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의 함정은 검사출신 변호사인 금태섭 변호사가 낸 책이다. 이전에 그가 '수사 잘 받는 법'이란 글을 한겨레에 연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눈여겨 봤었고, 검찰을 떠난 뒤 출간한 '디케의 눈'이란 책을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어 내용 따지지 않고 질렀다. 정가는 10,800원이었는데 인터넷 교보문고를 통해 구입하니 이전에 쌓아둔 포인트와 각종 제휴사 포인트에 카드 포인트까지 적용되니 실제로는 한 5,000원쯤 지불한 것 같다. 6월 28일에 발행된 최신간을 절반가격에 구입하니 뭔가 도둑질을 한 것 같은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실제로 도착한 책을 보니 그런 생각은 안드로메다로..... ㅋㅋ
금태섭 변호사는 머리말의 제목을 '누구나 틀릴 수 있다'고 적었다. 자신의 초임검사시절 실수를 소개하며 진실 혹은 진리에 대한 열린 가능성을 제기하고 시작하는 태도가 좋았다. 소설가 공지영은 추천사에서 "금태섭 변호사는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는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늘 겸손하다. 그러면서도 재치와 예리함을 잃지 않는다. 이 책도 그를 닮았다."고 말한다. 책을 읽기 전에는 금태섭이란 사람에 대해서 힌트를 준 것인가 했지만 완독하고 나니 방점은 '이 책도 그를 닮았다'에 찍혀 있었다. 실제로 금변호사는 내용을 전개하는 내내 이슈가 될만한 문제, 생각해 볼 문제 등에서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독자에게 이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리고 선입견을 뛰어넘어 다양한 시각과 의견을 소개하며 진실과 진리에 대한 탐구정신이 가득한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인지 철학적, 종교적, 사회적 문제가 뒤엉켜 복잡해 보이는 문제들도 상대적으로 쉽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라 하겠다.
부제는 '딜레마에 빠진 법과 정의 이야기'인데 최근 나도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던 차였다. 애초부터 선과 악의 구분이 쉽지 않고 선인과 악인이 따로 있지는 않다는 태도로 살아온 내게 딱 떨어지는 법전 판결보다는 훨씬 더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딜레마와 불확실성이 가득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름의 판단을 내려보는 것은 인격적으로나 교양적으로나 내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저자는 시작부터 연쇄성폭행범과 이들에 대한 거세문제를 던지며 쉽지 않은 '판단'에 대해 말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볍게 던지는 "잘라버려야 해!"나 "화학적 거세를!" 이란 말이 과연 유효하고 합리적인 판단인가를 질문한다. 물론 정답은 있지도 않고 저자도 정답을 정해놓지는 않았다. 이런 고민과 사색의 과정을 통해 좀 더 진실과 진리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가치가 발현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세한 내용이나 목차를 스포일러하지는 않겠다. 신간이고 바쁜 시간 내어 어렵게 집필한 금변호사의 노고를 생각하면 이는 역시 도둑질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여간 확신의 함정 덕에 지루했던 버스통근길이 제법 즐거웠다. 우리가 무심코 '그건 당연해'라고 판단할 수 있는 문제들도 자세히 파고들어 바라보면 결코 간단한 상황이 아님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얼마나 이념이나 종교, 도덕, 윤리 등의 이름으로 치장된 편견들에 사로잡혀 판단하고 살아왔는지를 깨닫는 시간이 됐다.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은 진리의 상아탑을 향한 인간의 접근을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문제적 이슈를 과감하게 제기한 국내외의 여러 문학작품들을 통해 사건을 설명하는 방법은 매우 좋았다. 김두식 교수가 쓴 '불편해도 괜찮아'가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냈듯이 금변호사는 문학작품을 통해 좀 더 쉬운 이야기 전개를 꾀하고 있다. 문제는 그 중에 내가 아는 작품이 겨우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정도였다는 것 ㅡㅡ;;; 해외작품들은 금변호사의 스포로 재미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읽어본 일이 없어서 OTL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초판을 소장하고 있다는 금변호사의 자랑을 뒤로 하고 그의 상당한 독서량에 놀랐다. 고시를 치고 검사에 임용되어 업무에 치이던 시간이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매 사건마다 적절한 작품들을 제시하는 것은 분명 그의 다독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성실함에 박수를.
온라인 상에서 보이는 수많은 사람 중 몇몇은 사안보다는 사람을 먼저 본다. 그의 과거전력부터 출신지역, 심지어는 인맥까지 사람을 판단하는데는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그러면서도 막상 제일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팩트' 확인조차 하지 않고 부화뇌동하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경향 때문에 혹여 자신과 다른 입장에 서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의 발언은 그 사실여부나 옳고 그름을 떠나 묻지마 '비난'을 쏟아내기 십상이다. 결국 합리적인 수준의 토론이나 비판, 반박은 찾아볼 수 없고 출처를 알 수 없는 당위원칙을 들이댄 비난이 난무한다.
사람은 그 자체가 하나의 우주라는 말이 있다. 그 하나가 신체적으로도 온전한 우주를 품고 있을 뿐더러 그 생각 또한 하나의 체계를 갖춘 우주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우주는 옳고 어느 우주는 틀리다는 말은 그 자체가 억지다. 굳이 똘레랑스라는 어려운 말을 동원하지 않고서라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행동하라는 가르침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윤리 아니던가?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금변호사의 말처럼 우리는 편견과 아집에 빠져 정작 진실과 진리에서는 멀어진 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을 열고 생각을 열면 또 다른 진실과 진리들이 당신에게 새로운 관점으로 다가선다. 편견과 아집의 껍질에 갇혀 외로운 독단에 빠질 것인지 아니면 당신과 다른 새로운 우주들과 소통하고 교류하여 진실과 진리에 한 발자욱 더 다가설 것인지, 이제 판단은 당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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