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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정치

[박래군 김미화의 대선 독해 매뉴얼 - 박래군, 김미화] 2012 대선, 이제 인권으로 공부하고 선택합시다



어느 날 오후였다. 종로의 한 빌딩에 짐을 잔뜩 실은 카트를 끌고 1층 로비에 들어갔다. 10층이 넘는 건물이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4개였는데 그 중 하나는 '화물용 엘리베이터'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카트에 짐이 많았기 때문에 화물용 엘리베이터로 가서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 이게 웬 걸? 그 안에는 사람이 가득 차 있었다. 40~50대로 보이는 중년 여성들이 감색(곤색이라고 많이들 말하는...) 티셔츠 유니폼을 입고서 엘리베이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다음에 타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그 좁은 곳에서도 자리를 만들어 주셔서 어렵게 엘리베이터에 탈 수 있었다. 평소에 넉살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듣던 나는 은근 친한 척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아유~ 화물용 엘리베이턴데 이렇게 모여서 타실 필요가 있으세요? 옆에 (엘리베이터가) 세 개나 더 있는데."

 

그러자 꽉 막혔던 하수구가 뻥 뚫리듯 그들의 '한 마디'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자조적으로) "우리는 사람도 아니여... 짐이여..."

(나름 논리적으로) "비정규직이라서 그런다니까! 정규직이 아니라서 그래~"

(슬픈 목소리로) "우리가 저거 타면 경비가 와서 막 뭐라고 한다니까?"

(약간의 분노에 차) "조선시대에 양반, 상놈 따지는게 따로 없어. 그 때랑 똑같어."

(포기한 목소리로) "어차피 지하로 가는 건 이 엘리베이터 밖에 없어..."


 

각 층마다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아줌마들은 그 한 마디씩을 남기고 한 명, 혹은 두 명씩 자신이 맡은 층을 향해 내렸다. 그들의 뒷모습은 다시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분노와 연민, 안타까움이 뒤섞인 미묘한 감정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아줌마들조차 입에 담고 살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를 양산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보다 더욱 마음 아픈 현실은 사람을 짐짝 취급할 정도로 낙후된 우리의 인권의식 수준이었다. 눈썰미 있는 독자는 이미 다 눈치챘겠지만, 사진의 '화물용 엘리베이터'란 안내 아래에는 당연하다는 듯(?) '장애인용'이란 표지가 떡하니 붙어있었다. 깔끔한 옷을 차려입고 펜대 굴리는 화이트 칼라만이 이용할 수 있는 '일반인용' 엘리베이터에 비정규직 노동자 아줌마나 장애인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불가촉천민이란 선언 아니었겠는가. 인권을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만 하고 누릴 수 있는 보편적인 권리'로 해석해 봤을 때, 이는 명백히 인권을 무시한 행위였다. 그럼에도 빌딩 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했다. 1955121, 백인석과 흑인석이 나뉘어진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버스기사의 요구에 "싫다!"고 맞서다가 경찰에 체포되고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 받은 로자 파크스, 그 사건 이후로 대대적으로 흑인민권운동이 벌어져 마침내 민권법이 제정되기 전의 미국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근래에 <욕망해도 괜찮아>를 펴낸 김두식 교수의 '...해도 괜찮아' 시리즈 1탄은 <불편해도 괜찮아>였다. 부제인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처럼 영화를 통해 청소년 인권, 성소수자 인권, 여성차별, 양심적 병역거부 등의 인권문제를 다루고 있다. 인권에 대해 나름 신경쓰고 산다는 나도 책을 읽으며 뜨끔뜨끔 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김두식 교수 책들은 그 솔직하고도 진실한 고백으로 인해 스스로도 뜨끔하다면서 책을 읽는 독자도 뜨끔하게 만드는... 그런 힘이 있다) 인권을 생각하고 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이 팽배한 한국사회에서는 피곤한 삶을 의미한다. 때론 많이 불편하기도 하다. (나 역시 명절 집안 모임에서 성소수자 옹호 발언을 했다가 어르신들에게 폭격을 맞은 경험이... 그래도 굴하지 않지만 여전히 '게이 편든다'는 공격을 당하고 있다 -_-) 인권에 둔감한 '우리사회에서 불편해도 괜찮을 이유'는 어렵게 설명하기 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쉬울 듯하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12)

 

라는 구절처럼 인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생활 속에서 소수자라는 이유, 다수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 등 온갖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이유로 차별받고 피해보는 사람들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대접하는데서 시작한다.

