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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한국문학

[잠실동 사람들 - 정아은] 2015년 한국사회에 현미경을 들이댔더니...


잠실동 사람들

저자
정아은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15-02-0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 정아은의 신작 "모든 것은 일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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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동 사람들>의 출간을 알고는 별로 고민하지 않고 사서 읽어봤습니다. 전작인 <모던 하트>에서 작가에게 받은 느낌과 관점이 좋았다고나 할까요? 고독한 도시녀의 삶과 내면을 무미하다고 할 정도로 냉정하게 관찰하고 그려내는 점이 참 좋았습니다. 자칫 낭만적으로 혹은 감상적으로 빠지기 쉬운 작품 내 인물들의 심리를 간결하게 그려낸 전작을 믿고 이번 작품 <잠실동 사람들>은 목차만 훑어본 뒤 샀고 읽었지요.


읽은지는 꽤 됐는데 업무와 생활에 쫓겨(라고 쓰고 결국 게을러서) 이제야 서평을 쓰다보니 책의 감동이랄까... 그런 것은 조금 희석된 것 같습니다. 헌데 소설이 주는 강렬한 인상은 아직까지도 남아있네요. 구관이 명관이랄까요? 이전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서늘한 시선, 냉정한 관찰 같은 작가의 특징이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맨 마지막에 등장한 '작가의 말'을 통해 작가 스스로 "이 소설은 <모던 하트>를 쓰면서 생겨난 부산물 같은 이야기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으니 제 생각이 과히 틀리지 않았나 봅니다.


작가와 작품의 외적인 부분에 대한 소개는 이쯤에서 그만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잠실동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는 아마 <러브 액추얼리>라는 영화를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All you need is love'라는 OST삽입곡, '스케치북 사랑고백' 같은 것들이 방송에서 여러 번 소재로 활용됐기에 국내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는 등장인물이 꽤 많이 등장하는데 결국 이들이 이어지고 이어지는 인연을 맺고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잠실동 사람들>에도 등장인물이 많이 등장합니다. 딱히 주인공이랄만한 인물은 없습니다. 대신 잠실에 사는 엄마들 여럿과 그들의 남편, 아이들을 중심으로 대학생, 과외교사, 어학원 상담원, 학습지교사, 가사 도우미, 초등교사, 학교 교장, 원어민 강사, 카페 주인 등 많은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초반에는 조금 헷갈릴 수 있습니다. 특히 엄마들은 엄마 본인의 이름과 OO엄마가 같이 혼재돼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해성 엄마가 박수정이었던가, 장유미였던가?' 이 고비만 넘기시면 인물파악에 큰 공을 들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인물의 변화에 따라 시점도 그들의 시점으로 바뀌어서 이전에 등장한 인물과는 별도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간접적인 연관은 있어서 인물관계를 제대로 파악한다면 더욱 잘 읽히시겠지만요.


눈썰미 좋은 독자께서는 위 등장인물 소개를 통해 이미 파악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잠실동 사람들>의 중심에는 이제 갓 2학년이 된 초등생 자녀를 둔 젊은 엄마들 그룹이 있습니다. 과외교사던, 원어민 강사던, 초등교사던 모두 이 어린 학생들과 연관이 있기에 엄마들과도 관계가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모든 사람들의 활동무대가 되는 곳이 리센츠, 엘스, 트리지움 같은 잠실의 주상복합 고층아파트촌입니다. 과거 잠실주공아파트 자리에 재건축으로 올려진 고급아파트촌이지요. 한국에서 욕망의 실현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재건축'이란 방식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곳이기도 합니다. 


근처의 제2롯데월드처럼 하늘을 향해 높게 솟은 잠실의 고층아파트는 '더 많이'를 원하는 인간의 욕망을 잘 표현한 예술작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계영배戒盈盃처럼 담아도, 채워도, 부어도 가득차지 않는 결핍의 바벨탑입니다. 이 바벨탑 안에는 더 높은 곳으로의 탈출을 꿈꾸는 사람과, 현재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 바깥에는 바벨탑 안으로의 진입을 꿈꾸는 자, 혹은 바벨탑이 세워지기 전 바벨탑 터에 살았던 자들이 살고 있습니다. 작가는 탑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각 인간군상의 모습과 내면의 욕망을 그림으로써, 오늘의 한국사회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와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가감없이 그려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사회적 계층이동의 사다리라 여겨지는 '교육'에 관한 관찰과 묘사를 통해 소설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허물어 버립니다. 한국의 집값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학군과 교육환경'이라는 사실이 말해주듯, 신분상승과 세대간 상속의 기능을 담당하는 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지요. 시세를 보는 눈과 현실감각이 누구보다 뛰어난 정치인들의 각종 공약에서 '아이들 교육' 문제가 1~2위를 다투는 것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현재의 사회적계층을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과 그 계층으로 새로이 진입하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이 불꽃을 튀기며 충돌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품에서 지환엄마로 등장하는 박수정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그런 우리네 모습의 일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동안 시댁이 있는 불광동에서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아이 교육을 생각해 잠실로 들어왔다. 잠실에 입성해서는 현실에 완전히 눈을 떴다. 서울로 대학을 왔어야 했구나! 유치원 교사가 아니라 의사나 판검사가 됐어야 했구나! 자신 안에 내재한 거대한 상승 욕구를 채우기에 유치원 교사는 모자라도 턱없이 모자란 직업이었다.


