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취재차 벙커1에 들렀습니다. 벙커1은 대학로 서울사대부속초교 바로 뒤 한적한 골목에 위치해서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하긴 벙커가 눈에 잘 띄는 곳에 있어도 이상하겠지만요) 전 나는 꼼수다 봉주 13회에서 김어준 총수가 나꼼수 문화·예술편이라고 소개한 ‘나는 딴따라다’(이하 나딴따)의 실제 녹음 현장을 보러 갔습니다. 5월 30일 오전 11시에 벙커1에서 나딴따 2화의 녹음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이미 1회는 녹음되어 김용민 PD에게 넘겨졌으나 나꼼수팀이 유럽에 강연을 하러 가는 바람에 김용민 PD의 편집이 늦어져 업로드가 안 된 것이더군요.
벙커1 지하 스튜디오
지하에 위치한 벙커1의 스튜디오 모습입니다. 원래 수십 명의 사람들이 직접 녹음을 들으러 왔는데 이 사진 찍을 때는 화장실도 가고 어디론가 돌아다녀서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이네요. 진행자도 자유롭게 진행하지만 관객이나 청취자도 자유롭게 듣는, 역시 딴지다운 분위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알려진 보도처럼 진행자는 탁현민, 김조광수, 곽현화 세 명이 맡았습니다. 나꼼수에 총수, 악마기자, 목사아들돼지, 위대한 정치인이 있었고 나꼽살에 여왕벌 누나와 선띨, 우띨이 있었다면 나딴따에는 큰 언니(김조광수), 탁 오빠(탁현민), 현화(아직 미정인 듯, 곽현화)가 있었습니다. 일반인이 보기엔 묘한 호칭이지만 아는 사람은 ‘아하’하는 생각이 드는 네이밍 센스죠.
*이하에서도 위 호칭으로 이름을 대신합니다.
**여기서부터는 꽤 디테일한 나딴따 2회의 스포(편집 후에 어떻게 재탄생 할지는 모르나)가 될 것이므로 원치 않는 분은 창을 닫아주세요.
사전회의에서는 나꼼수와 진보규정논쟁, 나꼼수 팬덤 등 예민한 주제로 묘한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트위터에서 진행자들의 트윗을 찾아보신 분들을 아시겠지만 큰 언니는 나꼼수 비키니 논란 당시 이를 비판하는 입장이었죠. 반면 탁 오빠는 나꼼수에 대한 오해라는 입장이었구요. 각각의 포지션 상 약간의 긴장감은 진행자 섭외부터 안고 간다고 봤어야 됐죠.
11:30이 돼서야 본격적인 녹음이 시작됐습니다. 각자의 활동과 근황을 물으며 가볍게 시작했습니다. 현화가 찍었다는 영화 얘기부터 탁오빠의 분수덕후, 큰 언니의 ‘두결한장’(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6월 21일 개봉) 이야기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조성됐습니다.
탁 오빠의 말에 의하면 처음 김총수가 문화판 나꼼수를 만들기 위해 세 사람을 섭외할 때 ‘무슨 이야기를 해도 좋으나 각종 소송이나 압력 등은 해결해 줄 수 없으니 알아서 책임져라’는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탁 오빠 역시 그런 것 신경 쓰지 않고 나가겠다고 함으로써 나꼼수의 독설을 문화판으로 들을 수 있겠다는 기대가 들기도 했습니다.
나딴따는 아직 정식 공개되어 대중의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회차도 2회에 불과하기 때문에 진행자들 서로 간에도 어색하고 방송의 프레임이 아직 자리잡지 못해 진행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엿보였습니다. 김총수는 나는꼼수다 봉주13회를 통해 "'나는 딴따라다'는 문화, 예술 분야를 기본으로 정치까지 다 아우를 것이다"고 밝혔으나 기본적인 시작은 정치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것은 나딴따 2화를 녹음하던 주제를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날 다루기로 한 주제는 총 3가지 였습니다.
