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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유시민] 훌륭한 삶을 살기 위한 인생총론



어떻게 살 것인가

저자
유시민 지음
출판사
생각의길 | 2013-03-13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힐링에서 스탠딩으로,멘붕 사회에 해독제로 쓰일 책자유인으로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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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빼고 쓴 유시민 전 장관(이하 존칭 생략)의 글은 낮설면서 편안했다. 정치활동을 하던 시절 보여줬던 그의 눈빛을 기억한다면 낯설테지만 어느 순간 눈꼬리가 내려가고 많이 웃던 모습을 봤다면 편안하게 느껴질 법 하다. 힘을 잔뜩 주고 날린 슈팅은 뜬공이 되기 십상이지만 근육에 긴장을 풀고 자연스럽게 킥을 하면 더 정확하고 강력한 슈팅을 날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유시민도 날이선 긴장을 풀고 글을 쓰니 이전처럼 날카롭지는 않지만 정확히 급소를 노리는 좋은 글을 썼다. 전업정치를 그만두고 글쟁이로 돌아온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한줄 평은 그렇다.


유시민이 김 아무개 교수처럼 '아프니까 젊음이야'는 이야기를 늘어놓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직접 본 일은 없지만 최소한 글 속의 그를 떠올려 보건데, 독설 훈계조의 누구나 응석 받아주는 엄마조의 뉘와는 분명 다를 것이라 봤기 때문이다. 이런 예측은 대략 맞아 떨어졌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요새 유행하는 힐링도서와 분명히 다르다. 예를 들어보자.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과 그 어려움을 제공, 지속시키는 사회경제적 구조의 문제에 대해 유시민도 분명 동의한다. 딱 거기까지다. 각자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각 개인이 떨쳐 일어나야 한다는 대목에서 위로나 동정 좀 구하러 왔던 독자는 깊은 빡침을 느낄 가능성이 농후하다.


취업난은 청년들 자신만의 책임이 아니다. 국가와 사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위로를 받으면 열패감이 덜어진다. 그렇지만 위로의 힘은 거기까지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자기가 원인을 제공하지 않은 문제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고통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책임이든 사회의 책임이든, 닥쳐온 고통은 일단 내가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 세상을 원망해본들 달라질 것은 없다. 누구도 그 짐을 대신 져주지 않는다. '88만원세대'를 만들어낸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그것을 받아들인 정부를 비판하는 일은 정당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이 시련을 견뎌야 하는 것은 '세대'가 아니다. 청년들 각자 이겨내야 한다.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철폐를 요구하는 사회정치적 연대에 참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나름의 삶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아포리아, 2013, 52~53p


춥디 추운 시절에 뜨끈한 아랫목 이불 속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아놔"를 내뱉기 좋다. 이전에 스터디를 하던 시절, 첨삭만 하면 "그니까 구체적인 대안이나 방안이 뭐냐고?"를 연발했던 멤버가 있었다. (물론 그가 제시한 구체적 대안이나 방안도 순진하기 그지없었지만) 아마 그가 봤으면 대책도 없이 "삶의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룰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말에 열폭했을 것이다. 유시민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결코 구체적으로 이렇게 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55년을 살아온 자신의 경험과 사색의 결과를 적었을 뿐이다. 참고는 되겠지만 메뉴얼은 결코 아니다. (<아웃라이어>처럼 '1만 시간을 투자하세요' 같은 구체적 지침을 찾았다면 당장 덮으시길)


<어떻게 살 것인가>는 총 4장으로 씌여졌다. 1장 어떻게 살 것인가, 2장 어떻게 죽을 것인가, 3장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4장 삶을 망치는 헛된 생각들이다. 각 장의 제목을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듯이 인생총론서에 가깝다. 두께는 꽤 되지만 각 장에서 유시민이 자신의 삶과 생각들을 들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하지만 저자의 나이가 이제 55세쯤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젊은이들에게 확 와닿는 메시지는 아닐 것이라 본다. (저자 본인 인생의 기쁨과 환희를 위해) '헛된 욕망을 줄이고 주변의 소소한 행복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이해하기엔 그 정도 연륜이 쌓이지 않은 독자의 살아온 시간과 경험의 부족이 장애물이 된다.


