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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인물

[김성근이다 - 김성근] 김성근 리더십이 각광 받는 이유

 


김성근이다

저자
김성근 지음
출판사
다산라이프 | 2011-12-23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야신 김성근의 야구에 대한 열정과 세상과의 고독한 싸움 “인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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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프로야구 쌍방울 레이더스의 팬이었다. 전주구장을 홈으로 쓰는 이 구단은 창단 초기부터 문제가 많았다. 프로야구단을 운영할만한 규모가 되지 않는 모기업이 무리수를 둬서 창단을 강행했는가 하면(미원과 컨소시엄 구성으로 KBO 승인 후 일방적인 독자창단), 선수 수급에서도 어려움이 많아 신인 아니면 타 구단에서 방출된 선수, 혹은 전성기가 한참 지난 노장 선수들로 팀을 꾸릴 수밖에 없었다. 이 오합지졸 팀은 만년 하위권을 맴돌았다. 김기태, 조규제, 박경완 등 걸출한 신인스타들이 등장하기는 했어도 팀 전력은 리그 하위권이었다. 아버지가 쌍방울 그룹 산하의 회사에 근무하셨던 터라 자연스럽게 쌍방울 레이더스 어린이 야구단의 회원이 됐고 유니폼과 선수들의 화보집, 사인볼, 배트 등이 집으로 왔다. 본격적으로 야구장을 다닌 것도 그 쯤이다. 어린 초등생이 매일 같이 버스로 30~40분이 떨어진 야구장 출퇴근을 시작한 것이다. 브라보콘과 컵라면을 사먹을 천원짜리 하나 들고서.


매일같이 패배기록을 갈아치우던 이 팀이 어느 순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1루 덕아웃 아래서 목소리 카랑카랑한 감독이 판정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튀어나오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그가 바로 기적의 조련사 김성근,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이었다. 지금이야 고희를 넘긴 노인이지만 그 당시에는 아직 환갑이 되기 전이었으니 그 강렬한 카리스마가 1루쪽 관중석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사실 성질 더럽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은 당시에 해태 타이거즈의 향수에 젖어 홈팀인 레이더스를 외면했었다. 홈팀인 레이더스가 홈구장 전주구장에서 해태만 만나면 오히려 홈팬들에게 외면당하는 이상한 풍경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96시즌부터였다. 만년 꼴지 레이더스가 무려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팬들은 열광했고 달라진 레이더스는 '공포의 외인구단'이란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다음 시즌 정규리그에서도 3위를 차지하면서 전년도의 성적이 우연이 아님을 증명했다. 물론 김성근 감독에게는 꼴찌팀을 우승경쟁팀으로 변모시키는 명장의 이미지가 더해졌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이라고 쓰고 SK와이번스의 실질적인 전신이라고 부른다. 물론 SK는 태평양 돌핀스의 후예를 자처하지만) 쌍방울 레이더스의 전성기를 이뤄낸 감독. 이후에도 LG 감독으로서 한국시리즈에 진출(이 때 다 잡은 우승을 이승엽과 마해영에게 홈런 두 방을 맞고 헌납했다)하기도 했고 SK와이번스 감독으로서 3번의 우승과 1번의 준우승을 이룬 감독. 그가 바로 김성근이다. 허나 우리가 김성근 감독에 열광하는 것은 그가 거둔 우승기록과 성적때문이 아니다. 그는 70이 다 되어서야 겨우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룬 감독이지 않은가. 우승과 성적으로만 따지자면 김응용 감독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김성근과 그의 리더십에 주목하는 것일까? 그의 리더십은 아버지 리더십, 일구이무日求二無의 리더십 등으로 대표된다. 하지만 이런 단어들로만 김성근의 리더십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의 야구철학과 거기에서 비롯된 인생철학까지 <김성근이다>에 정리돼 있다. 그의 리더십을 이해하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다.  김성근 감독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것은 단순히 야구 이야기가 아닌, 삶과 인생에 대한 깊은 이해가 바탕이 된 철학이란 생각이 든다.


결단은 모든 것을 다 얻겠다는 마음에서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얼마나 과감하게 버릴 수 있냐가 중요하다. 이거 할까 저거 할까 망설이면 절대 결단을 내릴 수 없다. 잃을 것을 확실하게 정리하고 들어가야 한다. 버릴 때 필요한 게 용기다. 머릿속에서 미리 계산을 다 해두어야 용기를 낼 수 있다.


- 김성근, <김성근이다>, 다산라이프, 2011


인생의 갈림길 앞에선 사람이 이 대목을 읽었을 때 이것은 훌륭한 충고가 될 수 있다. 야구장에서 승부의 길목에 선 그의 판단은 인생의 판단에도 요긴하게 쓰일 법 하다. 실제로 주변을 살펴보면 인생의 갈림길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쭈물 오늘만 대충 수습하고 사는 사람들,  많지 않은가. 내 주변에도 인생의 큰 물줄기가 갈리는 길목을 앞에 두고도 오늘도 한 잔, 내일도 한 잔으로 허송세월을 보내며 주저하여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들에게 김성근의 이 조언을 꼭 전하고 싶다. 물론 이 예시 전에 있는 야구장에서의 사례를 덧붙여 읽었다면 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 노감독의 혜안은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한 조언에서도 이어진다.


배움이라는 것은 구두닦이에게도 배울 게 있다. 배울 자세가 되어 있냐 아니냐의 문제다. 모든 손가락이 자신을 향하게 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인내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길가에서 사과를 파는 사람은 그 먼지 나는 길 위에서 고민하는 게 있다. 먼지 속에서도 사과의 붉은 빛이 반짝거리도록 상처 나지 않게 잘 닦아야 하고, 닦은 사과의 어느 쪽을 앞으로 해야 햇빛에 반사돼서 예쁘게 보일지도 고민한다. 사과를 놓는 각도까지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다 사람의 지혜다. 내가 나이가 들수록 배울 게 더 많은 것이 이런 이유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사람의 지혜가 담겨 있어서 배울 게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이다. 


