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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경제ㆍ경영

[fta 한 스푼 그리고 질문 하나 - 우석훈] FTA, 재앙인가 기회인가 고민해 보았는가? - 우석훈



fta 한 스푼 그리고 질문 하나

저자
우석훈 지음
출판사
레디앙 | 2012-07-07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주요 내용]“국내에서는 사람이 죽거나 말거나, 자살을 하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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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얘기로 먼저 시작해 보려 한다. 내 아버지는 국제통상이나 무역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삶을 살아오신 분이다. 지방의 한 섬유업체에 수십 년 근무하셨을 뿐이다. 그런 아버지께서도 신앙처럼 여기는 도그마가 몇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한국의 많은 아저씨들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는 믿음이다. 이 말은 곧 '수출만이 살 길'이란 의미였고 수출을 가로막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최근의 동시다발적 FTA 추진으로 얻을 편익과 손실을 고려한다는 것은 그 신앙에 어긋나는 일과 같았다. 그저 '우리가 수출로 이렇게 잘 살게 된 것 아니냐?'는 논박(?)이 되돌아올 뿐이었다. 수출 100억불에 전국민이 눈물흘리던 박정희 시절의 성공신화를 그리워하는 눈치였다. 한미 FTA의 졸속체결 과정을 걱정하는 나를 보며 아버지가 하셨을 생각을 짐작해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수출성공신화를 지켜봤고, 그 열매까지는 아니더라도 떡고물을 향유할 수 있었던 경험을 가진 세대에게는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내용이지 않을까 싶다.

 

대학시절 국제경제학을 가르쳤던 조 아무개 교수가 있었다. 당시에는 막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강단에 섰던 걸로 기억하는데 재벌계 국제경제연구소의 연구원이기도 했다. (나중에 한미 FTA를 지지하는 전문가로 TV뉴스 인터뷰에 등장하셔서 다시 보기도 했다) 당시 강의의 교재로 썼던 책은 폴 크루그먼이 쓴 국제경제학이었는데 지금 기억나는 것은 딱 두가지다. 참 열심히, 정열적으로 강의를 하던 젊은 교수의 인상적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데이비드 리카도비교우위론의 이론적 증명과정이다. 한 학기 내내 비교우위론을 설명하는 열정적인 교수의 모습! 이것이 수 년이 지난 내게 남은 국제경제학의 기억이다. 이 분 역시 자유무역에 대한 신봉이 깊었는데 그래도 사람은 참 좋았다. "두 국가와 두 가지 재화만 존재한다는 가정을 토대로 세운 이론이 수천 종류의 재화와 서비스가 오고가는 현실에서 얼마나 유효하냐?", "비교열위가 되어 사양화 되는 산업과 그 종사자는 어떻게 되는거냐?", "의료나 농업 같은 분야도 비교우위에 서지 못하면 포기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 등등 답안지에 적어내면 C+ 받기 좋은 질문만 골라하던 내게도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200년쯤 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던 교수님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분명 좋은 사람인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


