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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사회

[황혼길 서러워라 - 제정임 외] 현대판 고려장의 실태를 고발한다


황혼길 서러워라

저자
제정임 편 지음
출판사
오월의봄 | 2013-12-27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대한민국 노인들은 슬프다! 『황혼길 서러워라』저널리즘스쿨의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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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상종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할 때 비슷한 수준의 집안이 만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결혼 뿐이 아닙니다. 대학생들이 고졸친구를 새롭게 사귀고 함께하는 경우도 찾기 어렵습니다. 대개 대학생은 대학생끼리, 고졸은 고졸끼리 어울리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이 스스로를 규정한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한 인간을 규정하는 조건이 비슷할 수록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거리나 관심사가 많기 때문일 겁니다. 


반대로 유유상종 때문에 같은 사회에서 살지만 보이지 않는 장막에 가려 서로를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중, '세대적인 차이'는 지위와 환경 못지 않게 서로를 가리는 장막입니다. 청장년층에게 노년층은 쉽게 어울리기 어려운 대상입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지요. 경제적인 부분에서 시간적여유까지 서로가 동등하게 공유할 만한 점이 적습니다. 문화적인 배경 또한 매우 상이하기 때문에 상호 간의 이해나 교류 역시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상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청장년이 출근길에 이용하는 지하철에는 노년층이 다수 탑승 중이고, 노년층이 많이 머무는 종로3가역에서 청장년층의 만남이 많이 이뤄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만 서로의 의식이 같은 공간, 다른 세계에 머물고 있을 뿐이지요.



서로 간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대전제에 동의한다고 가정하십시다. 또, (일부) 노년층이 청장년층에게 관심이 없는 점이나 이해하려 들지 않는 점은 차치하구요. 그렇다면 청장년층이 노년층에 관심을 가지고 이해해 보려 시도해 봐야 한다는 필요성이 남게 됩니다. 일부 기사의 박카스 아줌마나, 무료급식소에 줄서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 같이 단편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상대를 이해하는 것은 위험한 시도입니다. 소위, 성급한 일반화에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 보다 깊이 구조적인 면을 이해하지 않고서 몇몇 표본으로 상대의 전체에 대해 결론을 내리면 필시 낭패를 보고 말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황혼길 서러워라>는 제정임 교수가 가르치는 제자들이 꾸리는 '단비뉴스'의 기사 중 노인문제 주제의 기사들을 모아 펴낸 책입니다. 이전에 안철수(당시에는 대선 후보)의원이 언급해 화제가 됐던 <벼랑에 선 사람들>을 펴냈던 그 단비뉴스 말입니다. <벼랑에 선 사람들>때도 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의 가장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많은 공감을 표해줬지요. 이번 <황혼길 서러워라>에서 단비뉴스가 취재한 노인문제는 그 중에서도 특히 뒤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이지요. 사회적 약자, 그 중에서도 특히 취약한 여성, 장애인, 노인 계층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그들이 현재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대한민국의 현재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가장 예민한 바로미터이기 때문입니다.


<황혼길 서러워라>는 총 6개 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간략히 소개를 해보겠습니다. 1장은 농촌노인에 관한 문제입니다. 젊은이들이 모두 떠나간 농촌을 지키고 있는 어르신들은 경제적 궁핍은 물론, 의료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지요. 또한, 새로 유입되거나 태어나는 사람이 없으니 외로움도 큽니다. 문제에 대한 지적도 날카롭습니다만,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한 몇몇 지역의 사례를 들어 지자체와 복지기관들의 능동적인 역할과 지원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장입니다. 전북 완주군의 용진농협이 시행하고 있는 로컬푸드 생협사업이라던지, 전남 영광군 묘량면의 '여민동락 공동체'사업처럼 소개된 성공사례들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독자들께서도 느껴보실 수 있습니다.


2장에서는 치매와 간병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노년에 불현듯 찾아오는 치매는 본인은 물론 가족들에게 큰 고통과 부담입니다. 따라서 국가를 통한 요양서비스 제공과 지원이 요구되지만 현실에서는 제대로 시설도 갖추지 않은 채, '돈이 되기에' 설립된 요양시설이 많습니다. 기자는 스스로 요양보호소에 자원봉사자로 들어가 체험한 사실들을 기사에 옮겼는데 현장감이 뛰어나다는 생각과 함께 회한이 몰려옵니다. "공단 한 가운데에 '유배'된 노인들"이란 제목의 취재후기를 조금 옮겨봅니다.


'기자'에서 '자원봉사자'로 탈바꿈하려는 즈음에, 노인을 학대하는 현장만큼이나 가슴 아픈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장 생경했던 것은 '표정 없는 노인들'이었다. 처음 요양원에 들어섰을 때 만난 세 노인은 텔레비전과 게시판 앞에 각각 휠체어를 타고 앉아 있었지만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 바라봤다. 등 뒤로 사람이 오고가도, 다가가 인사를 건네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곳의 '정물'과 다름없었다.


- 제정임 외, <황혼길 서러워라>, 오월의봄, 2013, 104p


3장은 고령 노동의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이전에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아파트 경비원(보통 퇴직 후의 노년층이 담당하지요)을 크게 모욕줘서 문제가 됐던 사건을 기억하실 독자님도 계시겠습니다. 저도 케이크 배달을 지하철택배로 받아본 적이 있었는데 배달오신 분은 나이가 아주 지긋한 노인이셨던 적이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년층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에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지요. 경제적 수입 외에도 사회적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노년층에게도 일자리가 필요합니다. 헌데 '취업'이 장원급제처럼 여겨지는 지금 노인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구하기 어려운 현실이지요.


