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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목메는 만두 1인분]

저는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하기를 즐깁니다. 수도하는 마음으로 혼자 조용히 운동을 하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죠. 건강은 담으로 얻는다 칩니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운동을 마친 후 샤워장에서 나와 제 사물함 앞에 섰습니다. 한 아주머니가 그 바닥에 만두 1인분을 놓고 드시고 있었습니다. 피트니스센터 곳곳을 청소해 주시는 아주머니시라 안면이 조금 있는 분입니다.

딱 제 사물함 앞자리라 부득이 양해를 구했습니다. 황급히 자리를 피해주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제 목이 컥 막힙니다. 맨 바닥에서 식사하는 것도 서러운데 회원들 눈치까지 보는 게 서글퍼져서 그랬나봅니다. 제 무딘 노동감수성에도 견디기 힘든 모습이지요. "식사 방해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린 뒤 서둘러 자리를 비워드렸습니다.

왜 제대로 된 곳에서 편안히 식사할 수 없었을까요. 일부러 궁상 떨려고 그랬던 것은 아닐테구요. 그렇게 해야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던 분명한 이유 혹은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 그게 참 슬펐습니다. 이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최소한의 대접도 못 받는 것인가란 질문 앞에서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습니다.

여기 담당매니저 같은 사람에게 항의하려다 말았습니다. 나름 오래된 회원이라 할 말은 하는 편이지만 참았습니다. 제가 "당신들 휴게실에서 식사하시게끔 해달라"고 말하면, 그들은 이제 맨바닥에서 끼니를 때우는 것조차 못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선의가 결과적으로 악의가 되어 전달되는 경험이 몇 번 있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울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인권의식이나 노동감수성의 수준에서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죠.

마을 사람들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돈만 밝히고 힘든 일은 안하려고 한다며 혀를 찼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젊은 사람들이 피하는 일이란 어떤 사람이라도 꺼릴 만한 일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누군가는 최악의 생활환경에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며 일하는게 문제 될 게 없다는 사고방식 말이다. 그런 생각은 엄하게 훈육받은 아이들이 장래에 성공한다는 믿음만큼이나 헛소리다.

도대체 왜 그래야 한단 말인가? 왜 누군가는 항상 고통 받으며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인가? 어째서 가장 영향력 없는 사람들만이 이 엉망진창인 사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인가?

- 한승태, <인간의 조건>, 시대의 창, 2013, 410~411pp.

생산수단이나 자본을 소유하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갑니다. 노동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나의 이야기고 내 가족의 이야기며 내 이웃과 동료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노동이란 말이 이데올로기로 덧칠돼 본래의 색깔을 잃은 곳이 바로 우리 사회이지요. '노동' 같은 곳에나 쓰는 단어로 전락한지 오래입니다. 노동자에 대한 처우나 대접도 그에 못지 않게 야박합니다.

노동자가 노동자를 푸대접하는 모순이 일상을 지배하는 사회. 오늘 제가 마주친 장면은 그 일부일 뿐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학교와 직장 곳곳에서 이런 모습을 적지 않게 목격했을 것입니다.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오늘 우리가 외면하는 그 모습이 나와는 무관한 이야기가 아님은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노동자를 푸대접하는 사회에서 노동자인 나의 처우와 대접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지독한 자기모순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별다른 힘도 없이 마음만 무거워지는 오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