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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외국문학

[이유 - 미야베 미유키] 한국의 집은 미다스의 손인가?

인간이 창조한 사물에는 내재적인 용도와 가치가 존재한다. 이를테면 과도는 사과나 배의 껍질을 벗기는 용도가 있고, 야구배트에는 야구공을 타격해서 안타나 홈런을 만드는 장비로서의 용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상황에서 가치를 갖는다. 하지만 그 장비들은 애초 의도된 상황이 아닌 곳에서도 다르게 사용될 수 있다. 과도는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흉기로 둔갑할 수 있고, 야구배트는 아들을 때린 원수의 엉덩이를 내려치는 몽둥이로 변신할 수 있다. 본디의 가치와 용도가 왜곡된 것은 과도나 야구배트만은 아니다. 움직이지 않는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현대 한국사회에서 한국인들이 지닌 집에 대한 욕망은 교육열 못지 않게 뜨겁다. 집은 내 가족과 함께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아이들이 커가는 거처다. 그에 대한 욕구는 사실 전인류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헌데 한국인이 지닌 집에 대한 욕망은 집 본연의 효용과는 거리가 먼 곳을 욕망한다. 여기에 인류 보편적 욕구와 차이를 있다. 부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의 불꽃에 '집'이란 단지 재테크와 자산증식의 불쏘시개다. 영등포의 동쪽이란 뜻의 영동지역이 70년대 지금의 압구정, 청담 일대의 강남으로 개발되고 막대한 개발이익이 발생하면서 부동산을 통한 자산증식은 일종의 공식이 됐고 이제는 부동산 불패의 신화로 자리잡았다. 강남에 위치한 집이란 쾌적한 주거공간 보다는 주택가가 올라 나를 기쁘게 해준 부동산 상품으로 인정받았다. 그래서 몇 년의 수고로도 거머쥘 수 없는 목돈을 쥘 수 있는 확실한 로또복권으로 사랑받았다.

 



이유

저자
미야베 미유키 지음
출판사
청어람미디어 | 2005-12-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현대 일본의 빛과 어둠을 드러내고, 사회와 인간을 폭넓게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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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회 나오키 상 수상작인 미야베 미유키 작 '이유'의 소재 역시 집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우리나라에서 영화화된 '화차'로 더욱 유명하다. '이유'라는 작품은 반다루 센주기타 뉴시티 웨스트 타워 2025호에서 벌어진 일가족 4인 살인사건과 관계된 다양한 계층과 성별의 사람들을 역추적해가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일반적인 미스테리 소설의 형태와는 사뭇 다르다. 사건의 시작부터 순차적인 방식으로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건 이후 한 작가가 이 사건을 역추적해 나가는 방식으로 집과 관련된 살인사건의 이면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미야베 미유키는 인터뷰의 형식을 빌어 이야기를 풀어낸다. 웨스트 타워의 본 거주인이었던 고이토 일가와 '버티기꾼'으로 2025호에서 거주하다가 살해된 4인은 물론 그와 관계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표현해 냈다. 무인도에 갇혀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서바이벌 게임에 내쳐진 중학생 1개 학급의 이야기를 그려낸 일본만화 '배틀로얄'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다. (영화에서도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배틀로얄에서는 학생이 한 명 살해될 때마다 이전의 그네들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각각의 판단과 행동을 설명했다. '이유'에서도 해당인물들의 사건 이전의 삶과 이야기를 풀어헤침으로써 현대인의 집에 대한 욕망의 실체를 파고든다. 소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너무도 다른 환경에서 너무도 다른 과거를 뒤로 하고 살아온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 각각은 트럭운전사, 노인요양원에 사는 할머니, 가출인,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소녀 아기엄마 등등 부동산 거품과 그 몰락에 있어 아주 작은 관련이 있을 뿐이지만 결국 거품붕괴의 태풍에 휩쓸려 들어가 희생되고 만다. 그만큼 미야베 미유키는 부동산 거품이 일본사회에 끼친 영향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해 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 일본경제의 상황을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일본경제는 60~70년대 자동차와 워크맨으로 상징되는 황금기를 구가했다. 막대한 쌍둥이적자, 특히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던 미국을 비롯 일본산 제품의 융단폭격을 맞은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선진국들은 85년에 부랴부랴 엔화를 절상시키는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낸다. 플라자 합의라 불리는 이 엔화 절상으로 일본의 수출은 타격을 입었지만 그만큼 일본경제의 위력을 보여준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덕에 한국산 상품이 일본상품의 대체재로 히트를 쳤고 이게 우리에겐 80년대 중~말 3저호황을 동반한 신화적 황금기를 구가할 수 있는데 큰 역할을 했다. 연희동 문어가 정치를 잘해서, 올림픽을 개최해서 그 시절 먹고 살기 좋았다는 헛소리은 이제 좀 그만... 공부하세요.) 자동차, 전자제품 등 일본이 자랑하는 수출품들이 세계시장을 휩쓸었지만 정치적으로 절상된 환율로 수출길이 막힌 일본 재벌과 잉여자금들은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갔다. 부동산 시장에 쓸려들어간 막대한 자금은 거대한 부동산 거품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됐다. 현대인의 욕망처럼 부풀어 오른 거품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1980년대 말 일본 거품경제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소설은 바로 이 시점을 배경으로 삼는다.