4장은 황혼육아를 다룹니다. 이미 자식들을 모두 키워 결혼까지 시켰지만 그 이후에도 손자손녀의 육아까지 담당하는 현재의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물론 손주손녀가 예쁘지 않을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겠느냐만 육아는 엄연히 고되고 힘든 중노동입니다. 노인들에게 이것은 더욱 힘에 부치지요. 지방 소도시에서 등산과 친목회 활동으로 즐겁게 노년을 보내던 권할머니는 서울의 아들집에 호출돼 손주를 돌봐주고 있습니다만, 다음과 같이 솔직한 어려움도 토로하십니다.


"애 보는 할머니들은 다 그럴 거에요. 다섯 시만 지나도 시계만 쳐다본다니까. 애 엄마가 이제 오나, 저제 오나..."


"한번은 애랑 둘이 있는데 그날따라 너무 힘이 부치는 거야. 너무 힘들어서 아들한테 전화해서 막 울었어요. 나 너무 힘들다고, 빨리 들어오라고. 아들은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 제정임 외, <황혼길 서러워라>, 오월의봄, 2013, 153~154pp.


5장은 노인 고독사의 문제에 관한 이야깁니다. 아무도 모르는 쓸쓸하고 차가운 방에서 홀로 세상을 떠나고도 알아보는 이가 없어 한참 뒤에나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요. 노인인구가 많은 일본에서는 한참 전에 고독사 처리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인구고령화에 이제 막 진입하는 우리에게도 멀지 않은 사례일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경남 의령군의 '독거노인 공동거주제'나 전북 장수군의 장두마을에서 시행중인 비슷한 공동거주 사례를 참고할 만 합니다. 서로간의 의지가 되어 고독함을 덜할 수 있을뿐더러, 응급상황 발생시에도 보다 신속히 대응할 수 있지요.


마지막 6장은 노인의 여가와 성에 관한 이야깁니다. 청장년층은 노인의 사랑과 성문제를 터부시 하는 경향이 있지요. 주책이라면서요.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욕구와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그렇게 대하는 것은 연령을 떠나 인간에 대한 모독입니다. 한 어르신 상담센터 누리집에 올라온 글의 한 대목이 소개돼 있는데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노인이 주책없다 하지 말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답답할 때도 있고, 창피하다는 생각도 합니다."


- 제정임 외, <황혼길 서러워라>, 오월의봄, 2013, 254p


자식세대의 눈과 한국적인 문화 속에서 노인들의 자연스런 욕구는 억제됩니다. 그래서 소위 '박카스 아줌마'라는 성매매도 심심찮게 일어납니다. 이것을 그대로 방치하면 위생상의 문제는 물론이고, 근본적으로 애정을 필요로 하는 노년층의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습니다. 


조금 길기는 했지만 <황혼길 서러워라>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해 드렸습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저의 평가는 많이 개입시키지 않았습니다. <황혼길 서러워라>를 읽은 많은 독자들의 평가처럼, 소개된 현실 자체가 독자님들께 시사하는 바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저의 중언부언보다는 현대판 고려장의 현실이 주는 충격이 독자님들의 내면에 큰 울림을 줄 것입니다.



서문에서 소개됐듯, 현재의 노년층은 일제의 압제와 전쟁의 잿더미에서 배고픈 성장기를 보냈고, 열악한 경제 환경에서 자신들의 부모와 자식을 부양했던 세대입니다. 집권여당이 좋아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빛나는 경제성장의 시기에 '산업역군'으로 불리며 국가경제를 재건하는 것도 모두 현재의 노년층이 담당했던 역할이지요. 하지만 그들은 그에 합당한 대우와 존경을 받지 못했습니다. 88년에 시작된 국민연금제도의 수혜를 전혀 받지 못했을 뿐더러, 지금에 와서는 자녀들로부터 봉양받는 입장도 못되는 것이지요.


이 리뷰를 읽는 독자님께서 혹여 대통령, 국회의원, 재벌회장님이 되실지라도 위에서 언급한 문제 단 하나를 제대로 해결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같이 평범하고 힘도 없는 독자들이 뭣하러 <황혼길 서러워라> 같은 책을 읽어야 할까요? 단비뉴스 취재팀의 어느 기자가 남긴 취재후기에서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조금 길 수 있지만 옮겨보려 합니다. 독자님들께서도 천천히 한번 곱씹어 볼만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현대판 고려장의 현실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조금은 보일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도 언젠가는 늙습니다.


노인들의 얘기에서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점은 그들이 어디를 가든 '눈치를 본다'는 사실이었다. 집에 있으면 가족들의 눈치를 봐야 했고, 음식점이나 술집, 카페 같은 곳에 가더라도 '왜 왔나' 하는 젊은이들의 눈총을 받았다. 내 돈 내고 먹으러 간 것인데도 종업원들은 보란 듯 그들을 차별했고, 젊은 손님들은 힐끔거리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


이번 취재를 계기로 내게 생긴 의미 있는 변화는 낯선 존재이기만 했던 노인들이 점차 '가까운 이웃'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들의 쓸쓸한 오늘이 머지않아 노인이 될 나의 부모님, 그리고 나의 내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하더라도, 돈이 없거나 병이 들더라도, 노인들이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곳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더불어 젊은 세대와 노년층 사이에 교류할 수 있는 통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도 느꼈다. 우리의 부모, 조부모일 수 있는 노인들에게 왜 우리는 차갑고 냉담한 시선을 보냈던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인과 젊은이들이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길 바란다. 서로에게 상처 대신 용기를 주는 사이가 될 수 있도록.


- 제정임 외, <황혼길 서러워라>, 오월의봄, 2013, 281~282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