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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한국문학

[해피 패밀리 - 고종석] 그들의 집안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해피 패밀리

저자
고종석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3-01-2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가족의 이름으로 그려낸 우리 시대 가장 외로운 서사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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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필연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그게 좋은 친구가 됐건, 사랑하는 연인이 됐건 혹은 악연으로 끝날 사람이었건 말이다. 개개인은 타인을 만나서 그들과 관계를 맺고 때론 사랑하며, 또 때론 증오하며 살아간다. 영원한 것은 없듯이 관계에도 생명이 있다. 관계가 어그러지거나 감정의 묵은 때가 임계점을 넘게 되면 그 소명을 다하고 정리가 되기 마련이다.


여기에 약간의 예외가 있다면 '가족'이란 이름의 관계를 들 수 있다.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가 보다 '쿨'해지고 감정의 정리조차 빨라지는 현대에 와서도 가족에 대한 끔찍한 사랑과 헌신은 브라운관과 스크린, 지면 등을 통해 우리를 감동시킨다. 영화 <아아 엠 샘>의 오마주가 떠오르는 <7번방의 선물>이 수많은 대중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던 사례를 통해 우리가 가진 가족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허나 아름답게 포장된 영화와 소설 속의 가족과 다르게 현실의 가족은 해묵은 갈등과 오해들로 곪아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태어나 최초로 관계를 맺는 '가족'이란 울타리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깊은 관계와 견고한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사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가장 깊은 증오와 분노를 향할 수 있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뉴스에 등장하는 존속살해나 영아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명절에 모이기만 하면 언성을 높이며 싸우다 헤어지는 가족 혹은 친족들의 모습은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천륜天倫으로 맺어졌다는 가족도 그 실제는 욕망하고 갈등하는 인간사의 관계들과 하등 다른 것이 없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 법도 하다.


고종석의 소설 <해피 패밀리>는 (작가가 어떤 의도로 썼건 간에) 현대 사회의 가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계기를 제공하는 작품이다. 기본적인 소재는 (여기서부터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참고하시라)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의 오마주를 느낄 수 있는 남매간의 사랑이다. 강신재의 그것이 의붓남매라는 형식을 통해 이 사회의 도덕적 관념이 가져올 비난을 살짝 비껴나갔다면 고종석은 한 걸음 나아가 친남매의 사랑이란 형식을 과감히 차용한다.


굳이 파격적인 소재를 들고 나온 이유는 아무래도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신성한 가족'이란 높은 관념에 보다 큰 울림을 주고 싶었기 때문으로 본다. 작가는 남매간의 사랑이 가져온 결과를 현재로부터 과거로 회귀하는 방식으로 그려낸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말하고자 했던 부분이 단순히 흥미거리 정도의 타부가 아니라, '어떤 사건' 이후로 현재의 가족들이 유지하는 관계임을 강조한다. 독자는 이 방식을 통해 현재의 갈등을 관찰하게 되고 차츰 그 갈등의 원인을 파악해 가면서 가족이란 관계의 이면을 볼 수 있게 된다.


한 씨 집안의 이야기를 옆에서 가장 성실히 관찰한 등장인물은 한민희의 친구였고, 한민형의 아내이자 한 씨 집안의 며느리인 서현주다. 그녀의 말을 통해 독자는 가족의 이면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꼭 결혼과 관련해서가 아니더라도 지금의 내 처지, 그러니까 남편이나 시댁 식구와의 관계, 직장, 이런 것들이 내게 온전히 흡족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항상 흡족하다는 표정으로 산다. 가증스러운 위선이다. 아니 가증스럽다는 말은 너무 강하다. 강하다기보다 차라리 왜곡이다. 내 위선은 지혜로운 위선이다. 가족들 사이에 평화를 만들어내는 위선. 가족들 사이에 사랑을 만들어내는 위선. 비록 그 평화가 당장이라도 바스러질 듯 위태위태한 것이고, 그 사랑이 보기에만 아름다운 치장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 고종석, <해피패밀리>, 문학동네, 2013, 82p.


서로 간의 위선이란 불안한 기둥에 의지해 유지되는 가족들의 평화와 사랑. 그것은 단지 이 작품에서가 아니라 우리 개개인이 퇴근 혹은 하교 후 돌아가는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모습들이다. '우리 가정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분명 그런 가정이 있을 수도 있다. 같은 가능성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의 가족 중에 서현주 같이 위선을 통해서라도, 그 불안한 행복과 사랑을 유지하려는 이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녀의 위선에 다른 가족들은 그녀를 '좋은 며느리'로만 알고 있었던 것처럼.


'위선은 악이 선에게 보내는 경배'라 하지 않았던가. 아직까지 이 사회의 도덕적 수준이 최소한 위선을 통해서라도 염치를 지키고 선을 표방해야 한다는 강박을 요구하고 있다. 가족이란 울타리를 힘겹게 지탱하고 있는 위선이란 기둥 역시 그런 도덕적 강제들이 가족 개인에게 강요하고 있는 시지프스의 바위와 같다. 겉으로는 평화롭고 사랑이 넘치지만 그 안에는 못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질책, 경제적 능력이 없는 부모에 대한 비웃음이 가득한 자식의 원망이 '각각의 도리'라는 페르소나를 뒤집어 쓰고 숨어있을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공자의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말로 제경공齊景公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답변한 말.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뜻)이란 유교적 가르침이 지배하는 사회에 산다. (한국에서는 이 뜻이 약간 왜곡되어 부모는 군림하고 자식은 복종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유교적 페르소나를 갖출 것을 요구받는다. 이것을 어긴 다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금기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어 폐륜아 혹은 망나니란 주홍글씨가 새겨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솔직하게 욕망을 털어놓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는다. 임금의 엄명에도 불구하고 대나무밭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를 외치고야 마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서로의 페르소나를 벗겨주고 가족 각 개인을 욕망과 감정을 가진 객관적 개인으로 봐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요새 말하는 '쿨'한 가족관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