 

인권단체로 유명한 국제Amnesty(국제사면위원회) 국제집행위원인 고은태 교수가 트위터에 "인권을 내세운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밖에 없었다"고 아쉬움을 털어놨듯이 우리의 정치지도자 중에서 인권을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한 정치인은 없어 보인다.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권리인 인권보다는 먹고사는 경제가 중요했고, 북괴의 침략을 대비한 안보가 생명이었던 해방 후 한국 현대사의 질곡이 우리 사회에 남긴 상흔이다. 그랬던 우리는 21세기에 와서도 서울 한복판 용산에서 멀쩡한 시민들이 공권력에 의해 테러리스트로 몰려 불에 타 숨지는 참사를 지켜보고도 충격은 커녕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등장과 함께 지난 5년간 후퇴에 후퇴를 거듭해온 인권의 입지는 이제 막다른 벼랑에 몰려있다. 이제 2012년 대선의 선택으로 새로운 2013년 체제를 말하기에 앞서 다시 인권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각 후보를 인권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으면 벼랑 앞에 선 우리사회의 인권은 장준하 선생처럼 '의문의 추락사'를 하여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릴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선 독해 매뉴얼

저자
박래군, 김미화 지음
출판사
| 2012-09-03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2012년 대선의 핵심을 꿰뚫는 단 한 권의 매뉴얼 12인의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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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 김미화의 대선 독해 매뉴얼>(이하 대선 독해 매뉴얼)은 이런 시대적 요구에 의해 기획되어 출판됐다. '전문가 12인과 함께하는 대통령 디자인 프로젝트'라는 부제처럼 경제와 복지, 소수자, 자유권, 통일/평화의 5개 분야와 마지막 대선후보 인물분석에 각 2명씩의 전문가가 박래군 김미화의 사회로 열띤 토론을 벌인다. 어찌보면 큰 관련성이 없는 경제와 복지, 소수자 등의 낱줄을 하나로 이어주는 씨줄은 바로 '인권'이다. 인권을 통해 각 분야에서 우리의 대통령이 어떤 비전과 정책을 시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정리된 책이 바로 <대선 독해 매뉴얼>이다.

 

경제분야에 은수미(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홍기빈(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복지분야에 이창곤(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홍세화(진보신당 재창당추진위 대표)

소수자분야에 김현미(연세대 문화인류학 교수), 박김영희(자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

자유권분야에 장여경(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조국(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통일평화분야에 이제훈(한겨레21 편집장), 이종석(전 통일부장관)

인물분석분야에 서화숙(한국일보 선임기자), 정대화(상지대 교양학부 교수)

 

등이 모여 토론을 벌였고 그 내용을 엮었으니 가히 대선 참고서의 어벤져스라고 할 법하다.

 

역시 스포를 하지 않는 나의 리뷰 원칙에 따라 디테일을 거론하지는 않는다. 경제학적 편익으로만 따져도 대선의 한 표가 이 책 한 권 사서 보고 들어가는 것보다 엄청 비싸지 않겠는가. 한 권씩 사서 읽어보고 들어가시라. 술 한 잔보다 싸다. (이 책의 수익금 일부는 인권재단 사람의 후원금으로 쓰인다니 인권을 위해 좋은 일 하는 기회기도 하다)

 

간략히만 소개를 하자면 경제분야에서는 이번 대선의 가장 핫한 이슈인 경제민주화와 청년실업, FTA문제를 논의한다. 단지 이명박 정부를 성토하기 보다는 이전 정부들의 실책과 그 교훈을 찾아내고, 현 정부의 무능을 극복해서 먹고사는 사회권적 인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일자리 분야 이야기는 귀담아 들을만 했다.

 

복지분야에서는 현재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불안'을 키워드로 의료와 보육, 주거 등의 문제를 논한다. 역시 경제분야와 비슷하게 전개되는데 이창곤 소장의 전문성이 돋보인다. 그는 각 대선후보의 복지공약에서 '증세, 공공성, 인권'이라는 세 가지 기준으로 판단해 보라고 조언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총선 이후 홍세화 선생의 이야기를 처음 듣는 자리였는데... 기운이 많이 빠져 보이셔서 안타까웠다)

 

소수자분야에서는 여성문제, 장애인, 성소수자 등 관련 문제를 말한다. 특히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인 박근혜 후보가 유력한 대선 후보인만큼 눈여겨 볼 만하다. 결혼이주여성 문제나 장애인들의 소외문제, 이제 음지에서 양지로 드러나기 시작한 성적 소수자들의 문제는 이제 우리의 현실에서 맞딱드리는 문제기 때문에 인권의 차원에서 각 후보들에게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데 관심 갖는 것이 선진국이지 국민소득 2만불이 선진국은 아니다...고 주장한다)

 

