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광화문 교보문고에 다녀왔다. 인터넷 서점을 많이 이용하기도 하지만 책을 사는 것 외에도 서점을 돌아다니는 재미가 꽤 크다. 온라인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책을 우연히 발견하기도 하고, 독자들이 어떤 책에 관심을 가지고 읽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쏠쏠한 즐거움을 준다. 바로드림 서비스로 주문해 둔 책을 받아들기에 앞서 매장을 한 번 둘러봤을 때 가장 의외였던 코너가 한 곳 있었다. 일종의 기획전처럼 따로 코너를 마련해서 홍보중이던 책은 조선후기 실학자로 알려진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였다. 을유문화사가 광고마케팅의 일종으로 마련한 것인지, 정말 고전과 인문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높아져서 <택리지>에 대한 수요가 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덕분에 한 동안 잊고 지냈던 <택리지>가 불현듯 생각났다.
(새 정부 들어서자마자 '전시상황' 어쩌구 떠들어 대는 이북의 위협 때문에 전란을 피할 수 있는 땅이 소개되어 있는 <택리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은 아닌가... 하고 혼자 생각해봤다)
<택리지>를 꺼내 읽어보았다. 내용이 달라질리는 없겠다만 몇 년전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나의 관점이 달라진 것인지는 모르나 처음 읽어본 당시에 보지 못했던 대목이 많이 늘었다. 허나 <택리지>의 내용은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흥미롭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내용이 길지는 않으나 한자로 쓰여진 책을 한글로 번역하다보니 그 내용이 그리 자연스럽지 못할 뿐더러 정확한 의미의 전달이 어렵다. 뜻이 어려운 단어나 구절은 한자를 병기하고 각주로 설명이 덧붙여져 있지만 이것 역시 녹녹치 않다.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는 한자의 뜻을 몰라 어려울 것이고, 이중환이 <택리지> 안에서 예로 들어 비교하는 중국 고사들이 낯선 일반인들에게는 '이게 뭔소리야?'란 반응이 나올 것 같다. 친절하지 않은 책이다. (그렇다고 옮긴이의 노고를 가벼이 보는 것은 아니다. 한국어로 씌인 것처럼 술술하는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택리지>는 사민총론四民總論, 팔도총론八道總論, 복거총론卜居總論, 총론總論 네 가지로 나뉘어 있다. 여기에서 중심이 되는 건 팔도총론과 복거총론이다. 이중환은 팔도총론에서 당시 행정구역인 팔도의 특산물이나 지형, 물의 흐름 등을 밝힌다. 여기에 각 지역의 역사적 내력이나 인물 등에 관해서도 서술해 단순한 지리서를 넘어 인문지리서의 성격을 띈다. 복거총론에서는 풍수지리학적 관점에서 지리地理, 생리生利, 인심人心, 산수山水를 들어 사람이 살만한 곳을 논한다. 땅의 메마름과 기름짐, 교통, 특산물, 사대부와 상민들의 인심 등이 살기 좋은 곳의 기준이 된다.
<택리지>는 풍수지리학을 참고해 쓴 지리서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길지를 택해 부모의 묘를 모시려는 사람들을 볼 때 마냥 불신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하물며 이중환이 <택리지>를 쓰던 당시에야 말할 것이 없을 것이다. 시대적인 한계를 고려하여 읽으면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조선후기 한반도에 살고 있던 일반 백성들의 삶이 엿보이기도 하고 아직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지역적 특성의 역사를 훑어 볼 수도 있다. 한 때 사극열풍이 몰아치면서 미비한 고증과 역사왜곡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된 적이 있다. 문제가 된 사극의 시청자가 픽션과 조선후기의 현실을 비교해보려 할 때 참고할만한 책이 <택리지>다.
참으로 안타까운 점은 아전인수하는 현대인들의 태도에 있다. 전근대적 봉건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대 분위기와 그 시대를 살았던 이중환의 한계를 맥락 구분하지 않고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다. <택리지>에 등장하는 특정 지역과 지역민들에 대한 평가를 마치 현대의 지역차별 근거로 들먹이는 작태는 아전인수일 뿐더러 어불성설이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지역감정의 근거로 인용해 쓰는 <택리지>의 한 대목을 옮겨본다.
우리나라의 팔도 중에 평안도는 인심이 순후하기가 첫째이고, 다음은 경상도로 풍속이 진실하다. 함경도는 지역이 오랑캐 땅과 잇닿았으므로 백성의 성질이 모두 굳세고 사나우며, 황해도는 산수가 험한 까닭에 백성이 사납고 모질다. 강원도는 산골 백성이어서 많이 어리석고, 전라도는 오로지 간사함을 숭상하여 나쁜 데 쉽게 움직인다. 경기도는 도성 밖 들판 고을 백성들의 재물이 보잘것없고, 충청도는 오로지 세도와 재리만 좇는데, 이것이 팔도 인심의 대략이다.
