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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에세이ㆍ시

[메이드 인 공장 - 김중혁] 생산현장의 치열함과 작가적 상상력의 하모니



메이드 인 공장

저자
김중혁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14-09-19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산으로 만들어진 조립품”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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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의 많은 시간을 생산하고 소비하는데 쓰고 산다. 어떨 때는 노동자로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데 열중하고 또 그 시간이 지나면 소비자로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한다. 아름답게 포장된 상품들이 고객의 눈을 한 번이라도 더 사로잡으려 경쟁하는 물질적 풍요 속에 살다보니 자연 잊고 지내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그 상품들이 다름아닌 공장에서 사람의 손에 의해 탄생됐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눈에 들어오는 어느 물건 하나도, 사람의 손을 타서 공장이라는 공간에서 생산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렇게 공장이란 현대인에게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이처럼 가까이 존재하고 있었던 거다.


공장이란 공간의 이미지는 떠올려보면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의 한 장면이 연상되기 쉽다. 모두가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하는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노동의 공간. <소금꽃나무>의 김진숙 같은 이들에게는 쥐가 들끓는 한 구석에서 언 도시락을 까먹으며 비인격적 언사를 감내해야만 하는 장소로 기억되는 곳이 바로 공장이다.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가 일하던 사무실 역시 현대적 의미의 공장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곳 역시 긴장과 노동이 뒤섞여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공장은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정형화된 모습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소설가 김중혁이 바라본 공장은 좀 정형화된 공장이다. 정말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 말이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맥주, 라면, 초콜릿, 간장, 화장품에서 시작해 조금 특이한 도자기, 콘돔, 브래지어, 엘피까지 물건을 생산하는 공장을 직접 견학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과 인터뷰를 했다. 정형화된 공장을 방문한 김중혁은 정작 스스로는 전혀 정형화되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딱딱하고 반복적인 공간에서 번뜩이는, 또 조금은 엉뚱한 생각들을 한다. 틀을 깨는 이런 번뜩임이 <메이드 인 공장>이란 에세이로 정리돼 출간됐다. (한겨레에 1년간 연재된 후 정리 후 출간) 평소 김중혁의 문체와 스타일을 흠모하던 독자들에겐 좋은 이야기거리가 되어줄 작품이다.


내가 쓴 공장 이야기가 반쪽뿐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다. 나는 전문적인 공정을 꼬치꼬치 캐묻지도 않고 공장 사람들과 농담을 해가며 산책을 했다. 이 책은 공장 탐방기가 아니라 공장 산책기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분들도 그렇게, 느긋한 마음으로, 조금은 수다스러운 한 사람과 함께 공장을 산책한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주면 좋겠다.


- 김중혁, <메이드 인 공장>, 한겨레출판사, 2014


치열한 생산현장의 이야기는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사유를 통해 한층 부드러워지고 따뜻해진다. 글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메이드 인 공장>의 다양한 이야기들은 참 푸근하게 읽힌다. 강하고 긴장이 넘치는 글들을 읽을 때 독자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와 부담을 안게 되는데, <메이드 인 공장>은 그런 스트레스와 부담을 덜어주는 글이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다고 하던데, 글도 글로써 잊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각 제품들이 생산되는 과정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공장 전문가들의 음성을 옮긴 것들이 좋았다. 내가 해본, 혹은 내가 보았던 것 외에도 수많은 사물이 생산되는 것처럼 수많은 전문가들이 그들의 생업 현장에서 소위 달인이 되어 일하는 모습은 그 동안 가졌던 공장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잘한다는 것은 천부적인 재능보다는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그것이 차곡차곡 쌓였을 때 가능하다는 소박한 진리를 새삼 떠올리게 됐다.


거대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통해 유지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다. 누구나 공장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공장은 거대한 시설로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그곳에 사람이 없다면 그건 온전한 공장이 아니다. 사진작가 고 최민식 선생이 "아무리 좋은 사진이래도 그 안에 사람이란 피사체가 없다면 작품이 아니라 단순히 풍경사진이 되버린다"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치열한 생산현장의 열기와 엉뚱하고 재치넘치는 작가의 상상력이 이룬 앙상블이 독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메이드 인 공장>. 가벼우면서도 사유넘치는 글을 찾는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