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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빼앗긴 들에 봄은 오지 않는다



최악의 한파가 몰려왔다. 내일 서울 아침 기온이 영하 16도로 예측된다니 수치만 보고도 얼굴이 시리다. 유난히 잦은 눈발도 이번 겨울이 심상치 않은 시절이 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추위는 가뜩이나 오른 에너지 가격과 맞물려 취약계층을 괴롭히고 있다. 분명 기름이나 가스를 사용하는 보일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전기장판으로 가까스로 추위를 견디는 가구가 어디 한 두 집인가?

 

날씨만 추운 게 아니다. 정말 시린 건 비어버린 지갑과 우리네 마음이다. 오늘 사내 메신저로 달갑지 않은 소식이 전해져왔다. 건강보험료가 오른다는 소식이었다.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기에 정확한 수치는 보지 않았지만 인상폭은 약 1.6퍼센트 포인트 정도 되는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올해의 임금인상률을 액수로 환산해 비교해보면 거의 퉁치는 거 아닐까 싶었다. 결국 물가가 오르지 않는다는 꿈같은 가정을 하지 않는 한 이번 해의 실소득, 즉 가처분 소득은 뒷걸음질 칠 것이 뻔하다는 간단한 결론으로 이어졌다. 어차피 물가는 오를 것이고 소득이 제자리면 가처분 소득은 마이너스가 되는 게 당연했다. 속으로 한 마디 했다. '죽여라'.

 

건강보험료 뿐인가. 선거가 끝나자마자 각종 공공요금이 기다렸다는 듯이 줄줄이 인상이다. 상수도 약 5%, 전기요금 약 4% 여기에 민자도로들과 도시가스들까지 벌떼같이 들고나서 요금을 인상했다. 이 정도면 일상생활의 기반시설에서 거의 다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종합부동산세를 두고 조중동 등 족벌신문이 '세금폭탄'이라며 거품을 물었었다. 그들 식으로 말하자면 이명박 정부는 임기 5년의 결과 정권 말에 '물가폭탄'을 투하한거다. 그런데 조용하다. 강남의 집 두 세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부담하는 종부세 2(정도 세수가 들어왔다고 한다)에 분노의 펜대를 굴렸던 자들이 전국민이 일거에 수 십조를 준조세로 털리는데도 얌전함은 족벌언론의 관대함과 너그러움을 보여준다 하겠다. 그 관대함과 너그러움이 편향적이라는 문제만 차치하면 칭찬해 줄 수도 있다.

 

게다가 이번 대선에서 보았듯, 세대간 갈등과 격차도 커지고 있다. 40~50대 가구주의 지난 해 소득증가율은 7~8%에 이른 반면, 20~30대 가구주의 소득증가율은 지난 해 같은 분기에 비해 2.3% 증가한데 그쳤다. 이 현상에 대해 전문가란 양반들이 꼽는 이유는 장년층이 점하고 있는 일자리가 양질의 정규직이 많고 청년층에는 비정규직 저소득 일자리 밖에 남지 않은 현실을 1순위로 꼽는다. 여기에 더해 장년층 여성들이 취업전선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소득이 늘어서라고 하는데 이게 또 알고보니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이런 곳이다. (요새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아줌마 직원 보기 어렵지 않다) 양질도 아닌 이런 일자리를 두고 이제 10, 20, 40, 50대가 경쟁을 벌어야 하는 웃픈 상황에 처한 거다. (경제학자 우석훈이 이미 몇 년전부터 이런 이야기 하고 다녔는데 식견이 있다 하겠다. 그는 주유소를 예로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우사인 볼트급으로 뛰어가는 물가 따라 잡는다고 젊은 사람도, 나이든 사람도 참 다들 고생하고 산다. 행복한 사람? 여긴 그런 거 없다.

 

살림살이가 힘들어지면 제일 약한 사람, 취약한 계층부터 타격을 입는다. 왜 예전 시골마을에서 집안의 장남에게 올인하는 바람에 둘째, 셋째 아이는 공장에 보내버리는 일이 흔치 않았던가? 약한 자에게 지원이 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아예 포기하거나 방치해 버리는 경우다. 한국사회의 흐름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번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통과된 모냥을 보니 다행히 영유아 보육과 대학 등록금 지원 등의 복지분야에서 증가세가 뚜렷했다. 복지예산이 전체예산의 30%를 넘었다며 기뻐하는 반면, 자세히 보면 건강보험공단 정부 지원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돈 없고 아픈 사람은 이래저래 더 고달퍼질 것이 눈에 훤하다. 병원이 급여비 제대로 못 받는 진료를 성의껏 할 리가 없고 약제비도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70대 할머니가 버스에 치인 후 빈곤으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다 결국 비관 끝에 투신 자살을 했다는 일등신문의 보도를 보고 '이게 사는 거냐'는 한탄을 쏟아냈는데 이젠 어찌 되려는지.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한 어르신들께서 전철무료탑승권도 빼앗길 뻔 했는데 이제 병원치료와 약마저 빼앗기게 생겼다. 안타깝고 유감스럽지만 자고로 자기 하는대로 받는 거다.

