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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교육

[공부 논쟁 - 김대식, 김두식] 공부 열심히 해야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공부 논쟁

저자
김대식, 김두식 지음
출판사
창비 | 2014-04-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일등의 들러리는 싫다 내가 주인공이 되는 ‘진짜 공부’를 해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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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친구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한다. 지방의 라이온스클럽 회장을 지낸 아버지를 둔 친구다. 나름 비평준화 명문고와 서울소재 명문대학을 졸업한 이 친구는 그야말로 부모의 자랑이었나보다. 이 친구의 부모님께서는 동네방네, 지인과 친구, 친척의 사돈에까지 자식자랑에 여념이 없으셨나보다. 이것은 결국 '내 아들 이렇게 공부잘하는데 너희 자식은 그렇게 못하지?'라는 식이 되버리기 십상이어서 이 친구가 홀로 짊어져야 할 중압감과 부담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좁은 시골동네에 퍼지는 소문의 속도 역시 그 부담을 늘리는데 일조했던 것으로...;)

 

불행히도 전폭적인 지원과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리라는 기대는 그에 합당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 친구에게 공부란,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주변에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한 수단였을 뿐이었다. 결국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그 동력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이 친구에게 남은 것은 집안의 멸시와 냉소, 조롱 뿐이었다. 장원급제를 꿈꿨지만 낙방한 도련님으로 전락한 지금에 와서야 깨달은 듯하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수준에서는 결국 말 잘듣고 칭찬받는 마마보이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음을. 애초에 그것이 양날의 검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친구는 스스로의 길을 찾아 때늦은 발걸음을 힘겹게 내딛고 있다.

 

 

 

 

공부란 무엇일까. 누군가는 "공부도 목숨걸고 하는 것"이라 한다. 어린아이들의 방학에도 각종 캠프와 특강 등으로 학기 중과 다름 없는 생활을 강요할 정도로 교육열이 높은 한국인들에게 공부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이길래 이리도 생을 걸고 해야만 하는 것일까. 어차피 다 커서 사회에 나오고 회사에 입사하면, 뒤로는 "공부 잘해봐야 아무 소용없다"고 궁시렁 댈 것을 말이다. "공부 열심히 해야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어른들의 가르침은 사실 "고시공부를 열심히 해야 장원급제를 해서 출세한 사람이 된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여기에 힌트가 있는 듯하다.


 

글을 읽어보면 분명 소심한데 사회의 터부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이에 대한 고찰을 멈추지 않은 은근 불온한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하 김두식). 그의 형이지만 성향은 정반대로 거침없고 사안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알아채는 김대식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이하 김대식). 두 형제가 한국에서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두고 대담(을 빙자한 싸움 같기도 하다)을 나눴다. 그리고 그 내용을 <공부 논쟁>으로 정리해 출간했다. 상반되는 두 형제의 스타일이 오묘하게 하모니를 이루는 대담이 흥미롭다.

 

유학자들이 국가를 경영한 우리나라에서 과거제도가 신분 상승의 중요한 통로가 되었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죠. 우리나라는 조선의 과거제도가 일제강점기의 고등문관 시험을 거쳐서 거의 그대로 사법시험과 행정고시로 계승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시험에 통과해서 관료가 되면 권력과 부가 보장되는 시스템이죠. 시험의 공정성이 보장되는 대신 전국민이 거기 매달리게 되는 문제가 있었고, 장인이라고 할 만한 전문 집단이 만들어지지 못했어요. (김두식)

 

- 김대식,김두식, <공부논쟁>, 창비, 2014

 

 

출세와 신분상승을 위한 공부는 한국인들에게 있어 삶의 지향점이자 지상목표였던 것이다. 어렵게 시험을 통과해 얻는 학벌의 권위와 관료의 지위는 그에 따른 당연한 보상쯤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그 어려운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은 폐쇄적인 Inner circle을 이뤄서 엘리트집단을 구성한다. 이 집단의 특징은 외부인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와 독점적인 특혜를 자신들끼리만 공유한다는데 있다. 여기에 사회적 존경과 그에 따른 우월감은 옵션으로 붙는 보너스다. 공부는 그 높은 성벽 안에 안착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안정적인 권력과 부가 손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개인적으로 무척 싫어하는 말이지만) 사회지도층으로 행세하는 것이 가능하다. 젊은 시절을 길거리에서 다 보낸 청춘들이 금배지를 달고 정치에 입문한 뒤의 결과를 보자면, 진보와 평등의 가치를 내세워 투쟁했던 사람들의 세계에도 (그들이 반대해 마지않던 세력들의 전유물일줄로만 알았던) 엘리트주의와 학벌주의는 엄연한 현실로 존재하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고시를 통과하지는 못했지만 명문대의 문턱을 넘어선 그들의 내면과 위선에 대해 김대식 교수는 거침없는 비판을 가한다.

 

운동권 애들하고 술을 마셔도 제가 훨씬 더 많이 마셨을 겁니다. 동생은 아예 술을 마시지 않으니까 그 친구들의 실체를 알 수가 없어요. ... 그 시절에 운동권의 모순을 충분히 보고 느꼈어요. 단적으로 말해서 지금 진보니 운동권이니 큰 목소리 내는 사람 중에 서울대, 연고대 안 나온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다른 대학 출신들은 모두 어디를 갔냐고요. 저는 그걸로 얘기는 끝났다고 생각해요.

 

- 김대식,김두식, <공부논쟁>, 창비, 2014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받아든 성적으로 대학을 진학하고 그 대학이 엄연한 서열체제에 편입돼 있는 상황에서는 학문이 가진 의미 역시 한 개인에게 주어지는 신분적 낙인에 불과하다. 이 견고한 카르텔이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렇다면 그 변화는 어떤 제도를 바꾸고,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할 것인가. 자세한 내용은 독자들이 책본문을 읽어봐야 하겠지만, 아래에 짧게 첨부한 두 형제의 이야기를 곱씹어보면 그 실마리가 엿보일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고등학교의 완전 평준화, 특목고 폐지, 입시제도 단순화를 공약으로 걸고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 의견을 물어봐도 좋을 것 같아요. 국민 모두의 삶과 직결되는 중요 관심사니까요. (김두식)

 

단순히 평등 지향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효율성 측면에서도 특목고 폐지는 의미있는 시도예요. 평등이 가장 효율적일 수 있거든요. 평등이 비효율적이라는 건 엘리트주의자들이 주입한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런 거짓에 맞서 싸우는 게 진영논리보다 훨씬 중요해요. (김대식)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장원급제 DNA를 가진 기득권층이 쳐놓은 심리적 장벽을 걷어내야 합니다. (김두식)

 

- 김대식,김두식, <공부논쟁>, 창비, 2014

 

한 해 수십 조원의 교육비를 쏟아붓는 것도 모자라 해외유학과 이민까지 치를 정도로 교육의 문제는 중요하다. 교육의 문제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휘청일 정도니 그 위력이 그 무엇보다 강력하다고 할 법하다. 교육이 국가백년지대계國家百年之大計라고 떠들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제도와 정책들 때문에 우리 교육은 항상 방황 중이었다. 좋은 아이디어들이 넘쳐나도 결국 정치의 단계에가면 전시성 정책을 입안하는데 그치고 말았던 것이 지금까지의 우리 교육이 처한 현실이었다. 이제 시민사회의 영역에서 공부는 무엇인지, 교육은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 그래서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토론을 진행할 차례다. 그것이 적폐를 해소하고 국가백년지대계를 새로하는 첫걸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