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끄적끄적/자기계발ㆍ실용

[아파트에서 살아남기 - 김효한] 우리집 관리비가 줄줄 새고 있다고?

아파트에서 살아남기
국내도서
저자 : 김효한
출판 : 퍼플카우 2013.10.22
상세보기


한국인들에게 아파트는 가장 보편적이고 친근한 주거형태입니다.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 2014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49.6%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인구가 몰린 수도권은 50.8%, 광역시는 55.4%에 이르지요. 그만큼 많은 이들이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이글을 읽는 분들 중에 상당수도 그러하실 것이라 봅니다.


아파트는 아마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구매하는 여러가지 재화 중 가장 비싸지 않을까 싶습니다. 억소리 나는 가격때문에 20년쯤은 일해서 갚아야 하는, 필수적이면서 값비싼 재화입니다. 이런 비싼 물건을 사는 우리는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합니다. 하다못해 두부 한 모를 사도 동네 어느 마트가 10원이라도 더 싼가를 고려하는 시대니까요. 그런데 두부 한 모를 구매할 때의 합리성이 수 억배는 더 비싼 아파트 구매에서는 실종됩니다. 신중함보다는 남이 말해준 솔깃한 '투자정보'나 호재 같은 사탕발림에 현혹되고 마는 것이지요.


비싼 아파트를 구매하고 그 아파트에서 살면서도 우리는 아파트에 대해서 너무나 모르고 삽니다. 처음 구매할 때부터 그렇습니다. 시행사와 시공사를 정확히 구분하고 그들의 역할과 책임을 구분하실 수 있으신지요? 그런 분야에서 직접 근무하거나 인척 중에 관련 있는 사람이 있지 않고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일 것입니다. 살면서는 또 어떤가요? 매달 15~20만원씩 나오는 관리비 내역을 제대로 살펴보거나, 게시판에 붙어있는 입주자대표회의(이하 입대의) 회의결과보고를 검토해 보신 일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무관심 속에 시행사와 시공사, 관리사무소와 입주자대표회의는 소중한 여러분을 돈을 야금야금 긁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파트에서 살아남기』는 이런 비리의 커넥션에 관심을 갖고, 그들에 맞서 싸운 신축 아파트 입주자의 생생한 경험담입니다. 평범한 증권사 직원이었던 저자는 분양받은 아파트 시공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생긴 중도금 문제를 계기로 건설계의 오랜 비리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는 법률과 상식을 무시하는 건설사와 시행사, 그들이 장악한 관리사무소 및 입대의를 상대로 외롭고 힘겨운 싸움을 시작하게 됐고, 그 기록이 『아파트에서 살아남기』으로 출간돼 나온 것입니다.


아파트는 여러 세대가 모여사는 공동주택입니다. 그러다보니 공동의 이익이라는 것도 있지만, 각 세대 간의 이익이 상이하거나 의견이 상충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저자가 건설사를 상대로 싸우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입주예정자들 간의 의견충돌로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지요. 게다가 입주예정자들의 단합을 방해하려는 방해꾼, 즉 건설사나 시행사가 파견 혹은 포섭한 것으로 여겨지는 X맨이 끼어들면 사태는 더욱 꼬여만 가게 됩니다. 단결하지 못한 채 갈등하고 분열하는 입주예정자들을 제압하는 것은 정예군사로 오합지졸을 제압하는 것보다 쉽다는 것이 저자의 말입니다. X맨의 존재도 분명 위협적이지만, 무엇보다도 '나만 잘살면 돼'라는 근시안적 이기심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합니다.


그 기나긴 싸움의 과정에서 나는 인간이 가진 모든 면을 본 듯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공동체를 위해서 불이익을 감수하는 희생을 보았는가 하면, 나만 살겠다고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내 조그마한 이익이라도 더 챙기면 그만이라는 이기심의 끝도 보았다. 의리를 지키면서 서로를 격려하는 강한 의지와 단결의 힘을 보기도 했지만 논리적으로는 말도 안되지만 감정을 자극하는 선동과 이간질에 쉽게 넘어가는 의지의 나약함도 보았다.


- 김효한, 『아파트에서 살아남기』, 퍼플카우, 2013, 119p.


마치 영화 「부산행」에서 살아남은 15호차 사람들을 보는 듯 합니다. 그들은 어렵사리 12호차에서 좀비들을 뚫고 나온 사람들을 자신들의 칸에 들이지 않기 위해 문을 걸어잠그지요. 간신히 들어온 생존자들에게 연결칸으로 나가라며 손가락질하고 욕을 합니다. 자신들만 살겠다고 말입니다. 결국 전부 다 좀비들에게 당하고 말지만 말입니다. 거대 건설사를 상대로 어려운 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자신의 작은 이익만을 지키려고 이웃이 될 사람들을 버리는 사람들의 마지막을 보여주는 것 같아 입안이 씁쓸합니다.


