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선택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누군가의 추천을 받을 수도 있고, 대학이나 기관의 추천도서 목록을 뒤져볼 수도 있다. 자신이 평소에 책을 즐기는 독자라면 개인의 취향에 따르거나 선호하는 작가를 보고 선택할 수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방법을 꼽으라면 바로 정부와 군대에 의해 금서禁書로 지정된 도서 리스트에서 찾아보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이전에 한 번 교보문고에서는 아예 국방부 지정 금서 코너를 마련하기도 했다) 정부와 군대가 친히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금서로 지정할 정도라면 이 책들은 불온한만큼 뭔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고로 가치있는 거라면 누구나 숨기고자 하는 법이다.
현기영의 소설집 <순이順伊 삼촌>을 읽게된 것도 바로 정부가 금서로 지정했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발표되자마자 저자 현기영에게 바로 구속과 고문이라는 재앙을 선사했고 책 자신은 금서로 지정되는 불운을 맞았다. 작가를 조지고 책을 금서로 지정한 조치는 권력이 자행했던 제노사이드의 만행을 은폐하려는 의도와 반공이데올로기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결합한 독재시절의 블랙코미디였다. 도대체 <순이 삼촌>은 지면을 통해 무엇을 말했기에 권력이 그토록 경계했단 말인가? 권력이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진실이 가진 폭발력과 그것을 은폐하려 했던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을까.
<순이 삼촌>은 현기영이 발표한 단편소설들을 모아 펴낸 소설집이다. 그래서 순이 삼촌 외에도 소드방 놀이, 아내와 개오동 등 10개 작품이 수록돼 있다. 그 중에서도 굳이 <순이 삼촌>이 금서로 지정된 이유는 저자 현기영이 제주濟州 출신이라는 사실에서 추론해 볼 수 있다. <순이 삼촌>은 빨갱이들의 난동을 진압한 사건으로 알려진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제야 그 실상이 이북고향을 등지고 월남한 서북청년단과 육지경찰, 군대가 남로당 계열에 대한 진압의 임무를 넘어서서, 무고한 제주의 양민들을 대량학살한 만행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이 사건은 아주 오랫동안 역사의 그림자에 묻혀 있었다. 제주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작품으로 승화시킨 <순이 삼촌>이 불온한 책으로 간주됐던 것도 바로 그 그림자에서 묻혀있던 과거를 다시 세상으로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78년 가을 세상에 나온 <순이 삼촌>은 숨기고 싶은 치부를 틀킨 당시 유신독재 권력에게도 대단히 불편했을 것이다.
제주에서는 성별에 따라 삼촌, 이모, 고모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친척 어른을 삼촌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순이라는 여성적 이름에 삼촌이라는 남성 대명사가 붙게 된 것이다. 순이 삼촌은 4.3 사건 당시 남편 등 가족을 잃고, 자신은 쌓여있는 시체더미 아래서 기적적으로 살아서 생환한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화자는 바로 순이 삼촌의 조카이며 아주 오랜만에 고향인 제주로 일가친척 제사를 위해 귀향한다. 일가친척 어른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4.3은 아직도 피가 흐르는 상처로 다시 살아난다. 아물지 않았지만 몇 수 십년을 말하지 못하고 살아야만 했던 그 사건. 일가친척이 몰살당하고, 동네사람이 죽어나가는 대학살은 온 동네 제삿날을 같은 날로 정해버렸다. 그 날이 되면 온 동네는 제사 지내는 소리로 가득찬다.
"동네 사람들이 날 숭보암서라. 새로 온 민기네 집 식모는 밥 하영(많이) 먹는 제주도 할망(할미)이엔 소문나서라."
나는 하도 말도 안되는 말이라 어이가 없었다.
"아니, 누게가 그런 쓸데없는 소릴 헙디가?"
"허기사 고향서 궂은일, 쌍일을 허멍(하면서) 밥을 적게 먹젱 해도 공기밥 먹는 조캐네들보다사 하영 먹어지는 게 사실이쥬. 사실이 그렇댄 해도 밥 하영 먹는 식모옌 사방팔방에 놈(남)한티 소문내는 벱이 어디 이시니?"
- 현기영, <순이 삼촌>, 창작과비평사, 2014년 개정판, 64P.
화자인 내가 사는 서울집에 잠시 머물다가 내려간 뒤 바로 세상을 등진 순이 삼촌. 삼촌은 무엇이 그렇게 어려워 매일 그렇게 눈치를 보고 과민한 반응을 보였을까. 4.3의 악령은 삼촌을 그 날로부터 오늘까지 신경증이 되어 끈질기게 쫓아다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쌀이...?"라는 아내의 한 마디에 "나는 밥 많이 안 먹었다!"며 신경증적인 반응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유도 모른채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였던 그 순간에 이미 순이 삼촌의 영혼은 죽었을지도 모른다. 30년을 더 살았던 그녀의 몸뚱이가 비로소 수명을 다하자 사람들은 그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그건 명백한 죄악이었다. 그런데도 그 죄악은 30년 동안 여태 단 한번도 고발되어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가 그건 엄두도 안 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군지휘관이나 경찰간부가 아직도 권력 주변에 머문 채 아직 떨어져 나가지 않았으리라고 섬사람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섣불리 들고나왔다간 빨갱이로 몰릴 것이 두려웠다. 하도 무섭게 당했던 그들인지라 지레 겁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 현기영, <순이 삼촌>, 창작과비평사, 2014년 개정판, 103P.
이 비극과 상처를 오히려 쉬쉬하고 항의 한 번 제대로 못할 정도로 겁을 먹은 제주 사람들. 이들이 수 십년을 입다물고 살았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그 날의 제주인들이 맞닥뜨렸던 공포의 크기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그리고 우리는 역시 함께 그 오랜 시절을 함구함으로서 진실을 묻는데 가담했다.
한국 현대사의 많은 비극들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아무도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았고 용서받지 않았다. 그렇기에 엄연한 가해와 피해의 사실이 '논란'으로 번지기 일수다. 얼마 전 낙마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4.3을 '제주 4.3 폭동'이라 발언한 것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이 나라에는 비슷한 인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이들에게 참회와 반성을 요구하는 것도 지칠 일이다. 이들은 '빨갱이'라는 간단한 포장지를 사용해 상대를 좌익용공분자로 덧씌우고 정작 자신에게 요구된 사과 거절했던 것이다. 엄연한 가해와 피해의 진실을 논란으로 몰고가는 이 사회의 상식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더욱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이제 금서는 풀리고, 말 못했던 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진실을 요구하는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다수의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외면하고 무관심해지는 순간, 권력과 그 주변을 어슬렁 거리는 자들은 소수가 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언제든지 유사한 사건을 일으킬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을 상대하는 방식을 보면 또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먼 길을 가다보면 마차바퀴에 벌레 몇 마리쯤은 깔려 죽는다'고 말하는 자들은 마지막으로 인용하는 대목을 읽어보고 심사숙고 해보기 바란다. 사람은 벌레도 아니고 사기그릇도 아니다.
군경 전사자 몇백과 무장공비 몇백을 빼고도 5만명에 이르는 그 막대한 주검은 도대체 무엇인가? 대사를 치르려면 사기그릇 좀 깨지게 마련이라는 속담은 이 경우에도 적용되는가. 아니다. 어디 그게 사기그릇 좀 깨진 정도냐.
- 현기영, <순이 삼촌>, 창작과비평사, 2014년 개정판, 1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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