- 김성근, <김성근이다>, 다산라이프, 2011


조금만 배워도, 조금만 좋은 자리에 가도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이 천지에 널렸고, 새로운 것과 자신이 몰랐던 부분에 대해 배우기를 거부하며 '예전엔 다 그렇게 했어' 모드로 사는 사람이 넘치는 지금 꽤 유용한 조언이다. "셋이 같은 길을 걸어도 그 중에 스승이 있을 수 있다"는 격언은 오만한 현대인들에게 무의미해진지 오래다. 그런데 김감독은 배울 '자세의 문제'부터 거론한다. 바로 그 오만함부터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아무리 재능이 넘치고 뛰어난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그 마음자세가 오만으로 가득차 있다면 과연 누구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의 성장은 더이상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김감독의 지적은 불치하문不恥下問이란 말의 의미를 새삼 떠올려보게 한다.


우리 사회(의 일부분으)로부터 수없이 많은 비난과 비판에 섰던 김성근은 오히려 이 사회를 위한, 조금은 따끔하지만 애정있는 조언 역시 서슴지 않는다. 아마 그래서 더 '모난 사람'으로 낙인찍혀 미움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둥글게둥글게'를 외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마음먹은 가치를 실현하려면 '모난놈' 취급은 아주 일반적이다. 그리고 아주 피곤한 삶을 살게된다. 하지만 옹졸한 사고를 벗어나서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이 사회를 위한 김성근의 충고는 재고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맹목적인 둥글게보다, 이유있는 모남이 사회의 발전과 개인들의 성장에 더 유익하지 않을까? 세태에 쉽게 순응하고 피할 수 없는 갈등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경계할 일이다.


우리 사회는 공로자에 대한 예우가 부족하지 않나 싶다. 그런 것을 높이 사줘야 하는데, 새로운 것으로만 채우려고 급급하다. 새로운 추진력, 열정만 중요하게 생각한다. 뭐든지 지나버리면 끝이고, 버리기 바쁘다. 젊은 열정이 중요하긴 하지만 많은 경험이 없으면 계속 시행착오만 일어난다.


- 김성근, <김성근이다>, 다산라이프, 2011


사람을 마치 소모품처럼 생각하는 지금 매우 와닿는 조언이다. 말로만 독립유공자와 국가유공자를 존경하고 실제로는 그에 준하는 예우를 할 줄 모르는 우리 사회의 문제도 생각난다. 평생 야구밖에 모르고 살아온 노감독이 보기에도 한국사회의 가치관은 어느 부분에서 극으로 전도돼 있는 것처럼 보였나보다. 특히 고용불안정과 함께 더욱 심각해진 '인간 가치의 하락'이 그렇다. 냉혹한 프로의 세계에서 실력이 없으면 밀리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조금만 나이들면 지금까지 제 아무리 팀에 공헌이 크고, 베테랑으로서 젊은 선수들의 모범이 되는 선수라도 방출 혹은 트레이드 시키버리는 것이 과연 옳을까 싶다. (조금 핀트는 다르지만 롯데프런트가 최동원을 삼성에 트레이드 시킬 줄 롯데팬들이 설마 상상이나 했겠나...)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수많은 경험을 쌓은 선수들을 단순히 젊은 선수들로만 바꿔넣겠다는 것은 2~3년만 지나면 자동차고 휴대폰이고 새것으로 바꿔치기 하는 우리네를 닮았다.

 

김성근의 말이 논문 표절 의혹에 휘말린 언니의 독설보다 더 와 닿는 것은 진정성 때문이다. 실제로 자신의 말과 행동이 본인의 삶의 궤적과 고비마다 내린 결정들로 증명된다. <김성근이다> 외에도 그와 관련된, 그가 한 인터뷰나 책이 많다. 방송 영상들도 많다. 그 많은 책과 인터뷰, 방송에서 했던 본인의 말이 지극히 일관적이다. 고집스럽다고 생각할 정도로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그것을 실제 자신의 삶으로 증명하는 사람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신뢰와 존경은 바로 일관된 태도로 인한 예측가능함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어떤 그룹 광고같다)

 

김성근 야구 일본식이다, 김성근 야구 더럽다, 김성근 야구 재미없다, 김성근 권위적이다, 김성근 선수 혹사시킨다 등등 그와 그의 야구에 관련된 논란과 비난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분명히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김성근의 삶과 그의 인생철학이 주는 교훈 역시 유의미한 것도 사실이다. 야구해설가 하일성 씨나 허구연 씨의 말처럼 야구를 통해 인생을 배운다고 하는데 30년이 넘는 야구감독생활을 통해 터득한 진리가 인생에 통하지 않을리 없지 않은가. 또, 꼴찌를 선두로 등극시키는 기적을 만들어내는 그의 야구는 인생이란 게임에서 잠시 낙오되고 뒤쳐진 이들에게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한 번 실패하면 좌절하고 재기가 어려운 우리 사회에 등불과 같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먼 길을 가다가 잠시 지쳤을 때, 목적지를 잠시 잊었을 때, 의지가 무너질 때 김성근의 이야기를 들어보길 바란다. 굳이 <김성근이다>를 읽지 않아도 된다. 김감독이 출연한 인터뷰나 다큐멘터리도 많으니. 지친 이에게는 새로운 기운을, 방황하는 이에게는 초심을, 의지가 무너진 자에게는 용기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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