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많은 나이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이다.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수십 년의 시간을 살아내면 언젠가는 삶의 끝이 도둑과 같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누구나 이 사실을 알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그 사실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늘의 미련, 잘 해봐야 내일의 욕심을 위해 순간순간에 매달린다.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로, 절로, 성당으로 '좋은 말씀'을 들으러 가서 다음 일주일을 버틸 만큼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자위하지만 그건 결국 금단증상이 동반된 중독에 다름아니다. 목사님이, 스님이, 신부님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며 삶의 만족을 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말 중에 '반면교사反面敎師'가 있다. 어떤 부분이 됐건, 나보다 오래 살거나, 사회적 명성이나 재산 등에서 많은 성취를 이뤄내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이 내게는 어떤 스승보다도 훌륭한 반면교사다. 특히 (당사자들에겐 미안하지만) 가까이에 있는 지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낀다. 결과는 명확하게 나뉜다. 내가 가장 닮고 싶어하는 이들은 자기 중심을 잡고 내면의 행복을 찾아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비록 고루한 일상이지만 그 안에서도 자신의 영혼이 내지르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들은 '단순히 남들이 뭐 한대서' 비슷비슷하게 사는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남들이 뭐 한대서' 따라하며 살면서도 정작 자신이 왜 불행한가에 대한 성찰과 분석은 미뤄둔 채 단순히 세상을 원망하거나 비겁한 이기심으로 결계를 치고 사는 사람들, 한국사회의 불행은 이들이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한다는데서 시작된다.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조현이 쓴 <그리스 인생 학교>는 이 잔인한 현실에 매몰돼 스스로를 잃어버려 가는 한국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독서여행기다. 저자인 조현은 직접 그리스와 크레타, 터키를 돌아보며 여행을 했지만 독자는 이 책을 읽어가며 비루한 일상에서도 스스로의 자아를 찾아가는 여행을 할 수 있다. 물론 여행도 현지에 관해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으니 <그리스 인생 학교>가 안내하는 여행 역시 독자가 자신에 대해 사색하고 고뇌한만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용기있는 독자라면, 아니 내면의 아우성을 차갑게 방치했던 독자라면 한 번쯤은 꼭 권해보고 싶은 여행이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기도 하지만 도전하는 만큼 보이기도 하는 법이다.
총 16챕터로 구성돼 있는 <그리스 인생 학교>는 저자가 아토스산, 산토리니, 스파르타, 델포이, 아테네, 크레타, 트로이(트루바) 등 고대 그리스세계의 주요 무대를 돌아보며 각 장소에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각 챕터별로 정리했다. 일일이 그 내용을 소개하기는 어렵지만 저자의 여행은 단순히 경치가 아름답다거나 어느 맛집이 좋고 어느 게스트하우스가 좋다는 내용이 아니다. (그런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건 론리플래닛을 펼쳐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저자가 다녀온 여행은 현대서양문명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고대 그리스의 문명과 신화, 영성, 인물 등을 느껴보려 했기에 책장을 덮고 나면 영혼이 위로받는 느낌이다. 같은 장소를 다녀온 누군가가 저자와 같은 여행후기를 들려줬다면 나는 이미 진작에 그리스를 다녀왔을 것이다. (사실 다녀온 이들이 내놓은 후기라는 게 '산토리니에 가서 나 이렇게 놀았다'는 자랑으로 올린 사진 몇 장 본게 전부다)
수많은 이야기와 신화가 있던 땅이고 우리도 이름을 알 정도의 현자들과 철학자들이 활동했던 무대 그리스. 각 챕터별로 등장하는 이야기나 신화, 인물이 차이가 있지만 어느 챕터에서나 저자가 들려주는 고대 그리스의 지혜가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의 가슴에 깊이 와닿는다. 수천 년 전을 살아갔던 사람들과 우리는 서로 다른 시공간을 살아가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동일한 환경과 사람들에 둘러쌓여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기 감정의 소음이 줄고 타심他心의 소리를 더 크게 들을 수 있을 때 관계가 원활해지는 것은 분명하다. 현대인들이 '관계'와 '소통'에 힘들어하는 것도 자기 속에만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어 '엑스타시스'는 '밖에 서 있다'는 뜻이다. 자신 속에서 빠져나올 때 황홀경을 체험할 수 있다. 그 축복으 혼자만의 것은 아니다. '자기'란 히스테리(자궁)와 동굴 속에서 나올 때 상대와 공명과 공감이 가능해진다. 미숙과 성숙의 차이는 주관 속엣만 빠져 있느냐, '내 생각'에서 나와 객관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으냐의 여부다.
- 조현, <그리스 인생 학교>, 휴, 2013, 244p.
얼마 전 한 보도에서 직장인 10명 중 6명이 관계를 위해 '거짓 우정'을 보인 적이 있다는 응답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나'라는 동굴을 벗어나 또다른 '나'의 동굴을 벗어난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망스런 결과다. 우리의 일상은 그저 스스로의 동굴 속에 갇혀 있으면서 아니 그런 척,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대다수를 직장에서 보내는 현대인에게 이는 큰 고통이다.
그럼 교실 안에서 불편한 사이나 같은 사무실 안의 어색한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상대가 먼저 다가오길 기다리는 것은 수동적일 뿐더러 '좋은 관계' 맺기에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상대도 나만큼 불편함과 어색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세노폰의 말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당신이 상대방에게 협조와 사랑을 기대하고 있을 때, 상대방도 당신에게 관심과 배려를 기대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
- 조현, <그리스 인생 학교>, 휴, 2013, 246p.
행복한 삶을 위한 첫 단추는 바로 '좋은 관계 맺기'다. 제 아무리 지위가 높고 소유한 것이 많아도 그것은 결국 주변의 사람들과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한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누군가의 입버릇처럼 이 모든 것이 결국 '한 인생 행복해지고자 하는 것' 아니던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를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되고, 자신의 히스테리에서 벗어나는 자유는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무대였던 크레타섬을 방문했을 때 저자가 겪은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누구나 자유를 동경하고 행복을 꿈꾸는 이 시대 사람들과 꼭 공유하고 싶었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게 스스로의 불행을 털어놓거나 위로받으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한다.
"왜 자꾸 남과 비교하지? 너는 네 길을 가라. 욕 좀 먹으면 어떻고 무시 좀 받으면 어때. 노예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한테. 조르바가 널 봤다면 당장 '두목, 당장 때려치우쇼!'라고 호통을 치면서 포도주를 벌컥벌컥 마셨을거다"
당신 안에는 이미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 자질과 신성神性이 존재하고 있다. 스스로를 믿고 용기를 내라. 저자가 만난 고대 그리스의 현자들은 그렇게 말했다.
행복은 무엇이 된 결과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정인 지금 여기에서 좋은 것인데, 사람들은 자기가 꿈꾸는 삶을 사는 이들을 동경만 하고 그렇게 되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자기가 아닌 누군가가 되려는 갈망이 과연 행복을 가져다 줄까. 크레타 섬 역사박물관 직원의 말이 정곡을 찌른다. 조르바를 좋아한다는 그에게 조르바의 삶을 동경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한다.
"조르바를 좋아하긴 하지만 조르바는 조르바, 나는 나."
- 조현, <그리스 인생 학교>, 휴, 2013, 2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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