"고 주문한다. 이제는 그 외침을 잠시 뒤로 하고 우리 스스로에 대해, 우리의 행복에 관해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싶다. 누구를 위한 자본주의인가. <자본주의>는 그 장고長考의 시간을 함께해줄 좋은 참고서가 되줄 것이다.
인류 역사상 등장했던 그 어떤 체제도 자본주의를 이기지 못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지금껏 막대한 인류의 부를 만들어냈던 근본적인 동력이자 시스템이 되어 왔다. 문제는 '누구를 위한' 자본주의가 돼야 하느냐는 점이다. 지금까지 자본주의는 자본가, 은행, 정부를 위한 자본주의였다. 자본주의의 혜택은 이제 99%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때가 되었다.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그 강력한 성장엔진을 우리 모두를 위해 나누어 써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낙오자가 될 수 있다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소득의 불균형을 해결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자본주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 모습이 바로 가장 영속가능한 자본주의는 아닐까, 하는 제언을 감히 해본다.
- EBS <자본주의> 제작팀,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가나출판사, 2013, 3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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