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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철학

[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 - 이진경] 철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사회의 초상

사람은 본능적으로 유희를 찾는다. 먹고 마시며 노래 부르고 춤추며 웃음 가득한 만족감을 느낄 때 비로소 삶의 행복을 느낀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삼국지연의와 다른 정사正史를 말한다)을 보면 우리 민족에 대한 설명이 조금 나온다. 거기엔 제천행사를 열고 노인에서부터 아이까지 노래를 부르며 축제를 즐기는 우리 조상들의 모습에 대한 묘사가 들어있다. 우리의 문화적 DNA에는 유희를 찾는 본능이 고스란히 내려져 오고 있지 않을까.


웃음과 유희에 대한 우리의 욕구는 한국사회가 고스트레스 사회로 전이되면서 더욱 커졌다. 이전에 한 설문에서 가장 매력적인 이성 상으로 '재밌는(웃기는) 사람'이 뽑힌 것은 그와 무관하지 않다. 인간관계나 조직생활에서 상하의 위계질서가 명확하고, 각종 관습적 악습을 전통(혹은 예의)이란 이름으로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글로벌화 되고 자유주의적인 시대 흐름과의 괴리를 만들어낸다. 그 간극이 크면 클수록 사람들이 감내해야 할 스트레스의 양도 비례하여 증가한다.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인 일상에서 깨알같은 웃음과 유희가 갖는 카타르시스는 엄청나다. 누구나 어느 조직이나 커뮤니티에서 무거운 분위기를 몇 마디 멘트로 풀어제끼는 사람 한 명쯤은 경험해 보지 않았던가?



 (사진: KBS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한 편으로 씁쓸한 것은 그 웃음과 유희의 이면에 존재하는 본질적 한계 때문이다. 분위기 메이커가 순간의 상황과 분위기를 일시적으로 넘길 수는 있어도,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긴장과 스트레스를 재생산하는 사회적 분위기까지 해소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지속적인 분위기 메이커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등 뒤에 달라붙어 다니는 긴장과 스트레스를 외면하기 위해 사람들은 지속적인 유희와 웃음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 맹점이 있는 것이, 웃음과 유희 자체를 목적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고의 패턴이 아프고 힘들게 본질을 찾아 해메기보다는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웃음에 집중하게 된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웃음 코드, 개그 코드가 넘쳐나는 것은 이런 우리의 자화상이 고스란히 녹아난 결과다.



 

너무 무겁기만 한 것이 옳다는 말은 아니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 받고 힘겨운 생활인데) 하지만 그와 반대로 너무 가볍기만 한 것도 마냥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유쾌한 풍자와 해학으로 인기를 끈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가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이 둘 사이의 어딘가에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코드를 재빨리 선취했기 때문이다. 요새는 무슨 폭로 전문 방송처럼 변질된 것 같으나 방송 초기 그들의 분위기는 어렵고 진중한 문제들을 '재밌게' 풀어낸 그것이었다. (방송의 절반은 각하찬양, 나머지 절반은 그들의 낄낄대는 웃음소리였으니) 하지만 너무 경화된 분위기가 사안의 무거움을 지나치게 가볍게 한다는 걱정도 있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은 그의 최근 저서 <사랑하지 말자>에서 이렇게 밝힌다.


"나꼼수의 '가카방송'도 젊은이들의 정치의식을 일깨운 공로가 매우 크지만 가카의 비리를 희화시키면서 국민들의 가카에 대한 정의로운 판결의 에너지를 경화輕化시킨 측면도 있다"


-도올 김용옥, <사랑하지 말자>, 통나무, 2012, 343p.


웃음과 유희 쪽으로 치우친 무게의 추를 균형 맞춰야 한다는 측면에서 지금 우리에게는 조금 깊이있고 진중한 고찰과 사색이 필요하다고 본다. 마냥 웃고 넘기기에, 우리의 일상과 현실은 너무나 무겁게, 또 지속적으로 우리 옆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

