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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빠른 조류와 탁한 시야라는 두 단어

(사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화면 캡쳐)


그것이 알고 싶다

정보
SBS | 토 23시 10분 | 1992-03-31 ~
출연
김상중
소개
SBS의 대표적인 시사고발 프로그램으로 사회 전반의 다양한 문제점들을 들여다본다.

어제 <그것이 알고 싶다> - 찌라시편 중 천안함 사건 유가족 대표가 했던 이야기가 문득 떠올라서 적어본다.


천안함 사건 당시 유족 대표라는 이정국 씨의 발언이었는데 


"그러니까 제가 딱 눈에 꽂힌 단어가 뭐였느냐면 '빠른 조류''탁한 시야' 이 두 단어에요. 아, 끝났구나 그러니까 그거는 천안함 때도 똑같았었다는 거죠." (사진 참조) 


'빠른 조류''탁한 시야'. 아마 이번 세월호 참사를 두고 보도된 내용을 많이들 봤으니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잠수부들의 인터뷰를 인용해서 많이들 들어보셨을 것이고, 김석균 해양경찰청장께서 직접 "강한 조류와 깊은 수심, 제한된 시계.... 여전히 수색에 어려움이 있지만..."이라고 언급하기도 하셨다.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40507_0012901909&cID=10201&pID=10200)


천안함 사건과 세월호 사건이 쌍둥이였다는 것이 이정국 씨의 주장이었는데 나는 대한민국 재난구조의 흑역사를 떠올려봤을 때 세쌍둥이일수도 있다고 본다.


87년 말 대선을 앞두고 KAL기 폭파사건이 벌어졌었다. 아직도 이것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김현희의 소행이냐 아니냐를 두고 의혹제기를 하는 모양인데 나는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다. 87년 11월 28일에 벌어진 이 사고를 두고 현지로 급파된 정부조사단은 논리적으로 추론 가능한 지역이 아닌, 전혀 엉뚱한 곳에서 사흘이나 수색을 벌이면서 시간을 보낸 다음에야 수색 위치를 변경한다. 결국 정부조사단은 열흘이 넘도록 파편 하나 찾지 못한채 12월 9일 버마와 태국 대사관에 업무를 떠밀고 국내로 철수해 버리고 만다.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120900329211014&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7-12-09&officeId=00032&pageNo=11&printNo=12985&publishType=00020)


당시 정부합동조사단의 단장은 위 기사에 나온 것처럼 홍순영 외무부 제2차관보였는데, 이후 사건을 인계받은 안기부 수사단장이 유명한 묵주 정형근 씨(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지낸 그 분 맞다)다. 그는 2003년 11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KAL기) 블랙박스 얘기를 하는데 우리가 미얀마 앞바다에서 수색을 하는데 당시 수심이 2~3천m이고 초속 300m로 굉장히 물살이 빨랐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52005)


수심과 물살.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그런데 당시에 버마 현지로 특파된 허영섭 기자는 기사에서 '그러나 바다쪽으로 떨어졌을 경우 일대수심이 깊지 않아 어선들이 계속 어로작업을 벌이고 있으므로 쉽게 발견됐을 것이란 분석이다'고 썼다. (87년 12월 3일 경향신문 기사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120300329210006&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7-12-03&officeId=00032&pageNo=10&printNo=12980&publishType=00020)


결국 한국정부는 세월호 사건만이 아니라, 천안함 사건 뿐 아니라 그 이전부터 '깊은 수심과 빠른 조류'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말이다. 물리적인 제한과 어려움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몇 번이고 발생한 재난사고 관련 책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수색을 방해했던 요인이 이상하게도 일치하고, 그 결과 역시 비슷(부유물 하나 건지지 못하고 귀국 한거나 전복된 배에 있을 것으로 추정됐던 실종자들 중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거나)하다는 점에서 '안 한 것이냐'와 '못 한 것이냐'의 여부가 심히 의심된다는 것이다. 87년 사고 당시 현장을 취재한 기자가 '일대 수심이 깊지 않아'라고 밝혔음에도 말이다. 이번 세월호 사건 당시에도 170여명이 넘는 인력이 투입됐다고 했으나 실제로 잠수하는 이들이 없어 유가족들이 강하게 항의했던 것과 매우 비슷하다. 역사는 역시 돌고 도는 것일까.


대형참사가 코 앞에서 벌어졌는데 허둥지둥댔던 것까지는 납득할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이번 참사의 발생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진행된 일련의 조치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국민들은 깊은 수심과 빠른 조류에도 불구하고 한 명의 구조자라도 보기를 희망했지만 이런 기대는 철저히 배신당했다. 이런 엉터리같은 조치밖에 취할 수 없는 나라에서 우리는 천안함 유족 대표이정근 씨의 말처럼 '아 끝났구나'라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가. 그것이 우리가 몸과 마음을 다해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한 나라의 실체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나라를 기대하는 것이 너무 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