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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법률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 - 김영란, 김두식] 시민으로 돌아온 두 법조인, 공정사회를 요구하다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

저자
김영란, 김두식 지음
출판사
쌤앤파커스 | 2013-05-02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없는 놈만 억울하다?’ 우리 사회를 옭아매는 ‘그들만의 카르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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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복무하고 있을 당시 모셨던 아무개 소령이 있다. 육사 출신의 자부심이 대단했던 분이었고 그만큼 능력있고 리더십이 뛰어난 장교였다. (물론 조인트를 깔 때도 그만큼 능력있고 뛰어나게 변모하기도 했다 -_-) 언젠가는 이 분을 모시고 순찰을 갔는데 문득 내게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가만히 보면 불만만 많고 뭔가에 항상 비판적인 사람들이 있는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해?"


일개 병장 따위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저의가 의심스러웠다. 원하는 답을 해줘야 한다는 분위기를 감지하고 대답했다.


"물론 그 비판이나 견제가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안 없는 비판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하고 싶었던 말을 앞에 배치하고, 상대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뒤에 배치한 것은 효과적이었다. 뒤에 붙인 '대안 없는 비판'을 비판한 게 그의 맘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곧 그가 말했다.


"그렇지? 역시 김병장은 말이 통한다니까. 뾰족한 대안도 없으면서 불만만 많아가지고. 요새 것들은 입만 살아가지고... (어쩌구 저쩌구)"


군대라는 특수한 사회에서 철저한 계급체계에 익숙했던 당시로서는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사실 그 이후 이 대화는 나의 뇌리에 오래 남았다. 영국이나 프랑스가 2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뤄온 산업화와 민주주의를 불과 반세기만에 압축적으로 해냈음을 자랑거리로 여기는 대한민국에서 이 질문은 상당히 많은 것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효율성 위주와 결과 지상주의 문화가 만들어낸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그 홍역을 치르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분명 의미있는 비판과 견제를 '딴지 건다'며 조인트로 까버리고 달려온 길의 뒤에 우리가 심어둔 폭탄들이 이제야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표면적으론 90년대의 충격적 사건인 삼풍백화점 붕괴와 성수대교 붕괴가 그렇고, 내면적으론 정신세계의 황폐화로 OECD 회원국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안으며 살아가고 있는 오늘이 대표적이다. 뭔가 빨리빨리 해내느라 놓치고 온 것이 너무나 많다. '까라면 까는' 문화적 분위기에서 놓친 것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이 바로 서로 토론하고 협의해서 이견을 좁혀가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문화적 경험을 해보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시간 걸리고 귀찮기만한 그 과정이 민주주의의 유지와 발전에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사실도 잊은채.



시민으로 돌아온 대법관과 검사, 공정사회를 요구하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사회적 아젠다는 자율적으로 형성되기 보단 일부 방송이나 언론, 강력 사건, 예민한 정치적 이슈 등에 의해 좌우돼 왔다. 하지만 사회의 상층구조에서 논의되는 아젠다들은 일반 시민들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 마련이었고 대중의 자율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기에도 부적합했다. 보다 낮은 수준에서 사회적 이슈를 논하고 토론의 장을 열어보는 경험을 해보지 못한 시민들은 그저 '그런가보다'고 살게되는 수동적 시민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김두식 경북대 교수(이하 김교수)와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하 김위원장-북한의 국방위원장 아니다)의 대담을 묶어 펴낸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는 두 전직 법조인이 시민으로 돌아와 시민사회에서 제기한 사법개혁, 부패추방, 공정사회 실현 아젠다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 책에서 두 사람은 각 분야의 개혁 방안을 논의하기보다는 현재의 문제를 지적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갈 방향을 모색한다.


빽 없고 돈 없어도 차별받지 않고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공정사회는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 사회다. 현실이 그와는 반대로 돌아간다고 믿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공정한 사회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진다. 그 열망은 자칫 임계점을 넘어 격정적인 감정으로 쏠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그 이전에 냉정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부패와 각종 연줄의 카르텔이 공고하게 유지되는 원인을 따져보고 어디까지가 개인적인 문제이고 공적인 문제인지 고려해 봐야 한다. 각종 연줄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온갖 청탁이 몰린다는 검찰과 법원에서 근무했던 두 저자는 일상에서 이 문제를 엿볼 수 있었고 그에따른 심도 있는 고민을 해왔다. 그래서 두 저자의 대담은 감정과 이데올로기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격정적이며, 동시에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부패한 권력과 영악한 자본의 강고한 카르텔


