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마음이 답답해지거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하늘을 몇 분이고 쳐다보는 버릇이 있다. 서울에서는 불가능했지만 시골 고향마을의 하늘은 지금도 구름만 끼지 않으면 수많은 별을 볼 수 있다. 그 많은 별들이 다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임을 알게 되고, 너무나 멀리 있어서 지구에 그 빛이 도착한 다음에는 별이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만큼 엄청난 거리를 수 십억년 달려온 빛을 지켜보고 있는 '나'란 존재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수 십억년 된 별빛을 바라보는 고작 수 십년 짜리 생물. 지구라는 작은 별, 그 안에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 살고 있는 나는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을 사는 티끌같은 존재임을 깨닫게 된 순간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생각과 함께 다른 사람들은 어떤 시간을 살아갔었고, 살아가고 있고, 살게 될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던 순간이기도 하다.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나 개인의 단편적인 시간 흐름에서 벗어나보자 연속적인 인간의 시간이 먼저 눈에 띄었다. 거기엔 먼저 살아간 사람들과 내 다음을 살아갈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발단은 먼저 살아간 선배들 때문이다. 가까운 예를 한 번 들어보자. 친일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이완용은 살아생전 부귀영화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이름은 시간을 타고 흘러흘러 지금에 이르기까지 악명을 떨치고 있다. 이완용 개인의 시간은 이미 진작에 끝났지만 말이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언젠가는 각 개인의 시간을 마감하게 된다. 내 육신과 사고는 정지하고 존재는 사라져 버릴 것이다. 하지만 내 다음에 이어질 우주와 지구와 이 나라의 시간을 살아갈 다음 세대의 뇌리에는 살아있게 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인생의 후배들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다음 세대는 나를 지켜보고 있고 평가할 무서운 관찰자이자 평론가란 생각이 들었다.
고 장준하 선생이 살아 생전 입에 달고 다니셨다는 말, "못난 선배가 되지 말자"는 그래서 참 와닿는 한 마디다. 선생께서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선배세대 때문에 일제학도병에 징집됐다. 학도병 탈출 후에는 임정을 찾아 중경까지 수 만리를 달려가야 했고 광복군이 되셨다. 선배세대들의 실수가 후대에 태어난 선생과 그 세대의 사람들을 그렇게 살도록 운명지어 줬던 것이다.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여러 의사들과 독립지사들이 목숨을 건 활동을 하게 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장준하 선생께서는 후배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물려주시려고 노력했고, 본인의 삶으로 그런 의지를 증명하셨다. 선생의 삶과 뜻을 생각해보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누구에게 부끄럽지 않게끔 살아야 하는지는 명확하다.
며칠 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선택이었다. 장준하 선생이 지하에서 보셨으면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벤자민 버튼의 영화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이 나라의 시간은 또다시 뒤로 갔다. 그것은 박근혜 당선인이 의미하는 시대정신과 한계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경제성장을 추억하는 50대 이상이 결집해서 박 당선인에게 몰표를 던진 현상은 그래서 암울하다. 후배세대의 삶과 시대를 고려해서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시기 바랬지만 결국 그들은 자신 스스로에게 가장 유리한 혹은 가장 원하는 선택을 했을 뿐이다. 후세대를 위해 어느 유행가의 가사처럼 "아들 딸이 잘 되라고~ 행복하라고~"란 순수한 마음이셨을 수도 있다. 다만 어두웠던 과거가 좁쌀 만큼 내어준 물질적 보상에 홀려 과거만 바라본 나머지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지 않은 어리석은 판단이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아직 출범도 하지 않은 박 당선인의 정권이 차차 증명해 줄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5년간 역사적 반동의 시절을 겪는 동안 후배들은 생각할 것이다. 장준하 선생의 말과는 정 반대로 '못난 선배가 되어버린' 선배들 덕분이라고.
이번 선거를 앞두고 어느 트위터 이용자가 이런 말을 했다.
"선거가 끝나고 만일 야권이 패배할 경우, 20대 개새끼론과 노빠 책임론이 대두할 것이다. 이것은 필연."
아니나 다를까 20대와 청년 세대를 싸잡아 비난하는 글과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특히나 야권 성향을 가진 40~50대 장년층이 '나도 투표했는데'라며 짐짓 청년층에 훈계를 하고 있는 모양을 보고 있노라면 이들이 말하는 진보나 사람사는 세상의 정체가 뭔가 싶다. 청년층의 투표율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열성적으로 참여해 박 당선인을 탄생시킨 사람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지 그것을 간접적 책임만 지닌 청년들에게 돌리는 것은 비겁한 처사이다. 스스로는 '못난 선배가 되지 않았다'는 도덕적 우위를 점했다고 착각하기에 깨어있지 않은 청년들을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만만한 청년세대 말고, 그들의 부모와 동료를 비난하고 설득해 내는데는 왜 그리 소극적이고 무능했는지 묻고 싶다. 후배들과 후세대를 규탄하는 이들에게 장준하 선생처럼 "못난 선배가 되지 말자"는 성숙한 그릇을 요구하는 건 과연 무리일까?
P.S) 안중근 의사는 이 결과를 어떻게 보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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