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이용해 충남 부여에 다녀왔다. 그 유람은 유람대로 풀어볼 생각이다. 헌데 낙화암落花巖 아래 자리하고 있는 고란사皐蘭寺란 절에 갔을 때 한 켠에 가득 쌓여있는 기와장들을 보면서 재밌는 생각이 들었다.
별 건 아니다. 고란사는 낙화암 바로 아래 자리하고 있는 조그만 절이다. 그 위치상 낙화암과는 따로 생각할 수 없다. 낙화암이 어딘가. 요새는 돈주고 사기도 어려운 '절개'를 지키겠다며 3천명이나 되는 궁녀가 투신을 했다는 전설이 남은 곳 아닌가. 그 원혼은 원혼대로 억울하겠다만 지금 시대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그게 옳으냐 그르냐는 제쳐두고) 의기가 서린 장소가 바로 낙화암인 것이다.
돈 몇 억이면 대신 감옥생활도 해주겠다는 사람이 널린 마당에 낙화암에 남은 전설이 남기는 메시지는 해석하기 나름이다. 특히, 돈이면 뭐든지 된다는 인간들 이전에 돈으로도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궁녀들은 돈 한 푼 안되는 짓에 목숨을 걸지 않았던가) 이런 생각이 들면 일상에서 물신에 찌든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불교에서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란 말을 많이 쓴다. 사찰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곳이니 불법을 들어본 이들은 많이 들어봤을 말이다. 조계종 총무원에 따르면 이 말은 '일생이 허무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재물에 대한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1999년 9월 8일 동아일보 생활/문화면 기사 참조) 그런 절집에다가 소원을 담은 기와장을 수 백장이나 쌓아둘 필요가 있었을까. (좀 살펴보니 거의 '사업번창하게 해주세요','부자되세요' 등등 돈벌고 싶다는 이야기가 70% 이상)
부처님께서는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것이 사람의 일생이니 재물을 탐하지 말고 살라 가르치셨다. 의자왕의 궁녀들은 적의 손에 사로잡혀 죽거나 혹은 팔려가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했다.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 굴욕적이더라도 더 살고 싶다는 본능을 거스른 사람들의 흔적이 남은 공간에 오늘 무엇을 남기고 왔는가. 장당 만원씩(더 비싸나?) 염가에 판매하는 구복신앙 기와장이 덩그러니 남았을 뿐이다. 앞서간 이들은 우리에게 재물을 과하게 탐하지 말고 의롭게 살라고 했건만 우리는 그곳에 '부자될래요'라는 소원을 빌고 왔다.
가족의 건강과 행복, 주위 사람들의 평안을 빌어주는 기와장도 많았다. 그들까지 도매금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와장에 아주 많이, 또 자주 눈에 띄는 '재물에 대한 욕망'이 낙화암과 그 아래 사찰이 주는 교훈과 묘한 역설적 앙상블을 이뤘기에 느낀 일종의 비애감을 말한 것이다. 비단 절집만 그러한가. 십일조를 꾸준히 바치니까 누구누구가 부자가 됐더라는 설교를 하는 교회의 풍경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풍경들은 빛바랜 십자가요, 불상에 다름아니다.
살기가 고달프고 힘들어서 돈에라도 의지하려는 그 맘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한국사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힘든 사회인 거 다들 잘 안다. 돈이 잠시 허락한 자유에 의탁해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는 불안한 평안에 잠시라도 머물고 싶은 인간의 나약함은 나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인간적 한계다. 다만 황금의 간계에 휘말려 그를 숭배하고 그의 논리대로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이 얼마나 메마를지 성찰하지 않는 것은 걱정스럽다. 그 걱정을 아주 오래전부터 지적했던 신의 공간에 가서도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를 빌고 오는 건 약이 없을 것 같다. 나같은 인간이야 속이 좁아서 이럴 지는 몰라도 신의 넓으신 아량은 재물에라도 의탁하려는 인간들의 마음을 가련하게 여겨주시지 않을까. 인간의 옹졸한 욕망이 쌓여있거나 말거나 백마강은 말없이 도도하게 흐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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