 

(사진: 연합뉴스) <!--[endif]-->


조금 이야기를 돌려보자. 힘든 사람 이야기만 했으니까 좀 되는 사람 이야기도 해보는게 좋겠다. 이전에 택배일을 할 때다. 말 그대로 일반을 상대로 하는 아무개 대기업 택배였는데 별의별 물건이 다 온다. 돌아다녔던 섹터 중에 아주 고급 아파트가 있었다. 위치도 좋고, 평수도 넓고... 들리는 말에 의하면 몇 십억은 너끈히 나간다는 부유한 아파트였다. 그런데 자꾸 이 아파트 어느 집에 쌀이 들어왔다. 그러려니 하는데 배달하면서 가만히 보니 정부지원미(나라미?) 이런 글귀가 씌여있었다. 궁금해서 좀 캐보니 이게 기초생활수급자를 대상으로 지급되는 정부미라는 거다. 오래 묵고 품종도 좋지 않아 밥맛이 형편없다는 설명과 함께 "있는 놈들이 더해"란 결론까지 들을 수 있었다. '정여사'는 꽤나 많았다. 수십억짜리 집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가 정부미를 받아 먹는.... (설마 먹겠나. 어디다 팔겠지...) 정말 가능하기만 했으면 연탄도 받아다 썼을 인간들이다. (최근엔 샤넬백에서 기초생활수급자 증명서 꺼내 보이면서 학비 감면 혜택 요구하는 아줌마도 봤다. 이것 역시 픽션이 아니라 리얼이다)

 

이전에 쌀직불금을 가지고 말이 많았다. 아니, 정확히 시끄러웠다. WTO 규제 때문에 농업분야에 현물지원이 금지되자 이를 피하기 위한 꼼수로 정부지원금을 쏟아붓기 시작했는데 쌀직불금도 그 중 하나다. 문제는 이게 현물이 아니라 돈으로 가니까 도시지주들이 농토를 사가지고 직불금은 낼름 가로채고 정작 땅을 가꾸는 농민은 한 푼도 못 받더란 것이다. 당시 총리후보자의 인사청문회로 드러났던 문제였는데(그렇게 기억난다) 농촌에서는 진작부터 "좀 그냥 비료, 농약 이런 걸로 주면 안되냐"고 아우성이었다. 도시지주가 비료, 농약을 털어갈 일은 없기 때문이다. (상상 이상의 놈들은 그것도 털어다가 네이놈 중고나라에 팔아먹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항상 허를 찌르는 괴팍함이 저들의 특기다) 고위공무원 수 십명이 적발됐지만 어디 그들 뿐이겠는가. 그 때나 지금이나 이래 저래 땅 가지고 집 가진 사람 사람들은 꾸준한 연구와 학습으로 비용은 최소화 하고 수입은 극대화 하는 합리적 경제인의 전제에 충실하고 계시다. 합리적 경제인의 사회도덕적 다른 이름은 천박한 졸부라는 사실도 잘 알고 계실거다. 훌륭하시니까.

 

뉴스를 잘 안보려고 한다. 눈이 가기는 하지만 보면 고스란히 내 스트레스로 돌아온다. 저렇게 고르고 골라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데도 이 정도면 실제는 더 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냥 봤다. 역시나. 보도되는 경제분야 브리핑만 좀 봤는데 이건 뭐... '아마겟돈'이 가까워졌다는 생각만 들었다. 저기 남수단의 구정물 먹는 흑인들 갖다 대면서 '우리는 그 정도는 아니지 않느냐'고 할 거면 그냥 가라. 그렇게 말하는 당신이 정말 여유있고 잘사는 축에 낀다면 이 글을 볼 리가 없기 때문이다. 계속 쥐어 짜이면서도 저기 못사는 나라 누굴 보면서 안도한다면 그것은 열등감을 더 열등한 사람을 보며 자위하는 찌질함에 다름 아니다. 저기 이북동포들을 굶기며 핵개발에 열중인 북한정권을 규탄하려면 비례해서 아이들 밥주는 데 핏대 세워가며 포퓰리즘 운운하는 자들이나 선거철만 지나면 노인복지 까먹으려고 혈안인 사람들도 같이 비난해야 되는 것 아닌가? 종북좌빨만 탓하는 그대의 이데올로기적 단순무식함이 월급쟁이 당신의 유리지갑이 탈탈 털리는 현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철 좀 들었으면 좋겠다. 계산기 가지고 산수만 두드려 봐도 알 만한 이야기다.

 

이상화가 그랬던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느냐고? 우리는 빼앗긴 들을 찾아오지 못했다. 오히려 봄은 다시 5년 뒤로 밀려버렸다. 한동안 봄 기약없는 겨울이 계속될 것이다. 국회에서 짤리기는 했지만 당장에 차기 정부가 들고 나온 카드가 뭐였는가? 이름 하여 '국채 발행' 아니었나. 말이 거창해 국채발행이지 돈이 없으니 꿔다가 쓰겠다는 말이다. (돈은 이미 가카께서 있는 돈, 없는 돈 다 가져다 쓰셨다. 4대강에다가) 빌리는 건 국정책임자 몇이 결정하지만 갚은 건 국민 개개인이다. 5년간 프리론을 허락 받은 차기 정권이 얼마나 카드를 긁고 다닐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명세서 받은 국민들은 멘붕에 빠질 거다. 식견있는 경제학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부채를 줄이고 현금자산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라'. 위기는 멀지 않았다. 방심하면 한 방에 훅 갈 쓰나미가 다가오고 있다. 잘 생각해봐라. 한국경제 최대의 위기였던 97년 외환위기 당시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도 '천문학적인 부채와 부족한 현금자산' 때문에 도산했다. 그리고 2013년 현재 국내 대기업들이 사내유보금(쉽게 말하면 현금이다)을 엄청 비축해 두고 있다. 쉽게 보따리 풀지 않는다. 하물며 월급쟁이 개인들이야. 경제학자들의 전망과 대기업들의 행태를 보면 얼핏 보인다. 진실이. 겨울, 쉽게 지나가지 않는다. 다들 옷깃 단단히 여미고 버틸 준비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