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대 지상파 방송 시청률의 최강자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아나타한 섬의 여왕벌'이 소개된 적이 있다. 한 무인도에 31명의 남자들과 단 한 명의 여자가 살게 된다는 다소 자극적인 소재였다. (관련 내용은 베르단디님의 블로그 포스팅을 참고하시길 ---> http://blog.naver.com/yoalnakong73/100158457974) 극단적인 성비 불균형이 가져온 혼란은 해당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됐지만 기리노 나쓰오의 <도쿄섬>을 읽어 보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원래 이 작품이 떠오른 건 내가 자주 참고하며 잘 읽고 있는 블로거 착선님의 포스팅 '남아 선호 사상이 불러온 재앙 <남성 과잉 사회>(http://newidea.egloos.com/2092808)를 봐서다. <남성 과잉 사회-지워져버린 소녀들의 진실과 도래할 인류의 재앙>(마라 바슨달 저, 박우정 역, 현암사, 2013)를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착선님의 리뷰를 참고했을 때 상당히 아카데믹한 내용일거라 짐작됐다. 문명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극단적 남아 선호 사상으로 인해 여아들을 살해하는 등 인위적인 성별선택이 이뤄지고 있고, 그 근저에는 문화적, 경제적 등의 이유가 존재함을 밝혀낸 책이라고 소개됐기 때문이다. <남성 과잉 사회>가 통계나 자료를 통해 성비불균형이 가져올 재앙을 경고하고 있다면 <도쿄섬>은 그 재앙이 현실로 벌어졌을 때 벌어질 상황을 상상한 소설이다.
소설 속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 한 무인도(도쿄섬이라고 불린다)로 한정돼 있어서 그런지 이야기의 흐름은 다소 단순하다. 기요코와 남편 다카시가 표류해 살고 있는 무인도에 일본인과 중국인을 비롯한 30명의 남자가 또다시 표류해 온다. 32명의 섬주민 중 여자는 오로지 기요코 뿐이다. <도쿄섬>의 첫 장면은 기요코의 네 번째 남편을 정하는 제비뽑기로 시작한다. 그만큼 성비 불균형이 가져오는 공포가 이 소설의 주요한 소재다. 46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뭇 남성들의 구애를 받는 기요코는 명실공히 도쿄섬의 여왕으로 군림한다. 문명은 멀어졌고 윤리와 도덕은 땅에 떨어져 단지 생존을 위한 욕구만이 남아버린 도쿄섬. 기요코의 원래 남편인 다카시는 자신의 항해일지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변모한 건 아내뿐만이 아닙니다. 젊은 놈들도 변했습니다. 그들은 우리 부부의 도움으로 겨우 상륙할 수 있었던 섬이 무인도라고 깨달은 순간, 반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도쿄 섬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로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무언가에 이름이 붙으면 의미가 생기고 인식되어 세계가 확립됩니다. 저는 그 과정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재해 피해자라도 된 기분으로 겁쟁이로 움츠러든 주제에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비난받지 않는 지금이 기회라는 듯이 주체적으로 폭주를 시작했습니다.
기요코의 쟁탈이 그 폭주의 초점이 되었습니다. 저는 40세를 넘은 기요코가 젊은 애들에게 성적 대상으로서 보인다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얼마간의 근심이 없지는 않았지만 남편인 저라는 브레이크가 있다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기요코를 남자들이 쫓아다닌다고 해서 그녀가 다른 사람처럼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기요코나 저나, 스스로를 사려 깊은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였던 겁니다. 그만큼, 새로 태어난 세계는 자유롭고 잔혹합니다.
- 기리노 나쓰오 저, 김수영 역, <도쿄섬>, 2011, 황금가지, 98~99pp.
하지만 단순히 한 여자를 둘러싼 남자들의 음모와 질투를 다룬 성애소설쯤으로 판단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도쿄섬에 사는 도쿄들(일본 출신 표류민)을 중심으로 짜여지는 새로운 사회적 관계들과 각 개개인의 욕망이 충돌하는 장면은 꽤나 흥미롭다. 기요코를 차지하기 위한 남자들의 투쟁이나 리더의 리더십 스타일에 따라 변화하는 사람들의 반응 등에 대한 묘사는 인간심연의 바닥을 들여다본듯 참담한 기분이 들게 한다. 이 대목에서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이 떠오른다. 여기에 외부에서 들어온 홍콩들(중국 출신 표류민)과의 협력 혹은 갈등이 더해져 <도쿄섬>은 인간과 사회,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전체적이면서 유머스럽게 풀어나간다. 도쿄의 각 인물, 예를 들면 처음으로 무인도 탈출에 성공한 와타나베나 누나의 환청을 듣는 만타 등의 1인칭 시점으로 풀어낸 내면의 독백과 시선이 그려지는데 여기에선 역시 일본의 만화이며 영화화 되기도 한 <배틀 로얄>이란 작품이 떠오른다. 300페이지 조금 넘는 (상대적으로)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할 이야기는 거의 다 하고 지나가는 작품이 <도쿄섬>이다.
처음 기억에서 <도쿄섬>을 끄집어 낸 것은 착선님의 포스팅 때문이었지만 <남성 과잉 사회>의 방향과는 다른 쪽으로 이번 독서의 여운이 오래갔다. 언젠가 시골의사로 유명한 박경철 원장이 민주당 공천심사위원 활동을 끝내고 "내가 여지껏 살면서 봐온 인간 욕망의 총합보다 더 거대한 욕망을 그 짧은 시간안에 경험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듯, 나 역시 <도쿄섬>을 통해 다시 그 추악하고 거대한 욕망을 엿본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정된 자원과 식량을 두고서 벌이는 인간들의 갈등과 집단에서의 배제 등의 그것은 비단 문명에서 벗어난 무인도란 무대때문이 아님을 문명사회에서 일상을 사는 우리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무인도에서의 고립과 단절에 대한 공포보다 더욱 살 떨리는 사실은 바로 인간의 비이성과 휴머니즘의 상실이 다른 곳도 아닌 우리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인 기요코는 남성의 특징으로 규정짓지만 실상 이것은 남성적 패권주의가 주도하는 현대문명의 특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요코는 이제까지 몇 번이고 봐온 남자들의 가차 없는 잔혹함을 새삼 느꼈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남을 죽여서라도 쟁취하고, 공동체를 흔드는 분쟁의 근원이라고 느끼면 대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살하는 남자의 특성.
- 기리노 나쓰오 저, 김수영 역, <도쿄섬>, 2011, 황금가지, 144pp.
마지막 5장의 내용이 너무 빠르고 직선적이라서 조금 성급하게 마무리 한 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마지막 5장의 여운은 길다. 특히, 탈출에 성공한 와타나베가 섬에 남은 자들을 골탕먹이려고 굳이 보트를 타고와 약을 올리는 장면에서 인간의 악심惡心을 엿본 것이 그렇다. 비열한 배신와 가식적인 연기를 통해 어떻게든 상대를 제거하고 살아남으려는, 결국 그렇게 해서 기요코와 기무, 문 만이 탈출에 성공하고 또다시 섬에 남은 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어찌보면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아프리카에서 굶어죽어가는 아이들의 영상과 사진을 보며 눈물짓지만 고급 음식을 탐하고 과식으로 비만이 된 우리의 몸 역시 다름아닌 우리 자신의 두 얼굴인 것처럼 말이다. 스스로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의 수장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던 분을 비롯 사회 곳곳에는 '나 정도면 법 없이도 살 사람이지'란 자부심으로 가득차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굳이 유명하거나 권세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과연 당신,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간으로 끝내 남을 자신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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