 수출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믿음이 전폭적인데다 경제학과가 개설되어 있는 대학 강단에서는 무역장벽을 없애거나 극단적으로 낮춰 보다 자유로운 무역과 수출증가를 노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여기에 개겨서 답안을 써내봤더니 역시나 C+ 때렸다) 이게 한국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을 지배하는 생각이다. 경제적 도그마에 가까운 FTA 맹신이 태풍이 되어 한국사회를 휩쓰는 동안 사태를 차분하고 냉정하게 바라보고 대응하려던 세력과 목소리는 힘을 잃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FTA 국회비준은 날치기로 통과되어 우리 손을 떠났다. 하지만 C급 경제학자를 자처하며 길거리로 나선 경제학자 우석훈은 '아직... 잠깐만'이라고 말한다. 그 목소리가 정리된 책이 이번 신작 <fta 한 스푼, 그리고 질문 하나>. 국회 날치기 통과 이후 '이미 끝난 일'이라며 찬성했던 측은 여전히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반대했던 측은 무력감에 빠져있는 동안 우석훈은 이 책을 통해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영화 <고질라>에 등장하는 괴수 '고질라'처럼 영화가 시작하자마자가 아닌, 영화가 한참 지난 후에 비로소 종국의 괴수가 등장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사실 FTA에 대한 맹목적 찬성이나 '김치국 마시기'는 세계무역의 역사와 구조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참여정부가 추진한 한미FTA가 정권 말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며 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증가한 듯 보이기는 했지만 한국정부나 한국인들이 그 이전부터 FTA에 대한 연구나 학습을 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저 태평양을 횡단하여 미대륙이라는 경제영토 정복(말도 안되는...-_-)을 위해 돌진하는 기마병 군단이란 정부광고 속의 이미지, 그 정도가 국민 일반이 가진 FTA에 대한 인식수준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난 FTA를 만병통치약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쇼비니즘적 종교인들이라고 본다) 일단 FTA를 왜 시작했고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물어보면 지식과 관점을 가지고 정확히 답변할 사람 몇이나 될까. 우석훈 역시 이를 파악한 듯, 김현종으로부터 시작되는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추진의 내재적 원인과 음모론적 이유부터 차근차근 설명한다. 물론 우석훈이 전 통상교섭본부장도 아니고 외교통상부에 큰 빨대를 꽂고 있는 것이 아닌 이상 한미FTA의 확실한 개시 이유를 정확히 설명해 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97년의 IMF 외환위기 사태는 터지고 나서 1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발발 원인에 대해 여러 설과 음모론이 난무할 뿐, 정확한 이유가 드러나지 못했잖은가) 하지만 정보가 차단된 바깥에서 이 정도의 내재적 원인과 음모론적 이유를 추론할 수 있는 사람도 그리 흔치 않다. 우석훈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상당히 설득력있는 원인과 이유들을 추론해 낸다. 여기까지가 1장까지의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fta 한 스푼, 그리고 질문 하나>에서 가장 중요한 장은 2장이라고 생각한다. 3장으로 이뤄진 <fta 한 스푼, 그리고 질문 하나>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장이기도 하지만, 그 내용이 현재 국내경제와 연계되어 FTA가 몰고올 파장과 그 피해를 입을 계층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우석훈은 여기에서 한미FTA4대 피해집단으로 1.청년 2.소상공인 3.농업 4.의료비 카타스트로프(원래는 문학용어. 대단원으로 넘어가는 마지막의 변곡점을 말함. 요즘엔 일상적으로 대재앙 정도의 의미를 가짐)를 지목한다. 우박도 먹고 살아야 하고 <fta 한 스푼, 그리고 질문 하나>의 출판사인 레디앙도 도산 직전이라 하니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책을 구입해서 읽어보기 바란다. 4대 피해집단에서 '청년' 하나만 걸리는 나도 걱정이지만 만약 농업에 종사하는 청년이라면? 의료비 부담이 큰 희귀성 질환을 앓는 환자를 가족으로 둔 소상공인이라면? 중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피해집단의 고통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설사 본인은 여기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가족이나 친척까지 벗어나기는 어려울만큼 피해집단의 범위도 크다. 객관적으로 추산하기 어렵고, 설사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내게 줄 편익이 대단히 모호한 국익이란 허상에 열광하는 동안, 당신과 당신 주변의 누군가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질식해 갈 지도 모른다. 그 공포가 실현되는 순간이 우석훈이 말하는 '고질라의 등장' 시점이다.

 

우석훈은 단순히 공포감을 자극하는 선에서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 3장에서 추가적으로 진행하겠다는 한일FTA나 한중FTA처럼 동시다발적 통상개방정책에 일관된 철학과 비전이 자리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나서 기본적으로 한국이 나아가야 할 통상정책의 방향을 고민한다. 기술적으로 통상정책을 수립하고 수행할 기관의 개편을 고민하기도 하는데 현실적으로 정치권력의 향배에 영향을 받는 정부부처의 성격을 감안하여 3가지 개편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물론 지금 당장 급한 한미FTA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경제학자 우석훈의 제안도 빠지지 않았다. 우리 모두의 더 나은, 더 행복한 삶을 고민하는 C급 경제학자의 고민은 과연 경제적 도그마에 빠진 국민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



이젠 정말 대선이다. 여당의 박근혜 후보는 당내 경선에서 압도적인 세를 자랑하며 대통령 후보가 되어 대권 행보 중이다.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경선이 한창이다. 국민들은 좋든, 싫든 선택을 해야만 한다. 선택의 순간은 다가오고 있고 그 선택의 결과에 따라 몇 년 뒤 우리네 삶의 모습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우석훈은 지지하거나 혹은 지지하기로 마음 먹은 정치인에게 "당신의 통상정책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라고 권한다. 그 답이 무엇이 되던가 우리의 삶을 개선하는데 있어 매우 유의미한 일이라는 것이 우박의 생각이다. 그런 우리의 질문이 한 스푼, 우리의 노력이 한 스푼.... 한 스푼, 한 스푼 쌓아서 더 나은 미래를 꿈꿔보자는 그의 말은 희망이 증발한 지금의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제안이다. 사실 이대로 뭣도 모르고 당하기에는 억울하지 않은가? 이제 알아보고 질문할 때다. 희망은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겨우겨우 만들어가는 것이다. 딱 한 스푼 만큼만 더해라. 무력한 각 개인들이라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끝으로 우석훈이 경제대장정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려 아껴뒀다가 이번 <fta 한 스푼, 그리고 질문 하나>에서 쓰고 말았다는 말로 마무리 하려 한다.

 


"우리는 지는 법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