자유권분야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민간인 사찰 등을 중심으로 시민의 자유권을 논한다. 이명박 정부들어 급격하게 후퇴한 분야(가 어디 한 둘이겠느냐만은...)가 특히 자유권이다. 아예 대놓고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다가 사찰팀을 만들어놓고 상시적으로 사찰을 했음에도 이번처럼 조용히 지나간다면 다음 정부에서도 우리는 빅브라더의 눈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보안법 역시 시민 각 개인의 사상과 행동을 심각하게 제약한 사례로 그 폐지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은다. 마지막으로 인권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자유권 확보를 위해 차기 대통령이 이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통일평화분야에서는 한반도에서의 통일과 평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벌어진 인권침해 사례(평택 대추리, 제주 강정마을 등)을 통해 인권을 지키는 통일평화를 모색한다. 역시 북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미군기지 이전 논란과 천안함 사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등을 평가하며 평화 역시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자 목적임을 강조한다. 특히 인상깊었던 부분은 한 때 논란이 됐던 탈북자 국내 송환 문제였다. 이종석 전 장관은 '북한 내 인민들의 인권, 탈북해 제3국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인권, 국내로 들어와 정착한 탈북자의 인권'으로 구분해 각각의 사람들의 인권을 지킬 방도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대한 고민과 공약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인물분석에서는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등 민주당 경선후보, 안철수 원장 등 대권을 향한 도전에 나선 사람들을 논한고 평한다. 역시 화두는 인권을 통해 바라본 대선후보들의 인권정책 실현 가능성에 맞춰져 있는데 결론은 내가 생각했던 바와 거의 비슷했다. 어떠한 인권정책을 내놓더라도 결국에 가서 그를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사람의 과거 행적과 사고의 연장선상에서 판단해 보아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힐링캠프에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안철수 원장이 나온 다음 각각을 시청하고 내가 트위터에 내린 결론과 비슷했다...고 깔때기를 대는 중이다)

 

스포를 안하겠다고 해놓고 엄청 해버린 느낌이다. (-_-;) 하지만 디테일한 내용과 고민거리들은 절반도 못 추스렀다. 여기에서 크게 짚어서 언급한 주제와 내용들은 굳이 <대선 독해 매뉴얼>이 아니라도 이미 기성언론에서 많이 다룬 것들이다. 책을 사서 읽지 못할 독자들이라도 이 문제만큼은 꼭 한 번쯤은 고민해보고 투표장으로 갔으면 하는 마음에 몇 자 적었으니 박래군 김미화 외 저자들과 출판사측에서도 이해하리라 믿는다.

 

(사진: SBS <짝>의 한 장면)

 

대선은 어떻게 보면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선택이다. 사람을 선택한다는 것은 몹시 어렵고 위험부담도 크다. 하다못해 한 개인이 연인을 선택할 때를 생각해보자. 그 사람의 과거도 구글링으로 좀 들춰보고(안 그런 사람도 있겠다만...) 성격이나 집안, 형제관계(호구조사는 소개팅에서 연례행사 아닌가?) 등을 꼼꼼하게 따져보지 않는가.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찾아보는 것은 그만큼 미래의 그 사람을 예견하기 어렵고 또 그만한 자료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야 우리는 어렵게 미래를 함께할 연인을 선택한다. 그게 귀찮고 힘들다면 독신으로 혹은 솔로로 지내면 되지만, 대통령은 그럴 수가 없다. 내가 싫어도, 내가 선택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당선이 되고 대통령직에 취임해서 내 생활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다. 내 인권에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선택이라면 이제 연인을 고르듯 따져보자. 남녀 간에 간볼 때처럼 연구하고 공부하고 떡밥 좀 던져서 테스트도 해보고. 연인을 고른다면 외모(-_-;), 재산(-_-;), 학벌(-_-;) 등 나름들의 기준이 있겠다만 대통령을 고른다니 뭘 기준으로 해야할지를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대선 독해 매뉴얼>을 참고해라. 이 책에 그 선택의 기준이 나름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12월에 꼼꼼하게 고르고 고른 사람에게 투표해라. 당신의 생각과 요구를 100% 맞춰줄 거라는 헛된 기대(이보시게... 연인을 만나도 콩깍지 벗겨지면 100% 완벽했던 당신의 허니가 어느 순간에.... .... 그래도 한 60~70% 맞으면 계속 만나는 거다. 사람 관계가 다 그런 한계가 있지 않은가)보다는 당신의 생각과 가치에 가장 근접한 후보를 고르는 거다. 그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을 앞둔 당신의 몫이다. 그럼, 건투를 빈다!

 

P.S) 시간 되시면 한 번 보고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