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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에세이ㆍ시

[생겨요, 어느 날 - 이윤용] 아직은 혼자여도 괜찮은 그와 그녀의 이야기



생겨요, 어느 날

저자
이윤용 지음
출판사
김영사 | 2014-11-2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아직은 혼자여도 괜찮은 대한민국 1인 가구 마음 탐방기생겨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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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읽은 얘기다. 최초의 인간은 자웅동체였다고 한다. 그런데 신의 형상을 본따 만든 이 최초의 인간은 신의 전지전능함까지 닮았던가보다. 급기야 신의 권위에 도전하기에 이르렀고, 진노한 신은 완벽에 가깝던 인간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둘로 갈라놓기로 결심한다. 결국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나뉘게 되었지만 원래 한 몸이었던 자신의 반쪽을 찾아 헤매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웅동체였던 인간을 약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과했던지, 남자와 여자는 아직도 수십 년을 붙어 살아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살지만 어쨌든 서로를 필요로는 한다. 서로는 필요하고 그리워하면서도 끝끝내 이해하지 못하게 한 신의 심술은 고약하지만 그 덕에 '그 남자와 그 여자' 사이에는 감동과 실망, 기적으로 꾸며진 사연들이 가득하다.


꽤 오래 전에 <그 남자 그 여자>라는 책이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출간된 적이 있었다. 이 책이 특이했던 것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을 보낸 남과 여가 그린, 서로 다른 광경을 대비시켰던 점이다. 남과 여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실제로 이해하고 느꼈던 것은 그 이후의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나서였다. 헤어짐을 치르고 난 뒤 영화 <러브 액추얼리>의 콜린 퍼스처럼 "Alone again"을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홀로 지내면서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는 시간 역시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홀로 지낸다는 것은 지난 시간을 되돌이켜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하고, 또 앞으로의 내 모습을 그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게다가 혼자 지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좋을 때'도 많다.


여기 올해 한국나이로 마흔 둘이 된 저자가 있다. 라디오 작가가 직업이고, 혼자서 맥주와 안주 사다가 집에서 월드컵 응원하는 언니. 누가 보면 궁상맞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녀는 당당하다. 오히려 편안하고 좋다고 말한다. 이 엉뚱한 언니가 자신의 생각을 에세이로 적어 출간했다. <생겨요, 어느 날>이다.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해왔고, 결혼한 친구들과의 비교와 주변인들의 압박(그녀의 부모님은 제외)에도 저자는 담담하게 일상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행복하다'고 말한다.


신부님이 해변 저 멀리로 사라지며 우리에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행복하셔야 합니다."


마음이 무겁고 복잡할 때면 지금도 종종 신부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그래, 행복하자. 까짓것 인생 뭐 있다고. 다 행복하려고 이러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참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배짱이 생긴다.


그래 덤벼봐, 세상아!

그래도 나는 행복할 테니!


- 이윤용, <생겨요, 어느 날>, 김영사, 2014, 130~131pp.


비록 제주올레길을 걷다가, 발이 까졌을 때 발에 반창고를 붙여 준 남자가 있어, 그를 파티에 초대하고 설레였는데, 그의 직업이 하필 '신부님'이라는 사실을 알게됐음(ㅋㅋㅋ ㅠㅠㅠ ㅋㅋㅋ ㅠㅠㅠ)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그녀의 편일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우연하고 그래서 더 재미있고 설렐지도 모른다.


<생겨요, 어느 날>이 <그 남자 그 여자>와 다른 점은 저자의 생각과 사색이 잘 드러나고 그것이 단순한 연애얘기나 사랑타령이 아니라는데 있다. 저자는 자신의 일상과 경험을 통해 인간적인 깊이를 보여준다. 또, 많은 공감을 살만하다.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먼저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는데 저자는 정말 '생길 거 같다 어느 날'.


감사한 마음에 괜히 뭉클해지던 그날,

사람의 '경험 활용 방법'에 대해 생각해봤다.


사람이 경험을 활용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나도 당해봤으니, 너도 당해봐라'와

'내가 당해봐서 아니까, 너한테는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경험을 어느 쪽으로 활용하며 살고 있을까.


- 이윤용, <생겨요, 어느 날>, 김영사, 2014, 37p.


<생겨요, 어느 날>은 굳이 리뷰를 길게 할 필요가 없는 책이다. 읽어봐야 진가를 느낄 수 있다. 짧고, 간략한 컨텐츠는 독자에게 쉽게 와 닿지만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는 않다. 그리고 각 페이지에 그려진 삽화들 역시 예뻐서 읽는 내내 기분이 좋다. 개인적인 소감을 말하자면 "내용도 예쁘고, 책도 예쁘다"고 말하고 싶다.


겨울이 깊어가고 있다. 이제 계절은 봄을 향해 가고 있다. 봄이 되면 만물이 소생한다. 산뜻한 봄바람이 살랑이고, 지천에 개나리와 벛꽃이 만개할 것이다. 혼자여서 좋았던 겨울이 지나면 둘이서 함께하기에 (더) 좋은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지나간 사랑의 기회가 끝이라 절망하는 사람에겐 위로를,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는 누군가에겐 지금의 행복을 주는 <생겨요, 어느 날>이 봄을 기다리는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혼자여서 너무 아까운 당신에게 "생겨요, 어느 날"이라고 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