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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외국문학

[자기 앞의 생生 - 에밀 아자르] 오늘 여기서 사랑하세요




자기앞의 생

저자
에밀 아자르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3-01-2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국내 최초의 원작 계약출판사에서도 원작자가 누구인지 몰라 광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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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항공사의 광고가 대중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광고는 아주 간단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사랑한 유럽 Best10은?" 이국적인 풍경들과 또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상이 배경으로 띄워진 멋진 광고였다. 비단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나보다. 이 광고에서 꼽은 유럽의 명소들이 <당신이 사랑한 유럽 BEST10>이란 책으로 출간돼 순식간에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것만 봐도 그렇다.


본디 여행은 좋은 것이다. 일상이란 사막을 걸어가다보면 누구나 여행이란 오아시스를 꿈꾸게 된다. 자신이 속한 곳을 잠시 비우고 배낭에 객창감 가득 채우고서 이국으로 떠나는 잠시의 일탈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 속에서 소모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할 때, 누구나 일탈을 꿈꾸게 된다. 여행은 그 지친 일상에 잠시 주어지는 일탈의 청량음료 한 잔인 것이다. 


한 편으로, 여행을 마치면 필연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일상의 공간과 생활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외롭고 답답하게 가두길래 그곳을 탈출하기 위해 애쓰는 것일까. 항상 잔소리를 늘어놓기 좋아하는 직장 상사나 남에게 보이기 민망한 얇은 지갑? 물론 이런 이유도 있겠지만 마냥 이것들 때문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찾아가고자 하는, 궁극적으로 얻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돈? 그건 아니다. 인구 천만의 거대도시에 살면서도 고독한 현대인들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돈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진실로 바라는 것은 너무도 진부하지만 쉽게 얻을 수 없는 것, 바로 사랑이 아닐까. 여행의 끝에서 우리가 다다르는 최종 목적지는 바로 사랑하는 그 사람의 곁, 그곳일 것이다. 에밀 아자르는, 그리고 <자기 앞의 생>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올해 10살이 된 회교도이자, 본래 이름은 모하메드인 주인공 '모모'. 모모는 창녀인 엄마에게서 태어나 아빠가 누군지도 모른채 뚱뚱하고 못생긴 로자 아줌마와 살고 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7층에 위치해서 로자아줌마를 힘들게 하는 좁은 아파트에는 모모와 함께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다수 살아가고 있다. 다른 아이들은 입양도 가고 가끔씩 친부모를 만나기도 하지만 모모에겐 그런 일이 없다. 학교도 다니지 않는다. 그저 하밀 할아버지를 통해 위대한 신과 빅토르 위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유태인이라 박해를 받았던 과거가 있는 로자 아줌마는 가끔씩 히스테리컬한 신경질을 내기 십상이고, 날이 갈수록 건강도 나빠지고 있다. 생의 마지막이 가까워진 로자 아줌마를 옆에서 지키며 걱정해 주고 사랑하는 이는 모모 뿐이다. 물론 로자 아줌마 역시 어느날 나타나 모모의 아버지라 주장하는 남자에게 모모를 내어주지 않는다. 그녀에게도 모모는 세상 단 하나뿐인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게다. 서로를 사랑으로 의지할 시간은 로자 아줌마에게도, 모모에게도 얼마되지 않는다.


"로자 아줌마가 예전에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아시겠죠? 할아버지도 그 때 같았으면 결혼했을 거에요. 알아요. 지금은 모습이 많이 달라졌지만 이 사진을 보시면서 그때를 생각하면 되잖아요."


"모하메드야, 오십 년 전에 내가 로자 부인을 만났더라면 결혼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 때 결혼했으면 오십 년 동안 서로 미워하게 됐을 거에요. 그렇지만 지금 결혼하면 좋아하게만 될 거에요. 서로 미워하고 할 시간이 없잖아요."


그는 커피잔을 앞에 놓고 빅토르 위고의 책 위에 손을 얹을 채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무척 행복해 보였다. 할아버지는 그 이상을 바랄 사람이 아니었다.


-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2013, 문학동네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을 사용해 본명을 숨긴 것, 그래서 같은 작가에게 두 번 수여되지 않는 공쿠르 상을 두 번 수상하게 된 것에서부터 최근 드라마 <비밀>에 소품으로 등장해 다시금 주목 받은 것까지... <자기 앞의 생>을 둘러싼 이야기가 많다. 이런 외적인 이야기들에 비해 <자기 앞의 생>의 내용은 그저 담담하고 일상적이다. 어린 모모의 눈으로 본 세상에서도 어떤 초능력자나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극히 현실적인 배경에서 역시 현실적인 인물들이 일상이란 비극 혹은 희극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결말 역시 해피엔딩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앞의 생>이 독자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유는 우리의 일상이 실제로는 큰 행복이며 사랑이기 때문이다. <자기 앞의 생>은 우리에게 일상의 위대함과 사랑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목숨을 소중히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 볼 때 그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2013, 문학동네


오늘 우리는 원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혹은 이루기 위해 하루를 보낸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짧던 길던 자신의 시간이나 에너지를 일부분 양보하고 포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가 포기한 것들은 장래에 얻을 수 있는 것들만큼 다시는 얻을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같이 할 시간이 서서히 줄어가는 늙으신 부모님, 먹고 살기 바빠 연락이 뜸해지고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형제들, 설레는 시간은 지나가고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무미건조해져 버린 배우자 혹은 연인, 이제는 만나서 흘러간 옛 이야기밖에 화제가 없는 오래된 친구들 등등. 가족애, 우애, 이성애 등등 다양한 사랑들을 나눌 수 있는 이들과의 관계는 출세와 진급, 더 많은 급여 등의 현실적인 과제들에 치여 저만치 밀려있다. 과연 그 선택은 옳은 것일까. 후회않을 자신이 있는 자 그 누가 있을까.


손에 닿는 것은 무엇이나 황금으로 만들어 달라고 소원했던 어리석은 미다스 왕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진정 소중한 것을 잊고 지내기 쉽다. 일상의 소중함을, 내 곁을 지켜주고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때론 매너리즘에 빠져서 그곳을 탈출하려고 하기도 하지만 결국 일과를 마치고 저녁이되면 집으로 돌아오듯이 우리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곳에는 평소같은 일상의 생활과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황금같이 빛나지는 않지만 소소하고 아름다운 평온함과 따스함이 함께.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도 로자 아줌마와 모모가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며 아름다운 한 때를 함께 살아갔던 것처럼. 삶은 그렇게 마냥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찰리 채플린이 말하지 않았던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고. 오늘 당신 앞의 생生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