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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한국문학

[고래 - 천명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고래

저자
천명관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4-12-1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고래] 출간!제1회 [새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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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에 익숙한 시대다. 3살짜리 유아도 (그들이 좋아하는 뽀로로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면 울음을 그치고 화면에 구현된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이야기'를 통한 희구를 즐기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지 궁금해진다. 아주 오래 전 달밤에, 군밤이 익어가는 화로 옆에서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옛날 이야기'에 울고 웃었던 체험이 우리네 유전자에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드라마나 영화 같이 그 방식이 좀 더 세련돼졌을지는 모르나 근본적으로 재미있는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모습은 아이나 어른이나 다름이 없다.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천명관의 <고래>는 참 재미있는 '이야기'다. 시나리오 작가를 거친 저자의 경력이 그대로 스며들어 여타 소설과는 형식에서부터 차이를 보인다. 박진감 넘치는 빠른 전개, 영화적 서사와 구조, 복선 등을 통해 독자는 <고래>라는 텍스트를 읽음으로써 영화 한 편을 관람한 느낌을 받는다. 형식의 독특함에 비해 내용의 참신함이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텍스트를 통한 숨가쁜 긴장을 느껴보고 싶은 독자라면 추천하고픈 작품이다. 작품성을 떠나 소설에 대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바꿔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충분하다.


<고래>는 총3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국밥집 노파와 그의 딸에 관한 이야기와 주인공 금복(독자에 따라 주인공이 금복의 딸 춘희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의 어린 시절을 그린다. 2부에서는 금복의 성장과 위기, 사업가로서의 성공과 몰락의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3부에서는 금복의 딸인 춘희와 그녀가 벽돌공장에서 보낸 이야기가 그려진다. 시간적으로는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 군부독재 시절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긴 시간에 걸쳐 전개되지만, 공간적으로는 가상의 공간인 항구도시와 신흥도시 평대坪垈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반면에 주인공 금복을 둘러싼 수많은 주변인물들이 등장하고 퇴장하고 다시 등장하면서 짜임새있게 전개된다.


소설가 박범신은 최근작 <소금>의 '작가의 말'에서


어떤 날 우연히 내가 쓴 소설 <비즈니스>의 '작가의 말'을 읽었다. 거기엔 이런 구절이 나왔다. "사실, 이런 식의 현실 비판적 이야기는 오늘날의 우리 '문학판'에서도 거의 실종 상태에 놓여 있다. ....... 이래도 좋은가. 우리네 삶을 몰강스럽게 옥죄는 전 세계적 '자본의 폭력성'에 대해, 문학은 여전히, 그리고 끈질기게 발언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 앞의 '작가의 말'을 읽고 나서, 한순간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작가로서 내가 잠시라도 직무 유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라고 했다. 현실의 모순과 당대 사람들이 처한 실상에 대한 냉정한 관찰을 바탕으로 문학의 현실참여적 역할을 방기했던 소설가 박범신의 (일종의) 자기반성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고래>는 박범신이 이야기한 '문학의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하기엔 모자란 작품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군부독재 시절에 대한 시대적 배경이 드러나기는 하나 그것이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시대상에 관한 저자의 서술은 시대배경의 묘사 그 이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과 평단이 <고래>를 주목한 것은 바로 독자를 잡아끄는 '이야기의 힘'을 제대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두께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읽은 독자는 이야기의 마무리를 볼 때까지 쉽사리 책장을 덮을 수 없다. 이야기는 각종 판타지와 욕망, 현실이 뒤섞여 독자를 홀린다. 작품 안에 스스로 서술자로 등장해 "독자 여러분~"이라며 눈길을 잡아끄는 타고난 이야기꾼이 바로 작가 천명관이다. 마치 연속극을 보다 중요한 장면에서 끝나고 다음 회를 기약하게끔 하는 드라마처럼 영악한 작가의 유혹에 마지못해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날 밤을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단지 금복이 겁간을 당하고 돈을 빼앗겼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가뜩이나 파란 많은 그녀의 운명을 다시 한번 거센 소용돌이 속으로 몰고 간 그날 밤의 기적 같은 사건은 며칠 전부터 쉬지 않고 내린 장맛비로 인해 가능한 일이었다. 도대체 무슨 얘기냐고? 성급한 독자여, 조금만 더 들어보시라.


- 천명관, <고래>, 문학동네, 2004


이야기를 클라이맥스로 몰고 가서는 한참 긴장하는 독자에게 '60초 뒤에 다시 뵙겠습니다'처럼 치고 빠지는 데서는 웃고 갈 수밖에 없다.


사회비판적이고 진중한 작품만이 문학의 역할을 다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고 그 강약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우리가 현실을 벗어나 천계天界에 사는 사람이 아닌 이상 누구나 일정 정도의 현실인식을 지니고 살 수밖에 없다. 작가가 고찰한 세상의 모습도 그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작가의 손에 의해 주인공 금복과 그녀의 일생으로 고스란히 그려진다. 그럴 때마다 작가는 "그것은 ~의 법칙이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차 한 대로 운영하던 운수회사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해 운행하는 차를 모두 열 대로 늘렸다.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평대로 유입되는 인구도 급속도로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하는 일이 없어도 괜히 마음이 바빠 허둥거렸고 아무리 밥을 많이 먹어도 이유 없이 속이 헛헛해 다방을 찾아가 독한 커피라도 한 잔 들이부어야 겨우 속이 차는 듯싶었다. 또한 다방에 앉아 하릴없이 이 말 저 말 옮기다보니 사람들간의 관계는 더욱 번잡스러워졌고 시비는 늘어났으며 오해를 풀고 화해를 하느라 술값이, 혹은 커피 값이 더 많이 들어가 소비가 더욱 촉진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 마음속엔 어느덧 공허가 가득 들어찼고 금복은 이를 차곡차곡 돈으로 바꾸어 나갔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법칙이었다.


- 천명관, <고래>, 문학동네, 2004


익살스럽고 흥미로운 <고래>의 많은 부분 전부 옮길 수는 없다. 아마 일부를 옮기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어떤 메시지가 강렬한 작품도 아니다. 소개를 하거나 리뷰를 하기에 그리 적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고래>의 리뷰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정말 재밌어서'다. 작가는 문학상에 응모할 생각보단 그저 (동생이었다고 했었던 것 같다) 주변의 권유때문에 나섰다고 하지만 <고래>는 정말 재밌다. 그의 다음 작품이며 영화화 되기도 했던 <고령화 가족>을 봐도 천명관이란 작가가 타고난 이야기꾼임을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래서 그저 그에게 헌정하는 리뷰랄까? 그런 걸 남기고 싶었다. 돈주고 책 사서 본 독자지만 헌정 리뷰까지 써대도 아깝다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재밌는 소설이 바로 <고래>다. 게으름이 잉태한 귀차니즘 때문에 읽고도 리뷰하지 않는 책들에 비해 단번에 나를 움직이게 한 천명관표 '이야기'의 힘을 다른 독자들도 느껴볼 수 있었으면, 충분히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면 이 리뷰는 성공이라 하겠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