저자
이진경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7-1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닥치고 정치’ ‘닥치고 경제’만이 능사일까? 철학자 이진경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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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이진경(본명 박태호)이 이번에 펴낸 신작 <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이하 뻔시한정)는 그 균형의 추를 맞춰줄 좋은 참고서란 생각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경화되었던 사고의 패턴과 깊이를 조정하고 자극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철학자의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본 오늘의 한국사회에 대한 지적은, 내가 보지 못한 부분에서는 '과연'이라는 찬사를 뱉어내게 했고,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비슷한 부분에서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했다. 이진경은 <철학과 굴뚝청소부>란 철학책으로 유명하고 (본인은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으로 허명-본명보다 필명 이진경이 더 유명해져버린-을 얻었다고 하나 대중적으론 <철학과 굴뚝청소부>가 더 유명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뻔시한정>도 철학을 베이스로 씌여졌으나, 너무 부담갖거나 어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뻔시한정>은 저자가 관찰한 한국사회의 현상이나 여러 모습들을 자신의 경험과 철학을 통해 쉬운 말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철학이래봐야 그다지 어려운 수준까지 파고드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도구적'으로 쓰였을 뿐이다. 하지만 저자의 철학적 깊이로 바라본 독특하고 신선한 시선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신의 일상성을 부정할 수 있는 용기와 '당연한 것'다고 여긴 것들에 대한 의심 정도는 준비하고 읽기에 들어갔으면 한다.


저자는 부조리하고 위선적이다 못해 뻔뻔해지기까지 한 한국사회의 지배자와 지배체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으로 이 책의 집필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비리가 비리인줄도 모를 만큼 비리가 일상이 된 사람들이 지배하고 통치하는 사회,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가랑비에 옷 젖듯 거기에 익숙해져가고 무뎌져버린 사회. 그것은 어떤 비리에도 위축되거나 소심해지지 않는 뻔뻔함이 지배하는 사회일 것이다. 뻔뻔함의 사회, 그것은 위선마저 사라진 황량한 사막인 것이다. 지젝이 말하는 "실재의 사막"이 이런 걸까? 차라리 위선이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이진경, 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 문학동네, 2012, 136~137p


 

저자가 바라본 이명박 대통령 각하(이하 각하)의 지난 5년간은 뻔뻔함이 득세한 시대였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각하의 자화자찬은 그 뻔뻔함의 집약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나는 저자가 각하의 진심을 모른 채 음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곡동 사저부지매입 과정에서 드러난 비리가 특검에 의해 수사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좀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불충한 고백이지만 사실 취임 전 BBK특검 때부터 그랬다) 과거 내곡동 사건이 최초로 보도됐을 때 방미 중이시던 각하께서는 교민들에게 "우리나라는 시끄러운 나라"라고 말씀하시었다는데 사실 이 말씀은 '뭐 그런 (작은)걸 가지고 그러냐'는 의미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각하의 아드님이신 이시형 씨께서 각하의 큰 형님이신 이상은 ()다스 회장님(일까?)께 현찰 6억을 받았다고 밝히신 마당에 사건의 실체는 속속 드러나는데 아무 말씀이 없으신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다. '그래서 뭐?' 이런 뻔뻔한 심정이 아닐까...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불충한 상상력일 뿐이니 걸러서 들으시기 바란다. 나보다 더욱 불충한 저자는 각하의 '뻔뻔한 정치'에 질려버린 나머지 전두환이나 박정희 등의 위선이 아쉽다는 반어로 각하를 조롱한다. <뻔시한정>의 전체 내내 각하에 대한 불충은 계속되지만, 특히 2'위선의 사회와 뻔뻔함의 사회'는 저자가 작정하고 가장 많은 분량인 100페이지를 할애하여 불충한다. 디테일이 궁금한 독자들은 저자가 각하께 철학적으로 얼마나 기발하고 날카롭게 불충한지 2부를 중점적으로 읽어보면 되겠다.



 (사진: 연합뉴스)


