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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한국문학

[상실의 시간들 - 최지월]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죽음이 담은 의미




상실의 시간들

저자
최지월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14-07-1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죽음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삶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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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을 마감한 전직 대통령의 서거, 놀랍도록 끔찍하게 살해된 강력범죄 피해자의 죽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의 추락사 등 등 죽음이란 우리의 곁에 조금은 특별한 모양새로 그려진다. 그 죽음이란 대게 미디어를 통해 일반에 전해진다. 그렇기에 평범하지 않다. 잘 알려지거나 사회와 국가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의 죽음처럼 공공의 애도를 받을만 하거나, 그 죽음의 과정이 너무나 특이하여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죽음들만이 미디어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의 죽음은 지극히 '평범하기에' 미디어를 오를 일도, 공공의 애도를 받을 리도 없다.


올해 19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인 최지월의 <상실의 시간들>은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죽음이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를 집요하게 파헤친 작품이다. 특별한 사고나 범죄로 사망한 것도 아니고, 큰 인물이 서거한 것도 아닌, 정말 그저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노년의 엄마의 죽음. 그것을 소재로 그린 '죽음'은 남겨진 가족과 그 가족을 이루는 개인들에게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이나 6.15 남북공동성명보다도 큰 사건이다. 엄마의 부재는 당장 남겨진 아버지와 주인공 석희를 비롯한 세 딸의 관계를 비틀어 버렸고, 생활양식과 우선순위를 바꿔놨다. 정작 돌아가신 엄마는 아무 말이 없는데 남겨진 가족들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엄마를 기억하고 그 빈자리를 느낀다. 한 사람의 죽음이 가지는 의미는 그렇게 뒤늦게 다가온다.


이미 병들고 늙어서 홀로 생활하기도 불편한 아버지는 엄마나 떠나 홀로 남았음에도 여전히 군림하려 한다. 스스로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아버지는 엄마의 죽음 앞에서도 의연한 스스로를 은근히 뿌듯해한다. 멀리 호주로 이민가서 사는 언니 소희는 말로는 아버지를 끔찍히 생각하는 것 같으면서도 현재의 아버지에게 밥 한 끼 차려줄 수 없는 타국사람이 된지 오래다.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 했던 막내 은희는 제가 마치 엄마라도 된 양, 모든 것이 불만이다. 엄마라면 그런 것을 탐탁해 하지 않았을 것이란 거다. 죽어서 말이 없는 엄마를 두고, 제사상 하나 차리는 것부터 아버지의 생활과 통원치료를 꾸리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화자와 자매들은 타인과 피붙이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한다. 저자의 말대로 그것은 서로가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어느 평범한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이 남기는 의미이자 크기일 뿐이다. 그렇게 죽은 사람의 사후시간도, 산 사람의 삶도 계속된다.


죽음이라는 소재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작가 본인이 본래 그래서였을까. 작품은 시종일관 진지하다. 흔한 유머 한 번 없이 삶과 죽음, 인간에 대해 집요하도록 이어지는 작가의 생각들은 등장인물, 특히 화자인 둘째 딸 석희의 삶과 생각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삶을 지속한다는 건 끊임없이 낯설어지고, 새로워지고, 고독해지는 일이다. 형제도 자라서 타인이 되고, 타인이 만나서 가족이 되고, 그 가족은 다시 서로를 헤아리지 못하는 타인으로 변해 헤어진다. 만난 사람은 헤어진다. 40년이나 알아온 엄마와 나도 이제 헤어졌다. 이별만이 인생이다.


- 최지월, <상실의 시간들>, 한겨레출판, 2014, 255p.


삶의 의미, 관계의 허무함, 가족의 실체, 이별을 내포한 만남의 본질 등 짧은 문장에서도 작가의 순도 높은 고민들이 묻어난다. 작품 곳곳에서도 '~만이 인생이다'고 정의한 석희의 한 마디는 살아있는 오늘에 취해 자칫 잊기 쉬운 삶과 죽음의 한계를 퍼뜩 깨닫게 한다. 젊음과 늙음도, 삶과 죽음도 그저 찰나이며 동시에 영원하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은 바로 '나'를 이해하는 필연적 과정이다.


<상실의 시간들>은 작품 자체에서도 굉장히 만족했지만 최지월이란 작가의 발견이란 점에서도 무척 반갑다. 이 진지한 신인작가에게서는 뭔가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문학을 계속할 것이란 느낌이 든다. 고집있게 자신이 생각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은 장인이던 작가던 신뢰가 가기 마련이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화자인 석희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심리변화와 생각들이 작가의 그것과 많이 동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저자 역시도 어머니의 죽음 이후 2년에 걸쳐 이 작품을 섰다고 밝혔다. 석희의 내면이 말하는 삶과 죽음의 의미, 일상의 파편들과 현실의 비루함 등에서 큰 공감을 느꼈는데, 그것은 현실과 사물에 대한 작가의 끊임없는 고민과 사색이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스스로의 경험과 시간들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은 물론이다. 과연 작가 최지월은 다음 작품으로 어떤 소재를 선택해 어떤 시각으로 그려낼지 독자로서 기대가 크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지면을 채우는 엽기적인 사건과 그로인한 비극적인 죽음에는 만성이 돼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우리지만, 내 주변의 평범한 죽음 앞에서는 한없이 약하고 무력한 존재가 된다. 죽음이란 도둑과 같이 찾아와서 우리를 깊은 심연에 빠뜨린다. 그것이 슬픔의 연못인지, 허무의 연못인지는 아니면 그 어떤 깊은 웅덩이가 될지는 개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주변의 평범한 죽음이 비로소 내게 다가와 그 연못에 나를 밀어넣었다면 <상실의 시간들>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