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스터리 역대 20년 총결산 1위 '화차' 한국 상륙

- 저자
-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출판사
- 문학동네 | 2012-02-20 출간
- 카테고리
- 소설
- 책소개
-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역대 20년 총결산 1위 제6회 야...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화차(火車)'는 금융자본시대의 거대담론이 아니라 그 맨 아래에서 스러져가는 한 개인의 삶에 집중합니다. 화차(火車)는 생전에 악행을 저지른 망자를 지옥으로 실어나르는 불수레라고 하지요. 이야기를 풀어가는 주인공은 '혼마 슌스케'라는 경찰관으로, 교통사고 때문에 아내 지즈코를 잃고 입양한 아들 사토루와 둘이 살아가는 사내입니다. 어느 날 죽은 아내의 먼 사촌의 아들 가즈야가 찾아와 사라진 자신의 약혼녀 '세키네 쇼코'를 찾아달라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소설의 대략적인 스토리 전개는 영화와 비슷합니다. 사라진 약혼녀 세키네 쇼코를 찾아가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마침 부상으로 인한 휴직 중이었던 혼마는 세키네 쇼코를 찾기 시작합니다. 혼마는 세키네 쇼코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즈야가 알고 있던 세키네 쇼코는 그녀를 사칭한 '다른 어떤 여자'임을 알게 됩니다. 추적을 계속한 끝에 그 '다른 어떤 여자'가 '신조 쿄코'임을 밝혀냅니다. 소설은 마침내 신조 쿄코를 찾아내 만나게 된 혼마의 모습을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소설과 관련해서 아사히 TV에서 제작한 일본 드라마 '화차'와 한국에서 변영주 감독이 영화화한 작품 '화차'를 모두 봤습니다. 일드 화차 같은 경우에는 원작을 거의 훼손하지 않는 작품입니다. 국내에 번역된 화차가 485페이지나 되기 때문에 부담스러우신 분은 일드를 시청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소설에 등장했던 남성가정부 이사카와 그의 자녀 밋짱이 등장하지 않고, 죽었다고 했던 강아지 보케(소설에서는 멍청이 - 보케가 일본어로 멍청이란 뜻이라더군요)가 살아돌아온다는 정도입니다. 그 외에는 미야베 미유키의 원작을 영화로 본다고 생각하셔도 무방할 정도로 잘 만든 작품이 일드 화차입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와 변영주의 '화차'

변영주 감독이 국내에서 영화화한 '화차'는 소설이나 일드와는 크게 다릅니다. 화차는 기본적으로 미스터리 소설의 성격을 갖추고 있지만 분명한 사회적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소설 화차 뒷면에는 '평범한 삶에 대한 갈망과 실체없는 자본주의의 허상이 만들어낸 비극, 현대사회의 맹점과 어둠을 가감 없이 그려낸 사회파 미스터리의 걸작'이란 소개문구가 있습니다. 변영주 감독조차도
"세상 밖으로 쫓겨나고 싶지 않은 카인의 후예와도 같은 두려움을 끌어안고 냉혹한 금융사회의 줄 위를 위태롭게 걷고 있는 우리는 이미 '화차'가 도착해야 할 어둠의 그곳에 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서글프고 헛된 우리의 욕망을 재미와 긴장감이 가득한 미스터리로 그려냈다는 것이 바로 '화차'의 가장 놀라운 부분이며, 끝내 내가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고 밝히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 변영주 감독이 만들어낸 영화 '화차'는 사라진 약혼녀를 향한 한 남자의 지고지순하면서도 히스테릭한 순정스토리로 변질되어 있었습니다.
소설을 읽고 일드를 보고 마지막으로 영화를 관람했는데 영화 화차에는 대단히 실망했습니다. 변영주 감독의 인터뷰를 보고 갔기 때문에 화차를 어떻게 한국식으로 풀어냈을지 기대했는데 그 기대는 곧 실망으로 번졌습니다. 소설 화차와 일드 화차가 금융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파멸을 추적하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그림으로써 분명한 사회적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면, 변영주 감독의 영화 화차는 실종된 약혼녀를 찾으려는 히스테리컬한 남자의 이야기로 크게 축소되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게 변질되어 있었습니다. 소설과 일드에서는 거의 등장하지도 않는 이선균(가즈야 - 약혼녀를 잃은 은행원)의 고함소리와 히스테릭한 돌출행동만이 도드라져서 보기에도 불편했습니다. 소설과 일드에서 가장 중요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인물인 '미조구치' 변호사는 아예 등장하지도 않더군요.
