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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한국문학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최진영] 단장斷腸의 심정으로 불러본다. 어린 우주들아.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저자
최진영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10-07-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세상에서 가장‘못된’소녀의 지독한 성장기! 1996년 한국문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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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라성 같은 영웅들이 등장해 천하의 패권을 두고 다투던 중국삼국시대를 통일한 왕조는 엉뚱하게도 사마司馬씨의 진晉이었다. 통상 서진西晉으로 불리는 이 나라는 내분과 북방민족의 침입으로 망하고, 자신들이 멸망시킨 동오東吳의 수도 건업建業으로 도망쳐서야 겨우 사직을 보전한다. 동진東晉으로 부르는 이 나라에 환온桓溫이라는 장수가 있었는데, 지금의 쓰촨성四川省 일대를 지배하던 성한成漢을 정벌하러 갈 때의 일이다. 환온의 부하 한 명이 새끼원숭이 한 마리를 애완용으로 사로잡아 데려가고 있었다. 그 때 어미원숭이가 슬피 울부짖으며 백리길을 따라붙었다고 한다. 결국 이 어미원숭이는 지쳐서 죽고 말았는데 배를 갈라보니 내장이 전부 끊어져 있었다. 자식을 잃는 것처럼 지극히 깊은 슬픔을 표현할 때 쓰는 단장斷腸이라는 말은 바로 이 고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아직 부모가 돼보지는 못했기에 그 마음을 어찌 알까만, 아이를 낳아 키우기 시작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고 배우는 바가 크다. 너무나 작아서 태아사진으로도 보이지 않던 점 같던 아이가 세상에 나와서 걸음마와 옹알이를 시작하더니 어느새 미운 세 살을 지나 학교를 들어간다고 하는... 아이의 곁에서 그런 시간들을 쭉 같이한 부모의 마음이 어떨까. 부모된 심정까지야 온전히 알 수는 없으나 수 십년 세월을 아끼고 사랑하여 키운 아이를 세월호 참사같은 사고로 황망하게 잃었다면 그 애끓는 단장斷腸의 심정을 짐작해 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사람은 하나의 완전한 우주라던데 그 온전한 우주같던 아이들 수 백명을, 위기 속에서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고 있었던 그 아이들을 차가운 바다 속에 버려둔 것은 소위 정부의 관리고, 구조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었다. 이 어처구니 없는 사태를 파면 팔수록 드러나는 진실은 추잡한 이해관계의 커넥션과 한줌도 되지 않는 알량한 자존심 대결이었다.

 

경각을 다투던 실종과 구조, 그리고 시신 인양 소식 같은 뉴스가 넘쳐났지만 정작 국민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든 뉴스는 실종되거나 사망한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부모님이 꼬깃꼬깃 챙겨준 용돈 2만원을 부모님 선물 사려고 아껴뒀다가 채 한 푼도 써보지 못하고 시신으로 발견된 학생의 이야기에서부터 실종된 아이를 남몰래 짝사랑했다는 어느 소녀의 편지, 아내에게 "학생들을 구하러 가야하니 이만 끊자"는 마지막 통화를 끝으로 실종된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사연은 우리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세월호와 함께 떠나간 아이들에게는 또 얼마나 많은 사연과 이야기가 있었을까. 짧은 삶이었지만 분명 아이들에게도 살아오면서 쌓아놓은 이야기가 많았을 것이다. 이제는 그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게됐다는 아픔이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다시 들게 했다.

 

이름조차도 모르는 '나'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주인공이다. 철저히 주인공 1인칭 시점으로 보여지는 세상은 참혹하기 이를데 없는 곳이다. 어린 여자아이로 태어난 주인공은 이름도 모른채 이년 저년으로 불리며 부모의 불화에 시달리다가 결국 집을 나간다. 자신을 때리고 구타하는 아빠는 가짜이며 아빠의 폭력을 막아주지 않는 엄마는 새엄마일 거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진짜 엄마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소녀는 이곳 저곳을 떠돌며 성장한다.

 

다방집 아들 찬수와 놀다가 만난 장미언니는 소녀에게 친절했지만 자신의 애인에게 매일 두들겨 맞으면서도 그를 만나러 다니는 이상한 인물이다. 백곰처럼 생긴 장미언니의 애인은 장미언니에게 생활을 의지하는 무능한 인물임에도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 하나로 자존심을 내세우는 허위의 인간이다. 그런 백곰에게 맞고 사는 장미언니가 자신의 엄마가 아닐 것이라 생각한 소녀는 역전에서 만난 친절한 할머니에게 (엄밀히는 할머니가 들고 있던 명절음식) 이끌려 할머니의 국수집으로 간다. 짧았지만 행복했던 할머니와의 생활이 끝난 것은 할머니의 친자식과 손주들이 내려오면서였다. 할머니는 그래도 핏줄이라며 자신 밖에 모르는 자식과 며느리, 손주들을 위해 그 작은 식당마저도 내놓게 된다. 염치없는 아들가족은 할머니의 마지막 하나 남은 것까지 요구한다. 본능적으로 떠날 때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소녀가 떠날 때 할머니는 눈물의 쌈짓돈을 찔러주는 것으로 마지막 정을 나눠준다.