공정사회를 논하기에 반면교사로서, 출범 초부터 강부자, 고소영 정권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불공정 사회 구현에 큰 업적을 쌓은 이명박 정권이 좋은 사례가 될 것 같다. 정권 내내 측근 비리와 친인척 비리로 얼룩졌던 이명박 정권은 '경제만 살려준다면' 어떤 비리나 부패도 눈감아줄 수 있다는 개발독재시대의 추억을 끄집어낸 유권자들이 탄생시킨 정권이었다. 일종의 '경제성장의 큰 일을 하려면 일정한 부패나 비리는 덮고 가야한다'는 논리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 이후 기소돼(경영권 편법승계에 이용된 에버랜드 전환사채(CB)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배임), 조세포탈 등 3가지 혐의) 유죄혐의가 인정된 이건희 회장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라는 '국익'을 위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특별사면한 것이 대표적이다. 부패 패러독스(부패가 국가경쟁력과 경제성장의 걸림돌이라는 부정론과, 부패가 성장의 윤활유라는 긍정론이 공존하는 현상)라 불리는 이 현상에 대한 김 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나라 법원 판결이 왜 그렇게 대기업을 선처하는지에 대해 강성남 교수는 이렇게 설명해요. "국가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해 선처한다는 법원판결의 배후에는 부패 패러독스가 자리 잡고 있다." 저는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언젠가 한국에 있는 외국 기업의 CEO들과 조찬을 하면서 이런저런 한국의 상황에 대해 얘기하는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프랑스  사람인 르노 자동차 CEO가 제가 판사 출신인 걸 알고는 '한국 법원은 왜 그렇게 기업 대표에게 관대한가? 왜 늘 풀어주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은 오너가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의사결정을 하는 구조여서 오너를 구속하고 실형을 선고하면 기업 자체가 흔들린다는 부담이 판사들에게 있다. 어느 정도 구속기간이 지나 집행유예나 벌금형 또는 사회봉사명령 같은 것을 내리면 국가적으로는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닐까?'라고 어물어물 답했더니 'CEO가 감옥에 있어도 회사는 회사대로 충분히 돌아갈 수 있는데, 왜 해보지도 않고 그럴 거라고 단정하느냐?'고 하더라고요."


- 김두식.김영란 저,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 2013, 샘앤파커스, p.71


물론 그들은 자본과 권력으로 대표되는 힘을 지닌 이들이기에 피지배 신분인 시민 개인들로서야 반대하고 견제하려 한다고 해도 딱히 방법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선출된 권력이 대물림 된 자본권력의 편의를 봐주고 다시 시민들은 그런 정권을 연장시켜주는 악순환을 투표로 끊어내지 않는 이상 부패 패러독스는 쉽게 해체되지 않을 것이다. 마치 부정을 저지른 재벌총수가 물러나면 그 재벌이 무너지고 한국경제가 망하기라도 하는 듯이 요란을 떠는 이들에게 놀아나지 않는 국민의식이 성숙된다면 자연 해결된 문제기는 하지만 말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은 부정의 혐의에서 자유로운가


큰 인물들과 큰 사건들에서의 비리와 부정들이 우리 사회를 불공정하게 만든다며 욕하기는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소시민들이 자신의 일상에서 저지르는 작은 비리들이 우리 사회를 부정하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겨묻은 놈이니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들이 모이면 숫자로는 얼마 되지 않는 '똥 묻은 놈'보다 더러울 수 있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댄 애리얼리 저, 이경식 역, 청림출판, 2012)을 들어 이렇게 말한다.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을 보고 느낀 게 딱 이 부분이었어요. 사람들이 자신의 선함을 합리화할 수 있는 선, 작은 부분에서 유혹에 넘어간다는 대목. 1970년대 케네디예술센터가 운영하던 선물 매장에서 일하는 300명의 자원봉사자 얘기가 대표적인데, 이 매장의 한 해 40만 달러의 매출 중 15만 달러를 누가 훔쳐갔다고 하잖아요. 조사해보니 어떤 한 사람이 훔친 게 아니라,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조금씩 훔친 것이었다고 하죠. 사람들은 자신이 선하다고 믿기 때문에 어떤 기준을 넘어서는 나쁜 일을 벌이지는 않지만 일상의 사소한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너그럽게 허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도덕적인 삶을 유지하는 건 다이어트하고 비슷하다고도 해요. 점심, 저녁은 샐러드만 먹었으니 자기 전에 쿠키 정도는 먹어도 된다,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자기 전반적인 삶을 돌이켜볼 때 내가 착한 사람이었다고 생각되면 조그만 부정을 허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거죠. 사소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건 일반적으로 착한 사람이래요.


- 김두식.김영란 저,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 2013, 샘앤파커스, pp.51~52


권력이나 재물이 많은 사람이 아니어도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공정 사회를 만드는데 참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글을 보는 독자들도, 이 리뷰를 쓰는 나 역시도 뜨끔해지는 대목이다. 누구나 '사소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착한 사람'이었던 경험이 없진 않을테니 말이다.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는 권력형 부패, 정치자금, 검찰 등의 비리, 부패 문제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진행되고, 그에 따른 처방과 시민사회에서 앞으로 더욱 진행되어야 할 논의들을 각각 한 장씩 마련했다. 내용의 구성과 저자들의 깊이있는 대담, 문제의 해결에 대한 제도와 시스템적인 고민들이 독자로 하여금 공정한 사회가 갖춰야 할 요건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보게 한다. 물론 이것으로만 한국 사회가 공정한 사회로 변모해 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제의식을 가지고 구체적인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며 사회적 의제화해서 많은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낸다면 마냥 꿈같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 시작이 될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를 한 번쯤 읽어보고 고민해 보는 것이 '돈 없고 빽 없는' 당신과 당신의 자녀가 살아갈 세상을 좀 더 공정하고 바른 사회로 만드는 첫 걸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