일본의 부동산 거품은 거품경기를 통해 한 몫 건져 부자가 되고자 했던 일본국민들과 본업인 제조업은 내팽개치고 자국과 미국 등의 부동산 투기에 돈을 쏟아부은 일본기업들, 이에 엄격한 심사 없이도 대출을 퍼주던 일본 금융기관의 탐욕이 빚어낸 비극의 하모니였다. 소설에서 '집'을 소재로 삼은 것도 바로 이들의 탐욕에 부동산 투기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집은 본래 가지고 있던 생활공간이나 주거공간으로서의 가치보다는 투기의 대상이 되는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훨씬 도드라졌다. 수천 년 동안 안락함과 편안함의 상징이었던 집은 이제 현대인의 욕망이 투사된 하나의 투기상품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소설 '이유'는 하루의 묵은 때와 피로를 풀어줄 마지막 휴식처인 '집'조차도 상품화 시켜버린채 그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참상을 담담하면서도 사실감 있게 그려낸다.


'이유'를 읽고난 뒷맛은 씁쓸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소설에서 가장 큰 주제로 삼은 부동산 문제에서 우리는 아직까지 문제를 덮고 쉬쉬하기에 바쁘고 정치적인 폭탄 돌리기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여러 전문가들이 이미 경고한대로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가계부채가 900조를 넘어섰다고 아우성이지만 이 중 860조원 가량이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가계대출이란 점은 제대로 보도되지 않는다. 부동산 불패신화를 믿고 주택관련 대출을 받은 가계는 이제 가계수입의 상당액을 은행에 이자 내면서 생활하는 하우스 푸어로 전락했다. 2005~2008년에 잠깐 반짝였던 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각종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상한가에 집을 구매한 가계로서는 얼어버린 부동산 시장에서 손절매 하고 나오기에 감당해야 할 손실이 너무 크다. 그나마 정부에서 이들의 거치기간을 일시적으로 연장시켜주기는 했지만 그 중 46%의 가계는 올해와 내년에 다시 원리금 상환이 개시된다. 심각한 고용 불안정, 높은 물가상승률, 그리고 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가처분소득에도 불구하고 은행에 이자를 내며 악전고투하던 가계로서는 이래저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셈이다.

 


인류 역사 수천 년간 편안함과 안락함의 상징이던 집은 십수 년 만에 회한과 한숨이 가득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이 극적인 변화는 100년도 되지 않은 과거에 발생해서 100년도 되지 않아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흉기로 돌변했다. 무서운 사실은 이 상황이 단지 한 국가 안에서만의 사태로 끝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사태도 실상은 미국 내에서 벌어진 주택담보대출의 부실화가 그 원인이었다. 집을 투기적 상품으로 만들어 신용도가 극히 불량한 서브프라임 등급에 대출을 하고 이를 기반으로 허상에 가까운 금융상품을 만들어 내서 팔았던 미국 금융기관들의 탐욕이 비난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거액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는데 동의했고 '이익은 사유화, 손해는 국유화'란 조롱이 이어졌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화는 곧 세계적 금융경색과 위기로 이어졌다. 미국의 채권이나 파생상품과 연계된 세계 각국의 정부와 금융회사들이 벌벌 떨었고 애꿎은 시민들이 영문도 모른채 위기때문에 고통받았다. 집은 일국의 가계나 정부를 넘어 인류사회의 공공여력까지 갉아먹는 불사의 괴물 불가살이 되버렸다. 흡사 과도가 흉기가 되고 야구배트가 몽둥이가 되는 것처럼 그 변신의 칼끝은 인류를 향해 위협적으로 겨누어져 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DTI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한다. 이제 임기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큰 문제만 안 터지면 된다는 식이다. 흡사 상처가 곪아가는데 내가 진료할 때는 절단수술 할 정도는 아니니까 빨간약만 발라주고 보내는 의사같다. 대세하락기에 있는 지금의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꼴딱거리는 목숨 조금 연명하는데는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빚으로 빚을 상환하라는 의도는 처음부터 옳지 않다. 아니 이 정도면 막장으로 가자는 것과 같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자신의 트위터(@retiredwoo)에서 'DTI 해제는 악마와의 키스다... 모피아들도 DTI 풀자는 얘기는 차마 못한다. 그걸 풀자는 건, 사람으로서 할 얘기가 아니다. 한국 언론, 대체 어디까지 망가지자는 거냐...', 'DTI 풀면, 개인파산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 은행들 자빠뜨려야 하는데... 모피아들도 그게 무서워서, DTI 풀자고는 안합니다. 개인 망하고, 은행 망하고, 이게 정부가 할 짓이 아니죠...'라고 일갈했다. 정신차려라. 지금이야 곪은 데 째고 봉합하는 정도에서 끝날 수 있지만 나중에는 절단 밖에 방법이 없을 때가 올거다. 지금 조금 아프다고, 고통스럽다고 다리를 잃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 왕 황금에 대한 탐욕이 지나쳐 신에게 자신의 손에 닿는 것은 뭐든지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소원이 이루어진 다음 뭐든지 황금으로 변하자 잠시의 행복이 찾아왔다. 하지만 축복은 곧 자신이 사랑하는 딸을 금덩어리로 만들어 버리는 저주가 됐고 자신조차 빵 한 조각,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흡사 우리도 신에게 집으로 황금을 만들어 달라는 저주를 소원이라고 말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