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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에세이ㆍ시

[꽃들에게 희망을 - 트리나 폴러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 걸까?

 



꽃들에게 희망을(BESTSELLER WORLDBOOK 20)

저자
트리나 포올러스 지음
출판사
소담출판사 | 1991-11-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세상을 꽃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서는 많은 나비가 필요합니다. 하...
가격비교

 

근무 폭발로 포스팅 하나 하기 힘들 상황에 몰렸지만 책은 항상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상황들 하나하나가 뒤돌아서 생각해보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고, 그것은 책에서 다뤘거나 고민한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친구의 결혼식 참석차 지방에 갔다가 예식 후 오후에 친구 J를 만났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우리네 현실을 이야기하게 됐고 문득 떠오르는 책 한 권이 있었다. 바로 작가이자 조각가, 운동가인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었다.

 

J는 최근까지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근무했다가 귀국했다. 페루와 에콰도르 등 남미에서 약 5년 정도 나가서 지내다가 귀국한 J는 한국인이면서도 확실히 한국에 대해 냉정한 관찰자의 입장을 가질 수 있었다. 한국의 문화적 감수성과 맥락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은 아니면서도 해외에서 오래 지내면서 한국적인 상황에 매몰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입장이었다. J는 한국의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분위기, 일률적인 삶의 방식 강요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고등학교 동창인 J와의 대화는 자연 동기동창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명문대 진학반에 속해 있던 기억들을 토대로 지금도 위로, 위로 올라가려는 경쟁에서 애쓰는 친구들의 모습이 화제가 됐다. 다들 연락하고 지내지는 않지만 누구는 어디를 갔고, 또 누구는 무슨 고시에 합격해 뭐가 됐다는 소식들을 나누며 이런 말이 나왔다.

 

“그런데 왜 그렇게 올라가려고 하는지를 모르겠어.”

 

그 말을 듣고 <꽃들에게 희망을>이 떠올랐다. 호랑애벌레였던가. 애벌레들이 쌓이고 쌓여 이뤄진 기둥(혹은 탑?)에 오르기 시작한 뒤, 맨 위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일단 다들 올라가니까 오르려 했던 호랑애벌레. 맨 위에 뭐가 있을지 기대했던 호랑애벌레가 기둥의 끝에 올랐을 때, 그 곳은 ‘허공’이었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 하지만 그곳을 향해 아래에서는 수많은 애벌레들이 죽을힘을 다해 올라오고 있었다. 나도, 친구도, 동기동창들도 그렇게 오르려만 하지만 결국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경쟁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그 애벌레들처럼.

 

J가 업무 중 만났던 사람들 중에는 기둥의 끝에 올랐다가 은퇴한 이들이 있었다고 했다. 기둥의 끝에 있거나 거의 다 이른 사람들도 있었다고 했다. J는 그 위치를 지키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발버둥을 치는지 지켜봤다. (해외에 가서도 한국인들끼리는 한국의 상황과 분위기가 그대로 재현된다고 한다) 고작 몇 년에 불과한 그 자리, 그 권력이 얼마나 부질없고 유치한 놀음인지 지켜본 J는 그들이 진정 행복한가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기둥오르기에 뛰어든 친구들의 충고 아닌 충고에서도 답답함을 느끼고도 있었다. 허나 19세기 유행한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이 사회 분위기의 주류를 형성하고, 맬서스의 예언대로 기둥(경쟁)에서 떨어지는 열등한 사람들은 방치해버리는 것이 한국의 분위기다. 사람들이 일단 허공이라도 높이 오르고자 하는 것을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인 모양새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국인들은 매일 불행하다.

 

 

프랑스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폴 발레리는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애벌레의 기둥에 오른 상황대로 생각하고 사는 게 아닐까? 주위에서 소년소녀 시절과 청년시절에 지녔던 소박한 꿈과 희망들을 ‘철들었다’는 말로 억압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자주 본다. 얼떨결에 밀려 진입한 애벌레의 기둥에서 다른 애벌레들이 하는 것처럼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자신을 죽이며 살아간다. 어느새 생각한 대로 살지 못하고 사는 대로 생각하면서 그것을 ‘현실이야!’라며 젊은이들에게 훈계하는 꼰대가 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목표로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이 불필요한 경쟁을 벌이는 것은 결국 ‘스스로 생각하지 않음’의 고백과 다름없는 것이다.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호랑애벌레가 진정으로 행복을 찾는 것은 결국 애벌레 기둥 아래로 내려와 사랑하는 노랑애벌레와 다시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찾았을 때였다.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을 찾았을 때 진정으로 행복해졌던 것이다. 그리고 나비가 된다. 남들이 알아주는 행복과 성공을 위해 허공을 향한 경쟁에 뛰어들면 어느새 그 룰에 매몰되어 그 룰대로 생각하며 살아가게 된다. 자신의 생각대로 살겠다는 젊은 날의 마음은 잊은 채. 오늘 하루의 일상을 보내면서 한 번쯤은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생각한대로 살고 있나요?”


P.S) <꽃들에게 희망을>을 읽을 때 루시드 폴의 <평범한 사람>을 들으면 제법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