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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한국문학

[굿바이 동물원 - 강태식] 내게 평범한 삶을 허락해줘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시리즈 2> - 예고했던대로 이번 리뷰에서 다룰 작품은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굿바이 동물원>이다. 

 

 

명절을 맞아 고향집에 갔을 때다. 약주 좋아하시는 아버지와 술상을 사이에 두고 앉게 됐다. 술잔이 몇 순배 돌고 나니 부자지간의 이야기도 차츰 늘어갔고 부자가 공유하는 과거로의 시간여행도 할 수 있었다. 내게 가장 기억이 남던 장면은 집 근처에 있던 아버지 회사(회사 근처에 집을 얻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로 놀러가면 아버지께서 자갈탄 난로에 생라면을 구워주시거나 사내 매점에 가서 빵과 스콜(해태음료에서 나오던 주스 비슷한 음료)을 사주시던 추억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최고의 이벤트는 아버지 월급날에 동네상가에서 짜장면 or 양념통닭을 온가족이 사먹던 기억이다. 비록 셋방살이를 하고 있던 시절이었지만 월급날만큼은 'XX시식코너'에서 중화요리나 'OO양념통닭'에 가서 치킨으로 가족외식을 하던 추억은 마음 속에 아련하게 남아있다. 많은 급여를 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그만두기 전에는 회사를 짤릴 걱정도 없었고, 열심히 일해서 저축만 하면 내 집 마련도 남의 일이 아니던 시절이었다. 비단 우리 집만의 이야기가 아니었고 성실하고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다. 월급날의 외식은 바로 그 평범한 사막길의 한 달, 한 달을 쉬어가는 오아시스였고, 언젠가는 그 끝에 있을 것 같던 화려한 대도시에 할 것을 꿈꾸던 시대였다. 그 때가 80년대 중반에서 말쯤 되는 시절이었다.


 

화려했던 시절은 97년말 당시 강경식 경제부총리(겸 재정경제원 장관)TV에 나타나 "IMF에 긴급자금을 요청하게 됐습니다"라고 발표하던 순간에 마감됐다. (이 때 재정경제원 차관이었던 인물이 이명박 정부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강만수 현 산은금융지주 회장이시다. 이분은 장관 취임 초기, 리먼브라더스 인수를 추진했던만큼 장관으로서의 업적도 뛰어나시다. 잘 아시겠지만 리먼브라더스는 08년 미국 금융위기로 파산했다 -_-) 세상은 순식간에 돌변했다. 정년보장과 연공서열제로 사원가족을 보살피던 회사는 갑자기 망나니마냥 칼을 들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참형을 당한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앉았고 그들은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몇몇 대기업이 무너지긴 했지만, 긴축정책(IMF의 요구였다)이라며 살인적으로 오른 금리는 또 많은 중소기업의 자금줄을 막아 도산으로 몰았다. 금융, 제조, 유통 등등 대한민국의 모든 경제계가 줄초상을 치르고 있었으나 공무원사회와 공기업 만큼은 그 비수를 피했다. 그리고 15년 여가 흘렀다. 그 결과가 독자님들이 보시는대로다. 고용된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고, 대기업 정규직이라고 해도 근속 연수가 12(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이란 회사 기준)에 불과하다. 80년대 회사의 고용안정성을 바탕으로 유지되던 복지(자녀 학자금 지원, 직장의료보험 등)는 노동유연화에 따른 실업과 동시에 상실된다. 그래서 청년들은 공기업 입사와 공무원 시험, 교직 시험에 몰려들었다. 9급 공무원 시험 1,379명 출원에 129,330명이 몰려 93.81의 경쟁률을 기록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들이 노리는 건 오직 하나, 짤리지 않는 철밥통의 '안정성'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삶의 정석으로 여겨지던 방식인 대학졸업 --> 취업 --> 결혼은 이제 더 이상 평범한 삶이 아니다. 살인적인 대학등록금 수준이 대학졸업을 방해하는 가운데 전체고용의 5%에 불과하는 대기업 직원이 되기 위해서는 또다시 살인적인 경쟁률을 통과해야 한다. 그래야 결혼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게 평범한 삶인가? 뭔가 특권이 되버린 졸업, 취업, 결혼 등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 피말리는 경쟁에서 탈락하고 스스로가 평범하지도 못한 사람이라고 좌절하고 있다. 5%가 평범하고 95%가 평범하지 못한 사회는 '평범'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잘못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 일련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 강태규의 <굿바이 동물원>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람답게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밥벌이를 위해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그래도 인간으로 남으려 발버둥치는 소시민들의 삶이 따뜻하면서도 눈물겹게 펼쳐진다.

