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차 학교를 가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한 번은 어느 초등학교에 갔는데 실제 사람크기만한 마네킹 사진이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다름아닌 그 학교 담당 경찰관이었습니다. 학교폭력 담당 경찰관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밝게 웃고 있는 경찰관의 표정과 다르게, 제 마음은 '학교문제에까지 경찰관이 간섭해야 하는 시절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무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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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토 아사오內藤朝雄 교수의 『이지메의 구조』를 읽고난 뒤, 그 생각이 얼마나 짧은 생각, 아니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알게 됐습니다. 학교내 따돌림 문제나 폭력의 수준은 그냥 방치해서는 안되는 수준입니다. 피해 당사자에게는 생을 포기할만큼 큰 고통이니까요. 그럼에도 낭만적인 감상에 사로잡혀 마냥 간단하게만 생각했던 게 불찰이었습니다.
이제 따돌림과 폭행 등의 문제를 책에서와 같이 '이지메'라고 부르겠습니다. 이지메가 단순히 강한 아이가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것이라고 보는 편협한 시각은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합니다. 마치 가해학생 엄마가 '우리 아이는 착한데 친구를 잘못 만나서'라고 변명하는 것만큼이나 말이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이, 어떤 악인惡人이 있어 그가 모든 잘못의 원인이라고 보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어떤 구조와 시스템 안에서 그렇게 행동하도록 방치한 탓과 성찰하지 않는 개인의 잘못이 있을 뿐이죠. 이지메의 문제도 근본적으로는 이와 같다고 나이토 아사오內藤朝雄 교수는 말합니다. 특히, 개인의 문제보다는 이지메가 발생하도록 만들고 방치하는 인간의 심리적 매커니즘과 교육제도·시스템에 주목합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따돌려서는 이지메가 되지 않죠. 기본적으로 한 사람 혹은 아주 소수를 상대로 몇몇 주동자를 위시한 절대다수가 행하는 형태입니다. 그 형태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 이외에도 협박 등을 통해 공포심을 주거나, 욕설·비하로 언어적 공격을 한다던지, 굴욕감을 줄 수 있는 행동을 강요하는 등 다양합니다. 이런 행동에 놀란 외부인들의 지적이나 비판에 가해당사자들은 '왜 문제가 되는지를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그른'것은, 집단 구성원이 서로 공명하는 세계에 금이 가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인권이나 휴머니즘을 생리적으로 혐오한다. 그런 것들은 그들 나름의 윤리질서에 비춰봤을 때 정말이지 '그른'것이다.
즉, 학교내 이지메를 하는 아이들도 (그것이 옳던 그르던) 제 나름대로의 규칙과 룰에 의해서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것을 '군생질서'라고 명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생질서에 익숙하고 그것을 따르는 사람의 관점에서 사회 일반의 가치와 규범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군생질서에 순응하는 학생들의 심리를 분석하는데, 이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집단으로서의 전능감'안에서 개인의 안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심리라고 말합니다. 학생들은 학교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제한적인 인간관계만을 강요받게 됩니다. 이런 환경에서 서로에 대한 공포와 경계 때문에 무리를 짓고 그안에서 불안을 떨치고 싶어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약한 아이 한 명이 희생양이 된다면 주동자 외에도 다수가 이에 편승해 버립니다. 자신은 따돌림 당하는 쪽이 아니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 집단화된 이런 행위들은 집단의 힘을 증명함과 동시에 희구의 대상이 됩니다. 피해학생을 어떻게든 파괴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전능함을 맛봄으로써 만족감과 안정감을 얻는 것입니다.
허나 저자는 이지메가 인간본성에 따른 자연적인 발화가 아니라고 봅니다. 악한 내재태內在態는 있을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내재태가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에 발생하는 특수한 현상이라는 것이죠. 가해자들은 환경변화에 따른 이해관계의 변동에 따라 재빨리 태도를 수정하거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돌변하기도 하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유태인을 가스실로 보내는데 열심이었던 아이히만이 전쟁이 끝나고 남미로 도망쳤을 때 다시 평범하고 사람좋은 옆집 아저씨로 살아갔던 것처럼 말입니다.
보통 가해자들은 위험을 느끼면 재빨리 손을 뗀다. 그 민첩함은 피해자 입장에서도 허망할 정도이다. 손실이 예기되는 경우에는 안전한 대상을 새로 찾아내 그 쪽으로 이동한다. 가해자의 행동은 전능으로 일관하면서도 철두철미하게 이해타산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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