글을 쓰기로는 대한민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유시민이지만 또 유시민처럼 호불호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사람도 드물다. 특히 지난 10여년 동안의 정치활동은 '전투적인 유시민'의 대중이미지를 남겨뒀다. 그 편견을 보이지 않는 색안경으로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물러난 뒷방 노인같은 유시민의 이야기에도 분노할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관조하는 듯이 씌여진 <어떻게 살 것인가>엔 정치를 했던 유시민의 이력상 아직도 논쟁의 여지가 있는 사건들에 대한 본인이 생각이 예로 들어졌기 때문이다. (들었던 예나 그의 판단들에 나 역시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상당했다) 허나 이제 전업정치인 은퇴를 선언하고 자연인으로 돌아와 글쓰기에 전념하겠다는 그에게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건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해묵은 감정을 표현한 것일 뿐이다. 용서할 수 없으면 용서받을 수도 없지 않을까.


누구나 우연히 태어나게 되고 성장하고 살다가 죽는다.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여정이다. 한국인의 기대평균수명이 대략 80세쯤 되니 80년짜리 인생장정을 떠나는 것이다. 그 중 기억도 없이 부모의 도움으로 살아야만 하는 유아기가 거의 4~5년에 이른다. 취학을 하고 초중고를 다니게 되면 온전히 내 의지대로 살기 어렵다. 초중등교육에만 12년이 소요된다. (요샌 대학교육도 중등교육과 별반 다르지 않다만) 게다가 기본적으로 먹고 자는 시간을 무시하지 못한다. 어느 통계에선 먹고 자는 시간을 더해보니 24년쯤 된다는 내용을 본 적도 있다. 게다가 몸이 노화되면 자연 병이 찾아오게 되고 운동과 사고가 예전만 못해지게 된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노년의 시간들도 병이나 노환때문에 스스로의 의지와는 다르게 흘러갈 공산이 높다.


유시민은 나이 마흔이 됐을 때 이런 자각을 했다고 한다. 내가 정상적으로 내 철학에 의해 스스로의 의지대로 살 수 있는 시간. 매우 유한한 그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이 그의 인생행로를 바꿔놨다고 고백한다. 인생의 즐거움을 찾아 더 놀게 되고, 원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과 함께하며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이 사회의 정의를 부르짖던 것 못지 않게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그런 생각에 이른 자신의 경험을 담담히 적은 책이다. 재미는 별로지만 유시민이 아니라 그냥 옆집 50중반의 아저씨가 약주 한 잔 들고 들려주는 이야기라 생각하고 읽으면 얻는 바가 없진 않을 것이다.


내가 인간적으로 존경했던 사람들은 지금 당장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살고, 또 어떻게 노년을 맞아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던 흔적들을 보여줬다. '이쁜 할머니'가 되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늙어서는 더 깊은 향을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도 있었다.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나눴던 그 기억을 배경삼아 <어떻게 살 것인가>에 와닿았던 대목이 있어 조금 옮겨보면서 마친다. 노인에게나 청년에게나 모두 유익할 법한 이야기다. 인생은 유한하고 행복을 느끼기에도 모자라다. 모두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행복을 느끼면서 훌륭한 삶을 살아가시길!


젊은 시절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떨쳤던 홍사중 선생은 아름답게 나이를 먹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일흔 여덟에 쓴 수필집에서 그는 밉게 늙는 사람들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했다. 1)


1. 평소 잘난 체, 있는 체, 아는 체를 하면서 거드름 부리기를 잘 하다.

2. 없는 체 한다.

3. 우는 소리, 넋두리를 잘 한다.

4. 마음이 옹졸하여 너그럽지 못하고 쉽게 화를 낸다.

5.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한다.

6. 남의 말을 안 듣고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사실 노인만 그런 게 아니다. 젊은 사람도 그럴 수 있다. 나는 훨씬 젊었을 때에도 이런 '밉상짓'을 좀 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면이 남아 있을 것이다. 이런 태도는 늙어서 새로 생기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원래부터 있다. 홍사중 선생이 예시한 '밉상짓 목록'은 젊은이들에게도 자기의 모습을 비추어볼 수 있는 거울이 된다. 만약 다음과 같이 정반대로만 한다면 노인이든 청년이든 똑같이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


1. 잘난 체, 있는 체, 아는 체 하지 않고 겸손하게 처신한다.

2. 없어도 없는 티를 내지 않는다.

3. 힘든 일이 있어도 의연하게 대처한다.

4. 매사에 넓은 마음으로 너그럽게 임하며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는다.

5.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신중하게 행동한다.

6. 내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는 남의 말을 경청한다.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아포리아, 2013, 223~225pp.


1) 홍사중, <늙는다는 것 죽는다는 것>, 로그인, 2008, 146p.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아포리아, 2013, 224p.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