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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정치

[기록 - 윤태영] 윤태영이 기록한 노무현 실록

 

 


기록

저자
윤태영 지음
출판사
책담 | 2014-04-23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노무현 대통령의 마음까지 기록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윤태영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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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노激怒, 역린逆鱗, 하사下賜 등. 언론에서 대통령의 감정이나 행위를 표현하는데 많이 쓰이는 단어다. 왕조시대에나 쓰이던 말이 버젓이 공화국의 대통령에게도 쓰인다. 헌법은 대통령을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으로 규정하지만 우리의 인식과 문화는 대통령을 마치 과거 봉건시대의 절대군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통에 대통령이 가지는 권위 역시 과거의 전제군주가 가진 그것과 많이 닮아있다. 일반시민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렵고,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무거운 권위를 지닌 그런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대통령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무래도 '대통령님'보다는 '각하閣廈'라는 호칭이 더 자연스러운 박정희 대통령 각하나 전두환 대통령 각하 시절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연합뉴스)

 

역대 대통령 가운데 대한민국의 정치사회적 풍토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이단아였다.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스스로 내려놓았다. 주위에 자신을 각하보다는 대통령님으로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국세청이나 검찰 같은 권력기관을 통제할 권력을 가졌음에도 그런 행위를 하지 않았다. 탈권위와 수평적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그리고 퇴임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농부와 작가의 삶을 꿈꾸는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갔다. 시골마을 점빵에서 담배를 태우는 동네아저씨같은 전직 대통령을 만나러 전국의 수많은 시민들이 몰렸던 것은 바로 그가 그토록 추구했던 탈권위와 수평적 민주화의 상징과 같은 현상이었다. 아직도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이가 많은 감성적인 뿌리 역시 여기에 자리하고 있다.

 

2003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노무현의 지근거리에서 그를 보좌하며 관찰했던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낸 <기록>은 대통령 노무현과 인간 노무현에 대한 '기록'이다. 연산군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기록) 뿐이다"고 말했다는데, 역사의식이 투철했던 노무현 대통령 역시 '기록이 아닌 것은 역사가 아니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참여정부는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다. (NLL포기발언논쟁-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은 거짓으로 밝혀졌고 윤상현 의원은 발언을 번복하기도...-에서 문제가 된 이지원시스템도 기록을 남기기위한 방편이었다) 저자 윤태영은 노무현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며 남긴 메모, 기록 등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이번 <기록>이라는 책으로 정리돼 출간된 것이다.

 

<기록>은 총3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에 대한 기록으로 그의 화법이나 성품, 식성, 기호에 이르기까지 자연인으로서의 노무현에 대한 기록이다.

 

8시 40분에 회의가 시작되었고 대통령과 참모들은 준비된 동영상을 시청했다. "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KBS<추적 60분>이었다. 공공임대 아파트에서 부도가 발생해 많은 서민 피해자들이 거리로 쫓겨나고 있는 상황을 심층 취재한 것이었다. 그는 참모들에게 공공임대주택 정책의 부작용을 보완할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나는 모든 기사와 보도들이 아프다"

 

재임 시절, 대통령 노무현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자신과 참여정부에 대한 언론의 날선 비판도 물론 아팠지만, 정책의 문제점이나 사각지대를 지적하는 보도를 접할 때도 마음이 아프다는 뜻이었다.

 

- 윤태영, <기록>, 책담, 2014

 

(사진: 본문 중에서)

 

2001년 말 아니면 2002년 초, 여의도 금강빌딩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을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외부 일정을 마친 노무현 상임 고문은 사무실 인근의 음식점에서 몇몇 참모들과 간단히 요기를 했다. 식사를 마친 노 고문 일행은 걸어서 사무실로 이동했다. 청문회 시절만큼 인기를 없었지만, 여의도 바닥에서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드문 편이었다. 민주당 후보 경선 탓에 인지도가 다시 높아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차가 다니는 대로에서 금강빌딩이 위치한 비교적 넓은 골목으로 일행이 들어설 무렵, 오토바이 한 대가 노 고문 앞으로 다가오더니 갑자기 멈춰 섰다. 헬멧을 쓴 운전자가 그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동행한 참모들은 여의도에서 길을 걷다 보면 종종 만나는 적극적 지지자 가운데 한 사람일 것으로 생각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여의도 지리를 묻는 퀵서비스 기사였다. 기사는 자신이 길을 묻고 있는 상대방이 정치인 노무현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생업에 바빠 정치와 정치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때마침 기사가 찾고 있는 목적지를 노무현 고문이 알고 있었다. 자상한 길 안내가 시작되었다. 손가락으로 이곳저곳을 가리키면서 여의도 서편의 지리를 한참 동안 계속 설명했다. 기사가 마침내 고개를 끄떡였다. 동행하던 참모 서너 명은 꼼짝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 윤태영, <기록>, 책담, 2014

 

제2부는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부터 당선, 취임, 재임 그리고 퇴임에 이르는 대통령 노무현에 관한 기록들이다. 윤태영은 대통령의 특별한 배려로 대통령의 모든 자리에 배석해서 그가 한 말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독대를 권위주의시절의 잔재라 하여 싫어했다고 한다) 대통령 노무현이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국가를 운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들이 많다.

