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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경제ㆍ경영

[자본론 공부 - 김수행] 매일 열근하는 나는 왜 부자가 되지 않을까?


자본론 공부

저자
김수행 지음
출판사
돌베개 | 2014-08-25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한국 최고의 마르크스 경제학자 김수행 교수에게 듣는 [자본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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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사용하는 휴대폰의 통신사를 바꿨다. LG U+를 선택했는데 LTE에서는 기존 이미지와는 다르게 타 통신사보다 훌륭한 품질을 자랑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고 쓰고 아이폰6을 쓰려고 바꿨다라고 읽는다) 집에서 휴대폰 안테나의 감도가 좋지 않아 고객센터를 통해 중계기 설치를 요청했다. 바로 다음날 기사님이 집으로 방문해 주셨고, 설치가 진행되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넷쪽을 묻자 자기 쪽 일은 아니지만 그 쪽 지금 파업하고 있을 거라는 말에 내가 말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빈주먹만 남는데 일하지 않는 양반들만 배가 나오니 파업 안하고 버틸 재간이 있을까요?" 그러자 기사님이 순간적으로 빵 터지셨다. 재밌다는 거다. 그리고나서 "그게 정말 맞는 말입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죠."라고 말했다. 기사님 대답을 듣고 나도 속으로 말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의 많은 이들이 직장을 얻고 월급을 받아 살아간다. 회사를 소유한 오너나 자기 가게를 운영하는 몇몇 혹은 농축수산업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도시에 살고 도시에서 일하고 받은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산업화가 완성된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다. 한 때는 월급을 알뜰살뜰 모아 적금을 붓고, 그 돈으로 집과 차를 마련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다만 서울에서 자가주택을 소유하려면 은행빚을 끼지 않을 수 없고, 그 빚을 다 갚으려면 한 20년쯤 걸릴 거라는 게 문제면 문제다. 엄청나게 높아져버린 아이의 양육비와 교육비용까지 감당하면서 20년을 뼈빠지게 일해야 자기집 하나 남는 것이다. 그나마 이것도 20년 동안 안정적으로 급여를 받는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었을 때라야 가능한 시나리오다. 


왜 열심히 일하는 나는 이 땅에서 집 한 채 사기가 그렇게 힘든가. 왜 야근을 마다하지 않은 내게 카드빛, 대출이 잔뜩 껴 있는 걸까. 집값이 비싸고, 물가가 너무 높은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지금의 집값이나 물가에 비해서 나는 너무 적게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란 의문이 든다. 자본주의 사회에게 내가 모르는 뭔가 거대한 사기를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여기까지 진행된 독자라면 한국 마르크스경제학의 대부 김수행 교수의 최근작 <자본론 공부>를 일독할 것을 권한다. 인류역사상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에서 탑클래스는 애덤 스미스가 아니라 단연 마르크스 선생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마르크스와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이해가 가장 깊은 사람은 바로 김수행 교수이기 때문이다. 대학 새내기 때 두께만 보고도 질렸던 자본론 1~3권이 김수행 교수를 통하니 이렇게 슬림하게 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마르크스 경제학과 자본론에 관심있는 한국독자들에게 행운이다. 지루하고 두꺼운 자본론 세 권과 씨름하는 수고를 덜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김수행 교수가 자본론 강의 10강을 진행한 것을 돌베개 출판사에서 녹취를 풀어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실제 김수행 교수의 강연 영상으로 공부해 보는 것이 조금 더 편할 수 있으나 이 강의는 유료강의로서 '비싸다'. 따라서 호주머니는 가벼우나 학구열은 무거운 독자에게 <자본론 공부>는 훌륭한 대체재로 기능하기에 충분하다.


강연이 10강으로 이뤄진 것처럼, <자본론 공부> 역시 총 10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1~5장까지의 내용은 자본론 1권을 해석하는데 할애됐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마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가장 기초적이면서 필수적인 내용들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품과 화폐, 자본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잉여가치의 창출과 착취, 자본의 축적과정, 실업자의 발생구조 등 마르크스 이론의 핵심이 되는 토대가 거의 다 풀어져있다. 처음 질문에 대한 분석도 거침없다.


낮은 임금수준과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리는 임금노동자계급의 수가 크게 증가하면서, "노동자는 거지다"라는 노동빈민working poor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습니다. 이처럼 자본가 계급이 장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을 강요하여 노동자계급을 착취하고, 주기적으로 공황과 불황이 일어나서 사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대규모로 낭비하면서 노동자계급의 생활을 지옥에 빠뜨리는 데도, 자본주의 사회는 아직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단순한 대답은 자본가들이 자꾸 실업자를 만들어내서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의 힘을 점점 더 약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들은 사실상 굶어죽을 수밖에 없으므로 자본가들의 각종 요구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취업노동자들도 일자리를 잃지 않으려고 자본가들에게 복종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실업자가 자본-노동관계, 즉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관계를 연장시키는 주된 근거입니다.


- 김수행, <자본론 공부>, 돌베개, 2014


열심히 일하는 당신의 몫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가로챘다는 말이다. 땀은 정직하나 그 분배는 정직하지 못했던 것이다. 휴대폰 중계기 설치기사님이 "일하는 사람 따로 있고 돈 버는 사람 따로 있다"는 내 말에 실소를 터뜨린 이유는 바로 이런 원리를 경험적으로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5~10장까지는 자본론 2~3권의 내용을 풀어낸다. 자본의 유통과 가치증식, 평균이윤율, 상업자본과 금융적 자본 등에 대한 분석이 이어진다. 조금 따분할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자본론 원서를 보는 것보다는 나을거다. 김수행 교수는 자본론에 대한 강의를 이어가면서 꾸준하게 계급갈등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낼 원동력이라는 의견을 피력한다. 마르크스 역시 힘에 의한 변화가 아니고서는 기득권을 가진 자본가 계층이 순순히 자리를 내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폭력은 야만적이나 타인을 착취해야만 성장하고 운동하는 시스템과 그 단물에 기생하는 계층 역시 야만적인 것은 매한가지다. 


현실사회주의국가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등장했다가 90년대 초 홀연히 사라져버린 많은 사회주의국가들 때문에 마르크스의 경제학과 자본론의 가치 역시 크게 훼손됐다. 하지만 김수행 교수는 그의 강연에서 "소련 엉터리야 엉터리!"라고 카랑카랑하게 말한다. 토니 클리프의 책 <소련은 과연 사회주의였는가>에서 저자 역시 사회주의 소련을 실제로는 자본주의국가라고 비판한다. (착선님의 리뷰 참조 - http://newidea.egloos.com/2162849) 마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실제로는 독재국가인 것과 마찬가지다. 토니 클리프는 소련을 국가가 모든 것을 독점한 자본주의의 변종, 국가자본주의국가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들 사례 때문에 자본론이 무의미하다고 평가한 것 역시 잘못된 판단이다. 


지금도 불온한 책으로 여겨지는 자본론. 자본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어 평생을 마르크스 경제학 연구에 바친 김수행 교수는 <자본론 공부>의 말미에서 자본론이 이 시대에 갖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노老교수의 일성을 끝으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결국 자본 또는 자본가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동자계급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사라져야, 대다수 국민들이 일자리를 얻고 사람다운 생활을 하며 자기들의 개성과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과학기술 혁명의 시대에, 한 줌도 안 되는 거대한 자본가계급의 독재 때문에 국민 전체가 죽어가고 있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가 사실상 <자본론>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성, 발전, 소멸의 법칙'을 해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김수행, <자본론 공부>, 돌베개,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