잠실에 이사 온 지 1년째 되던 날, 수정은 다니던 유치원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 지환과 지나 교육에 올인했다. 비록 나는 주류에 끼어들지 못했지만 내 아이들은 주류로 살게 하리라. 주류 중에서도 가장 중심에 선 주류가 되게 하리라. 한 번뿐인 인생, 아이들이 세상의 부와 권력을 실컷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 정아은, <잠실동 사람들>, 한겨레출판사, 2015, 108~109pp.


지환엄마 박수정 내면의 외침은 딱히 그녀만의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물질적인 부와 사회적 계층 상승에 대한 강렬한 욕구는 현재의 위치에 상관없이 우리 국민 누구에게나 가득하니까요. 어느 학자는 이 강렬한 욕구가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우리민족의 정신적 동력이었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반면, 만족을 모르는 이 욕구가 물질만능주의와 출세지상주의라는 일방적인 목표를 향해 전국민을 몰아넣었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요. 삶이란 늘 그렇듯, 이 양쪽을 가르는 경계를 타고 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아닐까요. 다만, 스스로의 바람과 욕망에 솔직해지지 못한 채 이웃과 친척 등 타인의 시선과 욕망을 마치 제 것인양 착각하면서 인생의 항로를 결정하고 산다면 그것은 재고의 여지가 많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박수정의 말처럼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내 것으로 오롯하게 살아내기에도 짧지 않을까요?


해성엄마 장유미, 태민엄마 심지현 같이 이야기의 소재가 되는 사건을 일으키는 중심인물들도 있지만 원조교제로 연명하는 대학생 이서영, 그녀의 어머니인 가사 도우미 최선화, 원어민 강사 지미, 초등교사 미하 등의 주변 인물들도 눈여겨 볼만 합니다. 영화의 주연말고도 주연급 조연들이 해내는 비중이 상당한 것처럼 말입니다. 더군다나 주인공이 명확하지 않은 <잠실동 사람들>에서 잠실 엄마들과 그들의 아이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은 '잠실'이란 곳이 품은 욕망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이들이 가진 욕망과 삶을 관찰해 보는 것도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일 겁니다.


'소설이라면 뭔가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로 무장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란 문학적 당위를 기대하셨다면 <잠실동 사람들>에서는 실망하셨을 겁니다. 물론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작품 내 인물들에 대해선 어디까지나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허나 작가가 말한 상상력이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 <제3인류>의 상상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겁니다. <잠실동 사람들>은 소설이란 문학의 상상력이 현실을 능가하지 못할 만큼 현실이 극적이고 놀랍다는 반증이 아닐런지요?


<잠실동 사람들>의 책장을 덮으며 다시 평범하지만 쉽지 않은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행복하게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


누구나 원하고 꿈꾸는 행복한 삶을 살기위해 우리는 현재의 행복을 잠시 유보하고 살아갑니다.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고,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려고 하고, 서열이 높은 학교에 아이를 보내려 애씁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해 졌을까요? 하나의 게임에 전국민이 달려드는 이 경쟁에서 다수가 행복해질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다수가 불행하고 소수만이 자랑스럽게 그 과실을 누리지요. 올림픽에서 모두가 메달리스트가 될 수 없음과 같은 이치입니다.


행복한 삶은 어디에 살고,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는가로도만 결정되진 않습니다. 인간의 욕구는 그보다 고차원적이니까요. 그 욕구에 서열을 매길 수는 없을 겁니다. 이제 우리도 개별 사람이 가진 고유의 취향과 개성을 존중하고 그것이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를 꿈꾸어야 하지 않을까요. 모두가 메달리스트가 될 수는 없지만 참가종목을 대폭 늘리고 그 종목들을 서로 존중한다면 단일종목으로 경쟁하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아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