 

(2003년 가을 청와대 영빈관에 진영읍 주민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주민들이 걱정하는 소리를 전했다. "살이 빠졌다"는 말도 있었고, "왜 대통령이 그리 힘이 없냐"는 물음도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법과 원칙'을 이야기했다.

 

"권력은 철저하게 투명하게 규제받아야 합니다. 법과 원칙대로 해야 합니다. 이 고비를 넘기는 것이 어렵지만 잘 넘기면 성공할 것입니다. 힘이 빠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것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약점 잡혀서 낭패 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 윤태영, <기록>, 책담, 2014

 

똑같은 '법과 원칙'의 강조지만 어째 지금 정권의 '법과 원칙'과는 다른 느낌이다.

 

인도에서는 정상회담 등 각종 행사에서도 북핵 문제보다는 경제 교류에 주안점을 두었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인도의 외교장관을 접견하는 자리가 있었다. 접견이 시작되기 전에 취재진들을 위한 포토 세션이 있었다. 인도 외교장관이 이를 두고 '포토 폴리틱스Photo Politics라며 웃자, 그가 가벼운 유머로 화답했다.

 

"아, 한국에도 있습니다. 그게 인도에서 수입된 것인지 몰랐습니다. 지적재산권을 인정해서 보호해 드려야겠습니다."

 

- 윤태영, <기록>, 책담, 2014

 

대통령 재직 시절에도 여전했던 특유의 유머도 곳곳에 배여있다. 

 

제3부는 퇴임 이후에서 서거에 이르는 짧은 기간에 대한 기록이다. 비극으로 끝난 노무현의 마지막 때문에 우울하고 무겁다. 장 곳곳에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고 썼던 그의 심경이 잘 드러나있다. 2009년 초의 이야기다.

 

"그래도 이름값으로 어떻게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해 보고 싶어서 억지를 부렸는데, 이젠 한계에 온 것 같네요. 자책골을 넣은 선수는 쉬는 것이 도리일 것이고, 또 열심히 뛴다고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젠 제가 이 일을 책임감을 가지고 끌고 갈 수는 없을 것이고요."

 

그는 '한계'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책골'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다. 힘겨운 상황일수록 더욱 힘을 내는 인간형이었던 그가 이제 더 이상 '도움'이 될 수 없음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가 무너지고 있었다. 정치인 노무현이 퇴로 없는 막다른 길에 몰리고 있었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 윤태영, <기록>, 책담, 2014

 

노 전 대통령의 유서가 떠오르는 듯한 대목이 있기도 하다.

 

언제 정리를 해 놓은 것인지, 그는 맞은 편 스크린에 자신이 정리한 회고록의 뼈대를 띄워 놓았다. 회고록의 큰 틀과 그 속에 담아야 할 주요 내용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가 부연 설명을 했다.

 

"해답을 다 쓰는 게 아니고 생각할 소재나 문제를 던지는 수준이다. 우리들의 생각을 이렇게 정리해 놓고 이 문제들에 대해 하나씩 정리해 보자는 생각이다."

내가 일단의 느낌을 이야기했다.

"감성과 이론이 중간중간에 뒤섞여 있습니다. 어떤 부분은 딱딱한 이야기인 데 반해 살아오신 이야기는 감성적입니다. 그 흐름이 헷갈릴 수도 있을 듯합니다."

잠깐 생각에 잠겼던 대통령이 짧게 대답했다.

 

"사람은 원래 살과 뼈로 이루어진 것 아니었던가?"

 

- 윤태영, <기록>, 책담, 2014

 

<기록>이 가진 힘은 단순한 찬양도 아니고, 비판도 아닌 '기록'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관이었던 저자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갖추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이 그렇듯, 발언과 행동을 바탕으로 남긴 메모와 기록만큼 그 사람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사료는 없을 것이다. 단순한 추모의 글이나 사진, 영상이 재현할 수 없는 입체적인 인물 노무현이 <기록>을 통해 재현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고 나서도 야권은 친노, 비노, 반노 같은 프레임에 걸려 허우적대고 있다. 참여정부의 유산과 부채를 두고도, 유산을 취하고 부채는 상속하지 않으려는 기회주의적 정치인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시민들과 시민사회 역시 상호 간에 불신이 깊어지고 갈등이 깊어졌다. 노 전 대통령이 살아계셨다면 어땠을까 할 정도로 그의 유산과 부채를 둔 해석과 계승은 갈 길을 모르고 방황 중이다. 우리 국민에게 남겨진 몫이 있다면 바로 그 지점에 있을텐데 말이다. 그래서 마지막은 노 전 대통령이 시민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로 마무리하려 한다. 포스트 노무현 시대를 살아가야할 우리 시민들이 기억해야 할 충고다.

 

그는 '사람 사는 세상' 회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노무현 갖고만 되는 게 아니다. 수준 높은 토론이 있어야 하고, 정책의 방향이 나와야 하고, 시민적 사고가 있어서 큰 정책을 묶어낼 수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합종연횡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이라는 게 막연한 시민이 아니고 자신의 이해관계뿐 아니라 남의 이해관계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 윤태영, <기록>, 책담, 2014

 

 

 *평소와 다르게 인용이 무척 많았다. '기록'의 특성상 결을 살려 이야기 하려다 보니 부득이하게 인용이 길어졌다. 저자와 노무현 재단, 책담의 넓은 양해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