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지내오면서 수많은 아르바이트와 직장에서 일해왔다. 아주 영세한 사업장에서부터 중소기업, 대기업 규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을 아르바이트와 인턴, 계약직, 정규직으로 형태를 바꿔가며 전전했었다. 대학 입학과 함께 시작된 먹고사니즘의 운명이 이끌었던 그곳들은 참으로 천태만상이었다. 급여를 받는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근로조건과 환경이 천차만별이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각기 다른 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가진 태도였다. '월급 주면 그냥 까라는 대로 다 깐다'는 자세가 그랬다. 딱히 오너가 없는 공기업에서도 그랬다. 마치 새경 주는 대감마님의 명령에는 절대복종는 머슴처럼, 근대적인 노동계약을 맺고 일하는 노동자들이 말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수호하는 시장경제를 국시로 삼는 대한민국은 엄연한 자본주의국가다. 따라서 노동시장에서도 사용자와 노동자가 각자의 노동력과 임금을 사고 판다. 그것은 엄연한 근로계약에 따른 상호계약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용자와 피사용자의 위치는 동등하지 못하다. 아무래도 고용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용자가 '갑'의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소위 월급 받으러 들어간 사람은 약자의 위치에서 제아무리 부당한 처우를 받아도 어지간해서는 큰 소리를 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은 약자의 위치에 있는 노동자와 갑의 위치에 있는 사용자의 관계를 규정하는 노동법, 즉 근로기준법을 두고 둘 사이의 관계를 조정한다. 이 법이 실제로 노동자를 보호하는가에 대한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이 법을 너무 간과하고 산다. 그래서 못 미더운 법이 보장하는 최소한의 것조차 누리지 못한채 직장생활을 한다.
<(입사에서 퇴사까지) 직장인이 꼭 알아야 할 노동법>(이하 노동법)은 제 몫으로 정해진 것조차 못 챙겨먹는 이땅의 수많은 장그래들에게 전하는 근로메뉴얼이다. 채용에서부터 근무, 임금, 징계, 인사이동, 퇴사 등 직장생활의 다양한 분야에 규정된 근로기준법에 대한 사용설명서라고 할 수 있다. '을'이나 '정'의 위치에 있는 직장인이라면 일독할 필요가 있는 책이다. 한참 불균형한 고용관계에서 을이나 정이 조금이라도 갑과 균형추를 맞추려면 역시 아는 것이 힘이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치며 분신한지 40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고용주들에게는 스스로의 권리를 정확하게 알고 요구할 수 있는 노동자들이 필요하다.
"노동법은 근로자를 보호하는 법으로 근로자가 아니라 사용자가 지켜야 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사용자는 노동법을 반드시 알아야 하지만 근로자가 노동법을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무슨 권리가 있는지 모르면 피해를 봐도 모르고 넘어가거나 제대로 보상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잘못된 추측과 판단으로 문제를 더 크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노동법은 근로자가 꼭 알아야 하는 법은 아니지만 '모르면 손해'인 법입니다."
- 권정임, <직장인이 꼭 알아야 할 노동법>, 생각비행, 2012
월급을 급여일에 절반만 지급하고 나머지는 열흘 쯤 지난 후 지급하는 임금체불, 서울에 근무하는 직원을 지방으로 가라는 인사발령, 추가근무에 대한 수당 미지급, 육아휴직을 사용한 여직원들에 대한 노골적인 인사불이익 등등 직장이란 무법천지의 별 희한한 꼴을 많이 봤던 지라 읽는 곳곳이 실제 내 일처럼 느껴졌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곳에서부터 과거에 스쳐갔던 곳들까지 <노동법>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 정도가 심하고 덜하고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이런 내용을 먼저 알고 있었더라면 조금이라도 현명하게 대처했을 것이고, 조금이라도 유익한 조언을 할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개인적으로 <노동법>을 가장 권하고 싶은 대상은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이다. 프랑스나 독일에서는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를 교육한다는데 우리는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도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고 노동자로서의 감수성도 부족하다. 그래서 급한 불 끄러 취업시장에 뛰어들었다가 몇 년 다니지도 못하고 그만두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일할 사업장이 어떤 분위기로 굴러가는 회사인지는 사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순간부터 짐작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근로계약서를 써본 적도, 그런게 있는 줄도 모르는 사회 신출내기에게 대수롭지 않았던 것들이 다니다보면 결국 큰 문제가 되어 발목을 잡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엄혹한 고용시장에서 <노동법> 한 권 읽고 들어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아니나 약간의 차이가 나중에는 큰 차이로 벌어질 수 있다. 무엇이 나에게 유리하고 사용자에게 불리한 것인가에 대한 구분만 되어도 훨씬 현명한 판단으로 직장생활을 유리하게 풀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반대라면 사소한 일로 크게 얽혀서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고.
<노동법>은 근로기준법이 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보호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 노동자에게 과실이 있다고 인정될 수 있는 경우, 역시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 근로기준법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 가벼이 행동하는 것은 삼가라는 것이 저자의 조언이다. 아무래도 나보다 우등한 위치에 있는 사용자의 횡포를 견제하기 위한 법이다보니 아무리 법의 테두리로 보호한다한들, 문제의 꺼리를 주면 결국 그것으로 꼬투리가 잡혀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용계약의 갑은 사용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한 편으로 사용자 역시 만만치 않은-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안다던지-직원에게 함부로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그런 '을'을 몇명 본 적이 있다) 미생이 완생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역시 아는 것이 힘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전하는 조언을 옮기며 마무리하려 한다. 모두들 내일은 현명한 직장인으로 완생 하시길!
"직장생활의 영역에서는 예상하기 어려운 많은 문제가 숨고 드러나기를 반복합니다. 법적인 문제도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무조건 피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문제를 감당할 능력을 갖추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어에 능력을 뜻하는 말로 capability와 competency가 있습니다. 전자는 외부 환경이나 위협에 대응하는 능력이고 후자는 환경을 이용하는 근본적이고 내적인 능력을 말합니다. 법적인 갈등과 문제 앞에서 capability도 필요하지만 더 나아가 위기를 더 좋은 기회로 활용하는 competency도 필요합니다. 사용자 역시 competency를 갖춘 근로자에게 쉽게 불이익을 주지 못합니다."
- 권정임, <직장인이 꼭 알아야 하는 노동법>, 생각비행, 2012
'끄적끄적 > 법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판사유감 - 문유석] 곤장을 매우 치라 명한 원님도 억울할 때가 있는 이유 (0) | 2014.08.03 |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 대한민국헌법 전문] 이거 직무유기 맞지요? (0) | 2014.02.10 |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 - 김영란, 김두식] 시민으로 돌아온 두 법조인, 공정사회를 요구하다 (4) | 2013.05.19 |
[기울어진 저울 - 이춘재, 김남일] 대법원 개혁과 좌절의 역사 (4) | 2013.04.25 |
[내 목은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 박원순] 용산참사 4주년, 사법의 역사를 돌아보다 (2) | 2013.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