1. 김연아 사건(교생 실습 관련 논란) VS 문대성 논문표절 논란
2. 나는 꼼수다와 진중권
3. 공지영과 트위터
첫 번째 주제인 김연아와 문대성 이야기에서 문대성 의원 쪽은 거의 다루지 않았습니다. 할 말이 없다는 태도였죠. 이미 X됐는데 뭘 더 거론하느냐 이런 분위기였죠. 탁 오빠가 ‘다시 박사를 따면 되는 것 아니냐’는 문 의원의 드립을 재탕해서 빵터지기도 했습니다. 대화는 김연아 교생실습과 연세대 황상민 교수, 동아대 정희준 교수의 발언을 한데 묶어 한국대학과 스포츠·연예인 스타의 관계를 논하는 쪽으로 흘렀습니다.
성공회대에서 겸임교수를 하며 김제동, 윤도현 등을 학생으로 가르쳐봤다는 탁 오빠는 연예인 스포츠 스타가 학업을 함께 하기가 어려움을 인정하는 편이었습니다. 예체능 계열의 학생들도 똑같이 바라봐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죠.
반면 한양대와 동국대 연극영화과 강단에서 아이돌 스타(이름은 끝내 밝히지 않음)를 가르쳐 봤다는 큰 언니는 조금이라도 불성실할 경우 단호히 F를 주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하시더군요. 탁 오빠와는 다르게 어쨌든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유지하는 이상 학생의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죠. 하지만 이로 인해 학교에서 특별하게 관리하는 연예인 스포츠 스타 학생을 곤란하게 만들어 본인이 부당한 압력을 받은 경험도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압력이란 대략 다음 학기 강의 빼라는 둥의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대학 4학년 때부터 방송일에 뛰어들었던 현화 역시 학교를 다니며 연예인 생활을 하는 것의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4학년 재학 당시 담당 교수에게 취업을 했으니 양해해 달라고 해도 학점이 D가 나왔다고 ‘당당히’ 밝혀 웃음을 주기도 했죠.
결국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서 연예인·스포츠 스타를 대학에서 특별히 대우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 졌는가’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진행자들의 의견을 늘어놓을 뿐이라는 탁 오빠의 정리로 결론을 내리는 시도는 없었습니다.
한편, 진행자들은 김연아를 언급한다는 사실 자체에 대단한 부담을 느끼는 척(?)을 했습니다. 성역화된 김연아에 대한 비판이 강한 역비난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 했죠. 그러면서 큰 언니는 황우석, 심형래, 김연아로 이어지는 강한 팬덤 뒤에는 사실 애국심 마케팅이 존재한다고 지적합니다. 탁 오빠는 스타가 어떻게 뜨느냐보다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매니지먼트의 핵심이라고 전제한 뒤, 김연아가 너무 소모되고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각종 CF는 물론 이제는 이런 논쟁의 가운데 서서 소송까지 벌인다는 것은 김연아를 지나치게 소모함으로써 김연아 자신에게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거였죠.
왼쪽 부터 곽현화, 탁현민, 김조광수
여기까지 1시간 30분여를 이야기하고 2~30분간 중간 휴식시간이 있었습니다. 휴식 후 바로 두 번째 주제인 나꼼수와 진중권을 다루기 시작했죠. 탁 오빠가 먼저 그닥 친하지도 나쁘지도 않았던 진중권 교수와의 관계가 나는 꼼수다 이후 트위터에서 몇 번의 논쟁을 거치면서 갈등하는 관계가 됐다고 합니다. 근데 탁 오빠가 진 교수와 밥도 한 번 같이 먹었다는 말에 현화가 변희재·낸시 랭 토론에서 ‘같이 밥 먹으면 친구’라는 낸시 랭 멘트를 읆어서 한바탕 웃었죠. 탁 오빠는 이후 진중권 교수와 자신 사이에 있던 갈등을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는 나꼼빠(나꼼수 골수팬)와 진빠(진중권 지지자)로 이어졌는데 큰 언니는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 탁 오빠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기본적으로 탁 오빠는 나는 꼼수다에 호의적인 반면, 큰 언니는 비판적인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묘한 긴장감 속에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죠. 큰 언니는 특히 나꼼수의 ‘닥치고~’라는 방식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트위터에서 상당한 활동을 하는 편이라 트위터 논쟁을 두고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기에서부터는 진보의 의미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성격 규정 등을 두고 첨예한 정치적 입장 대립 때문에 큰 언니와 탁 오빠 사이에 뜨거운 논쟁이 이어짐.