 

할머니와 헤어진 소녀는 다시 떠돌다가 각설이패와 어울리게 된다. 소녀의 귀여운 애교가 각설이패에도 도움이 되자 각설이패의 대장은 소녀를 일행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대장이 애인이자 동료인 미남이 이모와 자주 다투더니 급기야 미남이 이모는 용이 삼촌과 돈을 갖고 도망을 가버린다. 더욱 좌절한 대장은 사람을 때려서 경찰서를 들락거리며 합의금으로 있는 돈마저 까먹는다. 떨어져 사는 딸을 위해 돈을 모으던 달수 삼촌도 좌절하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각설이패와도 헤어진 소녀는 가출청소년인 유미와 나리를 만난다. 새엄마만 다섯 명인데다가 그 중 돈을 가지고 튄 새엄마만 셋인 유미는 집을 나와산지 오래다. 나리 역시 비밀스런 이유로 집을 나와 사는데 남자 아이들을 패줄 만큼 깡이 좋다. 유미가 좋아서 따라다니는 상호와 친해진 소녀는 상호를 따라 재개발이 진행 중인 폐가에서 머물기도 하지만 결국 이들이 갈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누군가는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못된 소녀의 지독한 성장기'라고 묘사했지만 내겐 그닥 와닿지 않는 표현이었다. 아주 어린 소녀가 성장하면서 바라보는 세상은 가치중립적이다. 어린 소녀에게 재개발 지역에 살기 때문에 쫒겨나야 하는 사람은, 세상과 담을 쌓고 폐허에 숨어사는 거지철학자는, 이유없이 도와주려고 하지만 결국은 스스로의 신앙을 강요하는 교회 사람들은 딱히 선善과 惡으로 구분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저 불편하거나 답답할 뿐. 하지만 순수하기 때문에 보이는 현실의 민낯은 역시 마주하기 힘든 몰골이다. 소녀의 눈에 세상은 폭력과 배신, 몰염치와 돈욕심, 성적인 욕망이 복잡하게 뒤얽혀진 잔인한 곳이다. 또한 어린 아이들은 지저분하고 불안한 환경에서 생활하며 교육이나 의료 같은 기본적 권리조차 제공받지 못하는 지독히도 불행한 곳이다. 선후를 따지자면 소녀가 못된 것보다 세상이 먼저 못됐다. '세상에서 가장 못된 소녀의 지독한 성장기'라는 누군가의 표현은 '지독히 못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소녀의 성장기'로 수정되어야 한다.

 

겨우 받은 2만원 용돈으로 수학여행에서조차 부모님 선물을 생각했던 학생이, 어느 소녀에게는 첫사랑으로 남은 용감하고 정의로웠던 학생이 그토록 허무하게 삶을 마감한 것은 과연 누구의 탓일까. 누구는 국정책임자인 대통령을, 누군가는 홀로 탈출해 목숨을 구걸한 선장을, 누군가는 엉터리 해운사를 운영한 사진작가 유 아무개를 지목한다. 다들 옳은 이야기다. 하지만 오늘의 불행을 잉태한 것은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전관예우와 이해관계로 똘똘뭉쳐 마땅히 해야할 것을 하지 않고 부정한 이익을 취하고 나누었던 부패의 카르텔과 그를 침묵으로 용인한 우리 자신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소녀 역시 그저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은 아이였을 뿐이었지만 소녀의 부모도, 세상 그 누구도 소녀를 사랑해 주지 않았다. 다들 그저 스스로의 욕망과 이해관계에 성실했을 뿐이다. 사회와 어른들로부터 방치당한 소녀는 그렇게 소위 '불량 청소년'으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그 불량청소년이 발생하고 거리를 부랑하는 동안 침묵한 것 역시 우리 사회와 기성세대 아닌가. 그런데도 소녀에게만 '못됐다'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

 

비극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소녀의 삶을 지켜보면서 참 미안했다. 길거리를 떠돌며 그렇게 공포에 떨고, 추위에 떠는 동안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해서. 작은 힘도 돼주지 못해서. 이번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는 내내도 계속 똑같은 과정이 반복됐다. 무책임한 어른들이 침몰하는 배에서 먼저 탈출하는 동안 역시 무능한 어른들이 구조와 책임여부를 두고 안전한 곳에서 공방을 계속했다. 아이들은 당연히 구조하러 올 줄 알았던 어른들을 지금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서로의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쁘고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이 단장斷腸의 심정으로 촛불을 들었다. 이 촛불이 세월호 참사를 잉태한 뿌리깊은 비리를 척결해 불태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참혹한 사고를, 아니 살인을 다시금 방치하는 공범으로 남고야 말 것이다.

 

*이 리뷰는 반디앤루니스 홈페이지 '오늘의 책' 코너에도 동시에 올라가 있습니다.

(http://www.bandinlunis.com/front/display/recommendToday.do?todayYear=2014&todayMonth=5&todayDay=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