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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사회 - 김민섭] 우리는 모두가 대리인간이다 오래 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던 친구와 그의 아내를 얼마 전에 만났습니다. 몇 년만에 만난 그들 부부 역시 저처럼 일상의 무게에 짓눌린 얼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대로 치더라도 오랜만에 벗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마음만은 즐거웠습니다. 서로의 근황과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은 금새 흘러버렸고 술잔은 마르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국밥으로 해장을 한 다음, 근처 카페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수 년만에 한국을 방문한 그들 부부에게 한국의 변화는 꽤나 생소한 정도였다고 합니다. 특히 한국에서 '먹방'이 유행하는 것에 대해 놀라움과 궁금증이 있던 차였습니다. 그냥 원하는 것이 있으면 먹고 말지 왜 남이 먹는 것을 화면으로 보며 좋아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들이 한국을 떠난 것이 수 .. 더보기
[82년생 김지영 - 조남주] 오늘 우리의 자화상을 돌아본다 거울을 봅니다. 거울에 비친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봅니다. 분명 나인데. 뭔가 어색합니다. 이전에 보았던 그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탁하게 변해버린 눈, 탄력을 잃은 피부, 두껍게 낀 군살이 눈에 띌 겁니다. 이게 나인가. 변해버린 내 모습에 낯섬을 느낀 가슴은 쓰라립니다. 대개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사람이 사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외국에서 타문화에 적응해 살아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세상에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나 삶의 방식은 '한국식'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당장 내가 속해있는 환경의 영향이 가장 크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한국식 패턴과 관습에 익숙해지고 이를 보통 '철들었다'고 표현합니다. 철들었다는 말을 들을 때쯤 바라본 자화상은 분명 나인데 내가 아닌 모습일.. 더보기
[인류의 기원 - 이상희, 윤신영] 조상찾기가 아닌 나를 찾기 위한 여행 안내서 짐승들을 많이 관찰해 봅니다. 마당에서 크고 있는 개와 고양이부터 닭, 돼지, 소 등 인간이 자신의 목적에 맞춰 길들인 그 동물들 말입니다. 보통 동물들은 인간보다 수명이 짧아서 그들의 생生부터 사死까지 모두를 관찰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 어디쯤 있을 번식활동도 관찰할 수 있지요. 생명이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한 인간으로서 그저 신비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태어나서 대를 잇고 그 자신은 수명이 다하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인간이나 짐승이나 매한가지이지만, 인간은 한가지 면에서는 분명히 다른 것 같습니다. 바로 자신의 부모와 조부모, 그 위의 조상이 누군가를 기록으로 남기고 기억하려 한다는 점이지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는 물론 이 글을 읽는 독자도 분명히 윗세대의 .. 더보기
[남한산성 - 김훈]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늦은 봄입니다. 아니 어쩌면 초여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날선 바람이 얼굴을 할퀴고 가던 시절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이제는 무더위를 걱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간의 흐름은 막을 수 없는 것이어서 우리를 과거에서 지금으로 끌고 왔습니다. 그저 그렇게 될 뿐입니다. 그러는 사이 산야에 녹음은 우거지고, 아이들은 부쩍 자랐고, 나는 예전 같지 않아졌습니다. 일상을 지내는데 있어 어떤 변화가 있으셨습니까? 학생이라면 성적이 조금 올랐을까요. 직장인이라면 연봉이 조금 오르거나 승진하거나 아니면 이직을 했을까요.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누군가는 출산의 순간을 경험했을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좋습니다. 반복되는 것 같은 일상도 사실 조금씩 변화해 갑니다. 고정된 것은 없습니다. 이 장엄한 시간의 흐름과 누구도 대신해줄 .. 더보기
[검은 꽃 - 김영하] 오늘 다시, 국가란 무엇인가? 얼마 전 서점의 도서 판매 순위를 살펴봤습니다. 수 년전 출간된 유시민 작가의 『국가란 무엇인가』란 책이 역주행 중이더군요. 세월호 참사와 국정농단 사건을 겪으며 우리 시민들이 국가란 존재의 실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세금을 징수하거나 공권력을 행사할 때는 명백했던 국가의 존재가 정작 내가 필요로 할 때는 부재했다는 허탈감이 시민들을 각성시킨 것이지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국가의 존재 명분은 이 땅의 현실에서 실현된 역사가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왕조시대에는 종묘와 사직이 우선이었고, 공화국이 들어서고도 국민들은 뒷전이었으니까요. 군림하되 책임은 없는 이런 행태가 시민들의 냉소를 불러왔고, 체제의 유지를 위해 맹목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악순환이 계속됐습니다. 이런 불행한 현실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