앞서 첫 번째 주제에서 다소 뜨거워질 뻔 했던 분위기를 웃음으로 수습해 나가던 현화도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더군요. 본인 스스로가 성적 소수자로 철저한 소수에 속한 큰 언니는 나꼼수와 탁 오빠 등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호의적인 사람들을 민주세력이라 할 수는 있어도 진보세력이라 할 수 없다고 전제한 뒤, 민주세력이 그들보다 소수인 진보세력들을 더 인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탁 오빠는 민주세력이라는 사람들도 (보수 쪽에 비해) 소수세력이고 진보적 소수세력이 대중성을 얻지 못하는 몇 가지 이유를 지적합니다. 이후 대화는 좀 더 뜨거워졌고 어느 부분에서는 다람취 쳇바퀴 돌 듯 반복을 계속할 뿐이었습니다.
이야기는 이들 나름의 대중성 획득에 대한 고민과 정권교체란 대의를 위해 가장 낮은 선에서 연대해야 한다는 쪽으로 흘렀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지다보니 과열된 분위기에서 탁 오빠는 진보 소수세력이 4가지가 없다고 말하고 큰 언니는 민주세력이 폭력적이라고 받아치면서 상호간 비판적 긴장이 이어졌죠. 여기에서 시간을 많이 소모해 녹음 시간을 4시간을 넘기려고 하더군요. 결국 진행자들도 지치고 각자의 이후 스케줄이 있어 세 번째 주제인 ‘공지영과 트위터’는 다루지 못하고 다음 회로 넘기기로 하고 녹음이 끝났습니다.
첫 번째 주제인 김연아와 교생실습 이야기에서는 김연아를 문화적 아이콘으로 다뤄 다소 금기시 되는 김연아 비판을 시도했고, 이를 문화적으로 평가했다는 신선함이 있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나꼼수와 진중권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정치색에 매몰되어 나딴따만의 컨텐츠를 만들어 내는데 실패한 점입니다. 새로운 분위기를 창조해 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나꼽살 처음 들을 때처럼 아직 뭔가 자리를 잡지 못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꼽살을 봤을 때, 금방 좋아질 거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녹음을 마치며 탁 오빠는
“나딴따는 가능하면 남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할 것이다. 특히 성역이라면 더욱 도전하겠다. 하지만 탐사보도를 기대하지는 말라. 우리는 그냥 우리 생각을 떠들 뿐이다.”
고 말해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서 터부시 되는 문화현상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것임을 예고했습니다.
정치를 벗어난 생활이란 생각하기 힘듭니다. 알게 모르게 누구나 정치의 영향을 받고 살고 있죠. 하지만 정치적 입장차와 갈등·오해만 확인해 버린 나딴따 2회는 아쉽습니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나딴따의 테마에 맞게 문화예술적 시각으로 나꼼수나 나꼽살과는 다른 색깔을 내줬으면 하는 것이죠. 그래서 나꼼수와는 따로 나딴따를 만든 것일테니까요.
이전에 나꼽살에선가 변영주 감독이 한 번 출연했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그 분도 모셨으면 더 재밌었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 때 깨알 같은 어휘선택과 촌철살인 멘트 구사로 큰 즐거움 주셨던 걸로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변 감독이 함께 진행했다면 더 재밌을 거란 개인적인 생각이 듭니다. 아직 업로드도 되지 않아 정체가 궁금한 ‘나는 딴따라다’. 과연 어떤 팟캐스트로 성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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