 

 

 

 

 

<굿바이 동물원>은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매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나 장강명의 <표백> 등 좋은 작가와 작품이 많이 발굴됐다. 이번 <굿바이 동물원>의 강태식 작가는 서유미 작가의 남편이라고 하니 부창부수라 하겠다) 매번 재밌게 읽었고, <굿바이 동물원> 역시 울다 웃다 정신놓고 재밌게 읽었다. <굿바이 동물원>은 회사에서 짤린 주인공 김영수가 마늘까기 부업을 시작하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그러다 부업브로커인 돼지엄마의 권유로 세렝게티 동물원에 마운틴고릴라로 취직(?)하게 된다. 김영수는 동물원에서 세 명의 동료 고릴라를 만나게 된다. 무공을 연마하며 10019급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다 실패한 앤, 대기업 오물처리반에서 일하다 토사구팽당한 조풍년, 사상과 혁명보다 월세와 공과금에 짓눌려 동물원에 온 남파 간첩 만딩고가 그들이다. 처음엔 김영수에게 까칠하게 배타적이던 고릴라들이지만 차츰 서로의 사연을 알아가게 되고 그러면서 가족 이상으로 의지하게 된다. 상처받고 생채기난 우리가 살얼음을 걷는 듯한 한국에서의 사회생활 중에 진정으로 원하고 무엇보다 먼저 필요로 하는 것은 인간의 회복(정당 브레이커로 욕먹는 한 전직 장관이 전역할 때 내무반에 '인간회복'이라는 말을 걸어놓고 나왔다는 사연이 떠오른다)과 위로가 아니었을까.

 

"거 좀 지나갑시다."

 

아시아 일대에서 서식하는 판다에게 길을 비켜주고 다시 거울 앞에 섰다. 거기에는 여전히 막막하고 지친 표정의 마운틴고릴라 한 마리가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놀란 눈을 뜨고 서 있었다. 눈사태처럼 와르르, 그때 내 속에 있던 무언가가 무너져내렸다. 처음엔 그게 뭔지 몰랐다. 고릴라가 타준 다방 커피를 마시면서 알게 되었다. 난 아직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워, 위로받고 싶어. 그때 와르르 무너져내린 건 살면서 한 번도 돌본 적 없는 내 영혼이었다. 나는 다방 커피를 마시면서 내 영혼을 위로했다. 그동안 소홀하게 대해서 미안해, 이런 나를 용서해주겠니? (108p.)

 

하지만 상처받고 피흘리는 자신의 영혼을 진정 위로받을 곳은 없다. 외환위기 당시 회사에서 짤리고도 한 동안 아내에게 말하지 못한 채, 공원으로 출근했다는 아저씨들의 사연이 그렇다. 어디가서 맘 편히 울지도 못한다. 쓰디쓴 소주로 쓴울음을 속으로 삼켜보지만 메마른 자신의 영혼을 돌보기엔 서투른 우리네 아버지의 자화상이다. 그렇다고 엄마들이 속편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은행 직원이 이 통장은 절대 깨지 말랬어. 이렇게 이자가 높은 상품은 이제 안 나온대."

 

마지막 통장의 이름은 '행복한 인생 통장'이었다. 그러니까 아내는 '행복한 인생 통장'을 지키기 위해 마늘을 까고 있었던 거다. 고릴라로 일하는 무능력한 남편 때문에, 생활비 하고 공과금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월급 때문에, 적금이라도 하나 부으려면 어쩔 수 없이 부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현실 때문에, 그리고 '행복한 인생 통장' 때문에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마늘을 까고 있었다. 뭐가 '행복한 인생 통장'이냐?

 

"마늘이 맵네."

 

아내는 거짓말을 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나는 안다. 매운 건 마늘이 아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도 마늘 때문이 아니다. 사는 게 맵다. 매우니까 눈물이 난다. 한때는 나도 마늘을 까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그래서 안다. 마늘보다 사는 게 백배쯤 맵다는 걸. 그리고 마늘을 깐다는 게 사람을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게 만드는지도. (158~159pp.)

 

그렇게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산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리고 나도. 사는 게 너무 매워서. 평범하게 살기가 이렇게 힘들 줄 알았다면, 인생이 이렇게 매운 걸 알았다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었을까.

 

'동물원'은 작가 강태식이 은유와 풍자로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이다. 그곳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산다. 마운틴고릴라, 갈라파고스거북, 히말라야불곰, 벵갈호랑이 등등. 그들은 사람이지만 근무시간에만큼은 동물이다. 진짜 동물보다 관람객을 더 만족시키는 진짜같은 동물들이다. 동물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사람이지만 이들은 '진짜 사람'을 꿈꾼다. 사람같은 대우를 받고 살 수 있는 평범한 삶. 작가의 메세지는 역설적이게도 인간과는 격리된, 반야생의 공간인 동물원에서 꽃피워진다. 정글짐 같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오르다 떨어져 허리를 다친 조풍달 씨를 위해 나머지 세 마리의 고릴라가 파란 버튼을 누르고 내려온 장면에서 진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더러운 호수물에서 한 송이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 오르는 장면을 본 것과 같은 감동이었다.