선분양이라는, 세계적으로 기형적인 이 제도는 사실 자본이 모자라던 시절 대규모 단지를 조성하는데 있어 필요했던 편법적인 방법입니다. 입주자들의 돈을 모아서 시행사나 건설사는 따로 자기돈 들이지 않고도 땅을 사고 건물을 짓는 것이니 땅짚고 헤엄치기와 같지요. 잘 생각해 보시면 우리는 어떤 물건을 살 때 먼저 물건을 살펴보지 않습니까? 그래서 물건의 품질과 디자인, 가격 등을 검토하고 구매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선분양 제도 아래서는 어떻게 생긴 아파트고, 무슨 자재를 썼으며, 주변에 뭐가 들어서는지도 모르고 입지도 모른채 모델하우스의 이미지와 환상만으로 구매를 결정해 버립니다. 이미 이 때부터 청약, 시공, 완공, 입주에 이르는 과정의 비극은 잠재돼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렵사리 입주를 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입주민들의 편익과 복지를 위해 일해야 할 관리사무소장이나 입대의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탤런트 김부선 씨가 폭로했듯이 관리비 관련한 비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아파트의 관리를 위한 용역 선정에 있어 권한을 남용하고, 대가로 리베이트를 받는다던지 하는 것들 말입니다. 여러분의 아파트를 한 번 유심히 관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청소용역은 왜 이 업체가 맡고 있는가? 엘리베이터에서 소리가 나는데 유지보수업체 선정은 합리적이었는가? 우리 아파트 동대표는 누구이며 어떤 생각을 가진 인물이지? 이런 의문을 가져보시길 권하는 것입니다.


이권에 눈먼 입대의와 관리소장이 결탁해서 저지르는 비리들은 각각의 건수만을 보면 그 액수가 크지 않다. 관리비 조작도 한 세대 당 1,000~2,000원씩 더 물린다면 1,000세대일 경우 100만원에서 200만원이다. 얼핏 보면 그리 많아 보이는 액수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하는 식으로 갖가지 방법에 따라 챙기는 돈을 다 합쳐보면 한 달에 수천만 원은 거뜬히 나올 수 있다.입대의가 불투명하고, 입주민들이 무관심할수록 관리비를 낭비하거나 뒷돈을 챙기는 수법도 더욱 다양해지고 대담해진다. 창조경제가 무색할 지경이다.


- 김효한, 『아파트에서 살아남기』, 퍼플카우, 2013, 315p.


하지만 그것은 귀찮은 일입니다. 나의 수고로움으로 우리집 관리비가 합리적으로 징수되고 사용되는지 따져보기 보다는, 그렇게 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이웃들이 무임승차하는 것이 더 얄미울 수도 있을 것이구요. 큰소리 나면 잘잘못을 따져보기보다는 눈살부터 찌푸리는 우리의 정서도 한 몫 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런 무관심과 귀차니즘은 각종 배임과 횡령의 훌륭한 숙주가 되어 줍니다.


대다수 입주자들은 아파트가 시끄러워지는 것을 무조건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누가 옳고 그른가보다는 '시끄럽게 왜들 싸워?' 이런 식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아파트가 시끄러워지고 문제가 불거지면 집값이 떨어진다면서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 김효한, 『아파트에서 살아남기』, 퍼플카우, 2013, 303p.


아파트라는 작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현상들과 무척이나 닮아 있습니다. 하긴 호랑이 부모 아래서 강아지가 태어날 리는 없으니까요. 자신의 권리와 이익에는 목숨을 걸지만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양보나 희생에는 인색하고, 타인의 불편과 고통에는 전혀 공감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그런 현상들 말입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공동주택에서 대표의 역할을 맡아본 경험을 통해 저자는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까지 이끌어냅니다. 저자는 우리에게 스스로 합리적인 생각을 해보고, 타협과 양보를 통해 나와 타인의 이익을 조화롭게 이끌어내는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수동적인 자세를 극복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참여하면 이익, 참여 안 하면 손해'라는 인식이 심어져야 사람들을 더 많이 행동으로 끌어낼 수 있다.



- 김효한, 『아파트에서 살아남기』, 퍼플카우, 2013, 304p.


저는 이 책을 사회적인 관점에서 읽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소개해 드렸지만, 이 책을 실용서로서도 훌륭합니다. 어디 가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아파트 구매와 거주의 노하우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부제가 '구매에서 입주관리까지 건설사가 절대 알려주지 않는 아파트의 모든 것'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파트를 구매하실 분들, 아니면 현재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계신 분들이라도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우리 일생을 통해 구매하는 가장 비싼 재화에 관한 문제입니다. 읽어볼 필요성은 너무나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