- 이중환, 이익성 역, <택리지>, 을유문화사, 2010, 149p, 복거총론 인심편
신라 말엽에 후백제 견훤이 이 지역을 차지하고 고려 태조와 여러 번 싸워, 고려 태조는 자주 위태한 경우를 당하였다. 견훤을 평정한 뒤에 백제 사람을 미워하여 "차령車嶺 이남의 물은 모두 산세와 어울리지 않고 엇갈리게 흐르니, 차령 이남의 사람은 등용하지 말라"는 명을 남겼다.
고려 중엽에 이르러서 가끔 제상帝相의 지위에 오른 자도 있었으나 드물었으며,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는 이 금령이 있으나마나 하게 되었다.
전라도는 땅이 기름지고 서남쪽은 바다에 임해 있어 생선, 소금, 벼, 깁絲, 솜絮, 모시, 닥楮, 대나무, 귤, 유자 등이 생산된다. 풍속이 노래와 계집을 좋아하고 사치를 즐기며, 사람이 경박하고 간사하여 문학을 대단치 않게 여긴다.
- 이중환, 이익성 역, <택리지>, 을유문화사, 2010, 79p, 팔도총론 전라도편
복거총론 인심편에 따르면 한반도의 전 지역 중 칭찬 받을 만한 곳은 평안도와 경상도 뿐, 나머지 지역은 사납거나 어리석고, 간사할 뿐이다. 게다가 지역차별의 가장 큰 피해자인 전라도는 <팔도총론 전라도편>에 '사람이 경박하고 간사하다'는 평을 받아 마치 예전부터 그래왔다는 편견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양반관료로 특권계층에 속해서 높은 벼슬을 지내다 당쟁으로 밀려난 이중환이 가진 인식세계의 한계를 고려하지 않으면 글자 그대로 각 지역은 나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중환 같은 사대부들이 보기에 살기 좋은 곳은 사서오경을 읽고 시를 짓고 문학을 논하는 소중화의 자부심이 가득한 곳일게다. 그래서 과거에 급제하는 이가 많이 나오는 지역에 좋은 평가를 했던 것이다. 이것은 지금과 비슷하다. 앞다투어 사교육에 열을 올리고 혹여 서울대에 진학하는 이가 많이 나오면 동네 입구에 현수막을 붙여놓는 분위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 '학군이 좋다'는 평가는 현대의 한국에서도 '살기 좋은 곳'으로 평가받지 않는가.
유교적 입신양명이 삶의 목적이 된 시대를 살았고 그 시대에서 고위직을 역임한 이중환이 어찌 각 지역 농공상에 종사하는 백성의 인심을 다 알겠으며, 김정호가 아닐진데 어찌 각 지역 곳곳을 다 돌아다녀봤겠는가도 의문이다. 이중환 스스로가 <택리지>의 산수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전라도와 평안도는 내가 가보지 못하였지만 강원, 황해, 경기, 충청, 경상도는 내가 많이 가본 곳이다.
- 이중환, 이익성 역, <택리지>, 을유문화사, 2010, 179p, 복거총론 산수편
심지어는 제대로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해서 평가했다는 저자의 고백은, 수백 년 뒤 그가 쓴 한 단락이 지역감정의 근거로 후손들에게 이용될 줄 몰랐던 바에 대한 사과일까. 그 당시의 시대 분위기와 이중환의 인식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택리지>같은 인문서를 써낸 바에 대한 평가는 분명 긍정적일 수 있다. 허나 <택리지>의 일부분을 아전인수하여 자기 좋은대로만 해석하는 후손들의 모습을 저승에서 지켜보고 있을 저자의 마음은 그리 탐탁치 않을 것이다. 이중환이 진실로 말하고 싶었던,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은 편견으로 가득차 바라보는 지역이 아니라 바로 다음과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옛날에 속수공涑水公(송나라 사람 사마광司馬光. 속수라는 지방에 살았으므로 사람들이 속수공이라 하였다)이 "민閩지방 사람은 교활하고 음흉하다" 하였으나, 주자朱子 때 이르러서 어진 사람이 많이 나왔다.
어진 사람이 그 지역에 살면서 부유한 업을 밑받침으로 예의와 문행文行을 가르친다면 살지 못할 지역은 아니다.
- 이중환, 이익성 역, <택리지>, 을유문화사, 2010, 89p, 팔도총론 전라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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