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끄적끄적/인문

[아주 사적인 독서 - 이현우]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 읽기




아주 사적인 독서

저자
이현우 지음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2013-02-04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우리 시대의 ‘서재지기’, 로쟈 이현우의 첫 번째 강의록지금도 ...
가격비교


영화 <타짜>를 보면 평경장(백윤식 분)이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있다.


"우리땐 고저 누가 들을까봐 입을 앙다물면서 했는데 요즘 것들은 들으라고 그러는거 같어"


옆방에서 터져나오던 쾌락의 신음소리를 듣고서 혀를 끌끌대며 내뱉은 말이다. 겉으로는 남녀칠세부동석의 엄연한 전통(?)이 사회를 억누르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한국인들은 이제 욕구와 욕망을 표현하고 추구함에 있어 과거처럼 소극적이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젊은 층일수록 '솔직함'을 미덕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이런 흐름은 방송계의 예민한 유행에 반영돼 소위 '돌직구' 화법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나이가 있는 분들은 평경장마냥 '요즘 것들은 쯧쯧...'이라고 혀를 찰 일이다. 평경장이 살아왔던 것과 같이 '숨기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던 시대를 살아오셨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문명이란 기본적으로 인간을 억압함으로써 유지된다. 그 억압이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와 사회적 욕망들을 통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욕망은 불쑥불쑥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굳이 '요즘 것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혀를 끌끌차던 분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그렇게 살아오셨다. 그 흔적은 당장 우리고전 <춘향전>에서 엿볼 수 있다. 주 모티브가 당시를 지배한 신분제를 뛰어넘은 18세 남녀의 상열지사가 아니던가. 그 솔직한 욕망 추구의 스토리를 오늘날 우리 역시 텍스트로, 연극으로, 영화로 끊임없이 소비하며 살아간다. 


멀리 서양 고전들에서도 인간의 비슷비슷한 욕망을 찾아볼 수 있다. 작가 이현우가 <아주 사적인 독서>에서 대표적인 7개 작품을 골라봤다. 작가는 <마담 보바리>, <주홍 글자>, <채털리 부인의 연인>, <햄릿>, <돈키호테>, <파우스트>, <석상 손님>을 선택했다. 각 작품들은 인간의 다양한 욕망을 그려낸다. 그 욕망은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요즘 것들은 쯧쯧'이 일정부분 이해되기도 한다) 욕망은 사회적으로 학습되고 주입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욕망하는 존재라는 사실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보통은 '욕구'와 '욕망'을 구분합니다. 욕구라는 건 모두가 갖고 있는 겁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의식주에 대한 기본적인 바람을 욕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욕망은 다릅니다. 먹는 것에 대한 욕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로마시대 귀족들의 연회라고 생각합니다. 호화로운 만찬을 하면서 먹은 다음 토하고 또 먹죠. 오로지 더 먹기 위해서입니다. 욕구는 위의 만족이지만, 욕망은 입의 만족을 위한 것이죠. 생존을 위한 게 아닙니다. 그런 잉여적인 욕망이 진화적으로 유리한 본능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욕구를 생물학적 차원이라고 한다면 욕망은 어딘지 병리적인 차원인데, 나중에 덧붙여진 어떤 것이지 필수적인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 이현우, <아주 사적인 독서>, 웅진지식하우스, 2013, 206p.


저자가 고른 7개의 고전과 그 주인공들을 통해 독자는 스스로의 욕망을 되돌아볼 수 있다. 독자 역시 작품의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직면하면 고민하고 고뇌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정상이라 여기며 눌러왔던 내면의 깊은 욕망과 대면하는 경험은 대단히 사적인 체험이다. 이 은밀한 체험을 통해 감춰져 있던 자신의 생얼굴을 마주하고도 자신 만의 삶을 추구한 작품의 주인공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질문은 던지고 있다. '행복하세요?'


고리타분하고 두껍기만한 고전(그래서 사실 잘 읽지 않게 된다)을 통해 저자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의미를 이끌어낸다. 단지 훌륭한 작품이란 이야길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파우스트>에서 괴테가 내놓은 마무리에 대한 저자의 평가를 들어보자.


지배자의 비극은 퍽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런 주제의 많은 작품을 연상시킵니다. 자기가 기획한 과업을 실행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강압적인 통치자, 권력자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개발독재를 비판하는 여러 작품들의 원 모델이 되어주는 게 이 지배자 비극입니다. <파우스트>라는 작품이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보아도 이 문제의 현실감을 느낄 수 있는데, 파우스트적 지배자 형상이 20세기 나치 독일에서는 영웅적 지도자의 모델이 됩니다. 나치는 많은 작품을 금서로 지정했는데, <파우스트>는 유독 열광적으로 수용합니다. 괴테로서는 억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빌미를 이 작품이 주고 있습니다. 괴테가 그런 혐의를 벗으려면 파우스트와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반면교사 식으로 그의 파멸을 그리고자 했다면 이 작품도 정당화 됩니다. 그런데 애매하게도 괴테는 파우스트가 충분히 구원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비극을 통해 교훈을 얻는 것이 아니라요. 그게 이 작품의 문제성이라고 봅니다.


- 이현우, <아주 사적인 독서>, 웅진지식하우스, 2013, 222p.


고전이 가진 권위에 눌려 이에 동조하는 글이라면 그닥 의미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고전이 가진 한계와 그것이 현재의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교훈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고전 읽기는 '죽은 고전 읽기'에 불과하다. 작가는 각 작품을 통해 독자가 놓치기 쉬운 점들을 짚어 주며 고전 읽기를 안내한다. 글쓴이가 독자의 손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닌 가이드를 하기 때문에 독자 스스로 생각해볼 여지가 충분하다.


이 책의 제목 <아주 사적인 독서>도 잘 지었지만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 읽기'란 부제를 참 잘 지었다. <아주 사적인 독서>는 자칫 진부해 보이는 고전을 통해 욕망하고 좌절하는 오늘의 우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고전의 별명은 '너무 유명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고 한다. 고전을 읽고 싶은데 학교수업이나 직장생활 등으로 바빠서 시간을 내지 못했다면 이 한 권이라도 집어들 것을 권한다. 왜 고전을 읽자는 말이 나왔는지 이해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사적인 독서>에 수록된 고전을 어릴 때 읽었더라도 다시 읽으면 달리 느껴질 것이다. 그만큼 당신의 경험과 연륜이 작품을 이해할만큼 쌓였기 때문이다. 그건 보너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