변영주 감독의 위와 같은 인터뷰를 봤을 때 그는 화차가 전달하고자 하는 금융자본주의의 위험성과 잔인함을 충분히 감지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마땅히 강선영(영화에서 김민희가 사칭하고 살해한 인물, 소설/일드에서는 세키네 쇼코)의 과거와 파산과정을 살렸어야 했고, 개인파산과정을 도운 미조구치 변호사와 혼마 슌스케(영화에서는 조성하)가 몇 번이나 만나 나눈 대화 역시 살려냈어야 합니다. 영화에서는 차경선(김민희의 진짜 정체, 소설/일드에서는 신조 쿄코)의 집안이 몰락한 과정과 차경선의 과거를 살짝 보여주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극적 개연성을 확보하려는 목적에서지 소설이나 일드에서처럼 작품의 완결성을 위한 장치는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영화를 풀어내니 '사채를 쓴 집안의 딸이 대물림 빚에 쫓겨 낭떠러지로 몰려서 살인을 저지르고 극단적인 신분세탁을 했다'는 단순한 미스터리로 전락해 버린겁니다. 관객들이 냉혹한 금융사회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현실긴장감을 느낄 수 없게 만든 장본인은 극본과 감독을 담당한 변영주 감독 본인인 것입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재미와 긴장감에 집중한 나머지 금융사회에서 줄타기 하는 우리의 현실과 서글픈 욕망을 잊어버린 걸까요? 분명한 것은 원작을 살리는데 크게 실패한 영화이고 나름 각색한 영화도 단순한 미스터리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어정쩡한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미야베 미유키가 영화 화차를 보고 나면 어떤 평가를 할 지 궁금한 대목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최근 가장 눈여겨 보는 배우인 이희준 씨가 극중 차경선(김민희 분)의 전 남편 역(소설/일드에서는 구라타 고지)의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는 점 정도가 그나마 눈에 들었습니다. 이희준 씨는 영화 특수본, 부당거래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고 각종 드라마에서도 눈도장을 찍고 있는 배우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KBS 드라마씨티의 한 단막극에서 그의 연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여자 아이돌이나 배우 팬클럽에도 들지 않았던 제가 처음으로 팬클럽 카페에 가입한 것도 그의 팬클럽이었습니다. 역시 화차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더군요.
금융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독
(여기서부터는 변영주 감독의 영화 '화차'는 다루지 않습니다. 이후부터의 화차는 소설과 일드의 내용만을 기초로 해서 적어봅니다.)
말이 살짝 샜지만 결국 화차는 금융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를 통해 자연스럽게 무언의 메세지를 전달합니다. 인터넷을 떠돌아 다니는 '퍼가요~' 사진은 다음 달 카드값을 막기위해 이번 달 월급을 받는 우리네 현실을 자조적인 웃음으로 표현해서 인기를 끌었지요. 연속으로 몇 번이나 동결되는 한국은행의 금리가 이미 9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 그 중에서도 하우스푸어들의 목을 죄고 있는 주택담보대출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것은 이미 상식에 속합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우리는 금융기관과 관계를 맺지 않고는 살아가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관계는 때론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맺어야 할 때가 많고 혹여 그 관계에서 작은 실수라도 하게 되면 금융노예로 전락하기 십상입니다. 화차의 세키네 쇼코 역시 아주 적은 카드빚으로 연체금 8천만엔의 신용불량자로 전락했지요.
금융자본주의. 말이 참 어렵습니다. 따분했던 경제학 강의 시간에 들었던 금융자본주의 같은 단어와 소설에서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집집마다 주식, 펀드 하나 정도는 하고 우편함에 금융결제원에서 보낸 우편물 하나쯤은 꼭 자리하고 있는 재테크의 시대 정도로 정의하는 것이 속편합니다. 분명한 것은 큰 수익이라는 장밋빛 약속은 신기루였음이 드러났고 순식간에 불어난 빚으로 고통받고 심지어는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라며 난리법석을 떨었을 때 대다수 성실한 월급쟁이들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장삼이사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시킨대로 열심히 야근에 주말근무까지 마다하지 않고 일했습니다. 또 금융회사 직원의 권유대로 성실하게 피같은 월급을 적금이네 펀드네 주식이네 꼬박꼬박 넣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금융위기라니요. 수조원의 순이익을 남긴 은행들의 실적과는 상관없이 고객이 된 직장인들은 저금리와 마이너스 수익률이란 찬밥대우를 받았습니다. 유례없는 금융기관의 실적대박에서 소외된 고독한 장삼이사들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위기에 처했을까요? 이게 위기는 맞는 걸까요?