 

그리고 동물원에 있으면 사람답게 살 수 있어. 사람이 아니니까 사람 구실 같은 건 안 해도 돼. 솔직히 이 나라에서 사람 구실 하면서 사람답게 사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냐고. 난 거의 없다고 봐. 하지만 동물원은 달라. 사람 구실은 못하지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이 동물원이야. 웃기지? 내가 그랬잖아. 사는 게 코미디라고. , 한잔해. 어때? 여기 죽여주지? (214p.)

 

작가의 풍자와 은유의 해학은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너무 무거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입꼬리가 올라가게 만드는 <굿바이 동물원>'웃프다'. 너무나 사실적이이서 슬프지만 웃을 수밖에 없는 작가의 풍자에 얼굴은 웃고 있고 마음 속은 아픔으로 깊게 울리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절묘한 풍자는 남파 간첩 출신의 만딩고가 "3!'을 외치며 자신을 콩고로 보내줄 것을 요구하던 장면이었다. 그 다음으로 이어진 최인훈 <광장>의 패러디는 작가의 기발한 시도였다. 이 장면을 읽으며 홀로 한참을 깔깔댔다. 하지만 <굿바이 동물원><개그콘서트>가 아닌 이상, 한 번 웃고 지나가기에는 그 안에 너무도 정확하고 사실적인 현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주인공 영수의 말은 우리가 괴로워하는 현실의 맨살을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사람이면 어떻고 고릴라면 어떤가. 사람이라고 해서 꼭 행복한 건 아니다. 고릴라가 불행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인권? 존엄성?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그런게 없다. 다 옛말이다. 있는 놈과 없는 놈이 있을 뿐이다. 빈부의 차가 개인의 가치를 판가름하고 결정짓는다. 상대적 빈곤감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돈 몇 푼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인본주의 대신 물본주의가 물 만난 고기처럼 판을 치고, 황금보기를 돌같이 해야 하는데 사람 보기를 돌같이 하고, 그래서 목숨보다 돈이 중요하고, 그래서 툭하면 약을 먹거나 밀폐된 자동차 안에서 연탄을 피우거나 건전하지 못한 목적으로 한강에 가고, 아무리 자본주의라지만 정부는 그런 국민을 나 몰라라 방치하고,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게 일한 만큼 버는 건데 이 나라를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고, 민주주의라는 것도 그렇고,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씨발, 욕부터 나오고, 있는 놈들은 있는 놈들끼리만 노는데, 결혼도 있는 놈들끼리만 하는데, 민주주의는 개뿔,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니 지랄, 전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들리고, 그래도 먹고살기 위해 계속 몸부림쳐야 하고, 쥐구멍에 해 뜰 날은 영원히 오지 않고, 내일의 태양 같은 건 절대 뜨지 않고, 그런 세상인데..... 어쩌면 고릴라가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84p.)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 안정이란 찾아보기 어려운 위험천만의 사회에서 우리의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어디에서 위로받을 수 있을까. 작가는 결국 '사람'으로 돌아간다. 주인공 역시 아내를 통해 구원받는다. 끝내 동사무소 공무원이 된 앤과 돼지고기집 마스코트로 변신한 조풍달과 함께 콩고에 간 만딩고를 그리워하는 주인공의 모습 역시 그렇다. 이 불안한 시대를 함께 견뎌온 사람을 찾고 그리워하는 것은 '사람'만큼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되는 존재가 없음을 말해준다. 사람에 의해 배신 당하고 사람에 의해 상처받지만 결국은 다시 사람에게서 위로받고 치유받아야만 하는 우리의 운명은 흡사 바위를 굴려올리는 시지프스의 그것과 닮았다.

 

원래 스포는 하지 않는다는 리뷰원칙을 가지고 있으나 이번 리뷰는 예외적으로 많은 인용과 스포를 하고 말았다. 나의 몇 마디 말보다는 <굿바이 동물원>의 몇 구절이 더 감동을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정도쯤 시식을 시켜드리면 한 권 정도 사서 읽으시리라는 기대를 쬐끔... 하기는 한다 - 한국인의 한 달 평균 독서량 0.8, 미국 6.6, 일본 6.1, 프랑스 5.9, 중국 2.6)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그조차도 허락되지 않은 사회를 살고 있다는 사실은 슬픈 현실이다. 이런 시절일수록 문학이 필요하다. 문학을 통해 우리가 바라는 평범한 삶의 청사진을 그리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학이 위력을 발휘하려면 그에 걸맞는 많은 독자들이 필요하다. 가을은 깊어가고 단풍놀이도 가야하지만, 가을은 원래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 않던가. <굿바이 동물원>이 독자 여러분을 울고 웃겨 마침내 감동을 줄 준비를 마치고 서점에서 기다리고 있다. 부디 문학으로의 여행을 위해 발급된 티켓을 거절하지 않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