허나 저자가 정치만을 대상으로 한국사회를 바라보지는 않는다. <뻔시한정>은 총 5부로 구성돼 있는데 2부 외에서는 노동, 교육, 예술, 건축, 과학, 생명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시각을 소개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읽었던 부분은 3'근대인의 초상'4'재난의 정치학과 휴머니즘'이었다. 최근 가장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라 많은 부분에서 생각이 일치했거나 몰랐던 부분에 대한 좋은 참고가 됐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0년 말에서 2011년 초까지 수백 만 마리의 살아있는 짐승을 땅속에 매몰시켜 버린 구제역 파동에 대한 저자의 관점을 소개할 수 있다. 그 당시 나도 좀 놀랐는데 아직 감염되지도 않은 산 돼지나 소를 트럭에 실어서 거대한 구덩이에 그냥 쓰레기 버리듯 밀어넣는 장면은 꽤나 충격이었다. 살아서 소리 지르는 짐승들이 빼곡히 들어찬 구덩이는 곧 흙으로 덮였다... (T_T) 그 명분은 구제역의 확산을 막는다는 선제적 '살처분'이었다. 그 때도 수의사 등 전문가들이 구제역은 그냥 두면 감기처럼 알아서 낫는다고 소리 높였지만 뭔가를 보여줘야 했던 정부당국엔 어림없는 소리였다. 키우던 가축이 그렇게 생매장 당하는 구덩이 옆에서 곡을 하던 축산농 노인들의 모습이 기억에 선하다. 우리는 그저 멍하니 '가축들을 죽이는 구나' 정도였는지 모르지만 저자는 이와 다른 시선으로 구제역 파동을 바라본다.


그러나 가축들에게는 마치 '감기 같은 질병'인 구제역을 막기 위해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350만 마리의 가축들을 학살한 사태 앞에서 우리가 정작 던져야 할 질문은 '방역' 자체를 향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 방역보다는 그냥 병을 앓는 것이 낫지 않을까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병을 통해 우리 자신의 능력을 확장하는 길도 있지 않은가 물어야 하지 않을까?


-이진경, 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 문학동네, 2012, 264p


생명 중 존중 받을 존재는 인간 뿐이라는 오만, 병을 싸워 이겨야만 하는 군사주의적 대결 대상으로 보는 편견 등이 만들어낸 결과는 핏빛 침출수와 토양오염으로 이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에 대한 우리의 질문과 성찰이 없다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자화자찬은 부끄럽기 그지없는 자뻑에 불과할 것이다.



 

조금 눈에 띄는 부분은 저자가 '정치적 아마추어리즘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글에서 무소속으로 대통령 선거에 뛰어든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밝히는 저자의 정치적 입장을 고려해 생각해 봤을 때, 의외의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지지 이유는 세 가지쯤 된다.


첫째, 안철수 같은 '아마추어'가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둘째, 안철수 같은 '어설픈 초심자', 자기의 진심조차 어눌하게밖엔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이 정치를 할 수 있기 고대한다

셋째, 안철수 같은 '과학자'가 정치를 하게 되길 바란다


요약하자면 직업적인 프로페셔널 정치인들의 한계를 극복하고, 과학자로서의 합리성을 기반으로 정치를 하게 된다면 기존 정치의 폐단을 능가하는 새로운 정치를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의견이다. 윤리도덕의 뿐만 아니라 합리성의 부문에서도 낙제점을 받은 이명박 정부의 5년을 극복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저자는 안철수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최소한의 합리성은 회복하여 자신같은 포스트주의자도 합리성의 한계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적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가 범람하는 시기다. 이 나라에서 가장 큰 선거인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매체들은 정치기사와 보도를 쏟아내고, 크던 작던 국민들의 관심 또한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 국민들이 지난 5년간 아주 값비싼 비용과 희생을 치러가며 이명박 정부에게 얻은 소중한 경험이 반영됐기 때문 아닐까?


결국 모든 마술적 포획과 위선의 테크놀로지를 포기한 뻔뻔함의 체제가 지속될 수 있는가 하는 실험은, 부정적인 답과 함께 막을 내릴 것 같다. 하지만 끔찍하게도 길게 느껴졌던 이 정치적 실험이, 혹은 실패로 귀착될 이 뻔뻔함의 체제가 그저 아무 의미 없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경우보다 심하게 '정치'에 대한 짜증과 혐오를 야기했던 뻔뻔함의 체제가, 어느 경우보다 더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증폭시키고 첨예하게 만들었다는 역설적인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이 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우리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갈 이유일 것이다.


-이진경, 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 문학동네, 2012, 149p


선택의 순간은 2달이 채 남지 않았고 서서히, 하지만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우리 국민의 집단지성이 어떤 판단을 내려줄지 궁금하다. 그리고 부디 그 판단이 역사에 현명한 선택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P.S) 저자와의 대화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