빌려준 자와 빌린 자
뉴스, 신문에서는 '금융권의 탐욕'을 비난했지요. 그들이 만든 엉터리 금융상품과 그들만의 돈잔치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그에 따른 책임을 진 사람도, 처벌을 받은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탐욕도 탐욕이지만 몰염치는 더욱 가관이었습니다. 책임있는 자들은 높은 연봉을 받다가 문제가 커지자 오히려 거액의 퇴직금을 챙겨서 회사를 떠나버렸습니다. 금융기관은 오히려 주제에 맞는 소비를 하지 못한 개인의 책임이 크다고 항변합니다.
탐욕과 무절제는 금융소비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무분별하게 카드를 발급하고 대출경쟁을 벌인 금융기관 역시 그 책임이 무겁습니다. 그런데 그 책임을 개인에겐 엄격하다 못해 잔인하게 물었으면서 금융기관은 은근슬쩍 넘어가버렸습니다. 한 개인이 카드로 돈잔치를 벌였다고 가정해보면 차이가 더욱 명확해집니다. 부실해진 금융기관은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투입해 회생/면책해주면서도 개인에게는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을 찍고 지독한 채권추심을 통해 괴롭히지요. 드라마로 만들어진 '쩐의 전쟁'에서 주인공 금나라의 아버지는 카드를 갈아 동맥을 끊고 자살하며 이런 유언을 남깁니다.
"나라야, 카드 쓰지 마라."
드라마의 한 장면이지만 조금만 찾아봐도 비슷한 사례는 많습니다. 어느 집이든 주식으로 정산받은 퇴직금 날린 친척 한 명 없는 집은 없을 겁니다. 여기에 주가 떨어지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호들갑을 떨며 지금이 매수타이밍이라고, 저점을 찍었다고 떠들어대는 경제방송은 무책임할까요. 시중 모 은행에 근무하는 한 지인은 매달 떨어지는 카드와 방카슈랑스 할당량 때문에 괴롭다고 밝혔습니다. 이 친구는 한문학을 전공했고 연수 후에도 보험의 ㅂ자도 잘 모른다고 실토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고객에게 지인에게 친구에게 금융상품을 권유합니다. 은행은 무책임합니까? 2000년대 초반에는 대학 안까지 들어와서 대학생에게 카드를 팔아대던게 카드사였지요. 1000만 고객을 자랑하던 L카드의 폭풍성장은 그로 인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 뒤 카드대란으로 회사는 망했지만 공적자금을 통해 살려냈고 지금은 S카드사로 이름을 바꿔달고 있습니다. 물론 그 덕분에 수많은 청년 신용불량자가 양산됐습니다. 수입이 없는 대학생한테까지 카드를 발급한 카드사는 무책임할까요. 금융회사의 딜러, 브로커(증권사 다니는 대다수 직원들은 그저 매매수수료 챙기는 '브로커'입니다), 은행원들은 단 한 번이라도 고객을 위해 "이러시면 안됩니다."는 이야기를 해본 일이 있습니까?
자동차만 브레이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금융기관이 더 많은 수익을 위해 무분별한 대출을 늘리고 카드를 발급하고 주가 뻥튀기를 하는데는 일차적으로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면이 큽니다. 탐욕에 눈이 먼 금융기관을 감독하고 통제하기는 커녕 오히려 부추켰던 것입니다. 최근에는 DTI규제를 완화해서 돈을 더 빌려쓰라고 권유하는 정책을 꺼내들었지요. 이미 금융대출의 늪에 빠진 이들을 아예 헤어나올 수 없게끔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야 말것입니다. 현대판 금융노예가 되어 버는 족족 은행에다 이자 바치는 신세가 되겠지요.
이미 화차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일본에서는 카드와 사채 등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우리나라도 꼭 10년 뒤인 2000년대 초에 그 상황이 됐죠. 2008년에 미국에서 벌어졌던 금융위기라는 것도 실상은 금융기관의 탐욕과 부동산 버블로 인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부실화되면서 연쇄적으로 금융기관들이 도산해 (리먼 브라더스 무너진 건 정말 ㅎㄷㄷ... 대마불사는 어디가고... 우리나라에선 그 때쯤 리먼 브라더스를 인수하자는 ㅈ신문도 있었고 ㄱ장관도 있었죠) 벌어진 사태입니다. 상환능력이나 수입을 따지지 않고 카드를 발급한 일본과 한국, 신용등급이 아주 떨어지는 서브 프라임 등급에 거의 100%에 이르는 집값을 대출해준 미국의 금융기관들은 그야말로 폭주기관차가 되어 먹이감이 될 사람들을 찾아다녔던 겁니다.
이제는 저 폭주기관차를 멈춰세워야 합니다. 여자고등학교에서는 졸업할 때가 되면 화장품회사에서 나와 화장품과 화장법을 소개한다고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간략하나마 경제와 금융에 대한 소개와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현대는 금융과 떨어져 생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생활에 깊숙히 침투해 있는 금융과 경제에 대한 교육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금융기관의 탐욕에 유혹당하지 않을 현명한 소비자를 키워내는 것이 시급하다는 말입니다.
또 금융기관의 탐욕을 감독하고 제어할 법과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금융기관에게 자정능력이나 자제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느 조직이나 회사던 본질적으로 팽창과 확대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공익적 차원에서 합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은 공적 권력입니다. 그래서 국회와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국회의 합리적 금융관련 법안 제정과 정부감독기관의 냉철한 역할이 건강한 금융시장조성과 금융소비자 보호를 가능하게 할 것이고 탐욕에 절은 폭주기관차를 멈출 브레이크인 것입니다.
화차와 팩션의 시대

최근 한국에서는 '도가니'라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소설가 공지영이 쓴 소설 '도가니'를 원작으로 영화를 잘 만들어낸 것이 성공의 주요인이란 평가가 많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원작의 퀄리티나 영화적 완성도에서만 흥행의 요인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광주인화학교를 폐쇄할 정도로 대중의 관심과 분노를 일으켰던 것은 바로 팩트가 가진 힘을 빼고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 광주인화학교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은 소설의 모티브가 되어 영화화 되고 대중에케 팩트로서 전달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대중은 이 팩트에 분노했고 그 폭발적인 관심이 묻혀졌던 사건을 다시금 세상에 나오도록 만든 힘이었습니다. 이것을 두고 '팩션'의 시대가 왔다는 평가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습니다.
화차는 어떤 뚜렷한 사건을 모티브로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생활 곳곳에서, 우리 주변 사람 개개인에게 벌어지고 있는 금융관련 사건들을 매우 현실감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글 이곳저곳에는 그런 현실에 대한 세세한 묘사가 매우 많습니다. 작가가 상당히 세심한 자료조사와 취재를 했음을 반증하는 대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설의 베스트셀러라 불리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자들은 화차를 통해 단순히 긴장과 스릴의 미스터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발생한 사건과 배경, 인물에 대한 묘사에서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에 이릅니다. 그것은 실상 시키는 일에 열심이었는데도 어느 날 갑자기 '위기'라며 희생과 손해를 강요받는 아이러니에 대한 대답을 원했던 대다수 성실한 사람들의 욕구에 부합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구조적인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영문도 모르고 사회적 사기를 당하는 대다수 대중은 팩트에 대한 내재적 욕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팩트가 지닌 진실의 힘은 대중이 가진 의문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불균형 사회로 가는 한국에서 살인적으로 일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는데도 가난해지는 현실에 대해 한국인이 가진 의문이 큰만큼 팩트에 대한 욕구가 커질 것이라는 예견도 그만큼 쉽습니다. 영화 '화차'는 이 부분에서 실망스러웠지만 소설이나 일드 화차는 그 욕구에 부합하는 '팩션'입니다.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미야베 미유키는 객관적인 현실 팩트들을 가지고 화차라는 픽션을 썼기 때문입니다. 팩션의 시대, 이곳에 가득찬 부정한 아이러니들이 그 허위와 위선의 껍데기를 벗고 진실한 눈 앞에 바로 서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