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상상으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내가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이런 상상, 한 번쯤은 해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영화 <천군>을 보셨다면 아마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일 것입니다. 현대의 군인들이 수류탄이나 소총을 들고 과거 1572년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의 영화지요. 이들이 가진 무기는 현대에 있어 재래식무기라고 불리지요. 허나 영화에서는 두만강 국경에서 여진족과 상대하는데 있어서 최신식 무기로 탈바꿈합니다. 활과 검, 창 등으로 무장하고 돌격전을 감행하는 적에 있어 소총이나 수류탄은 그야말로 대량살상무기로 활용됩니다. 허나 탄약이 떨어진 상황에서는 결국 현대의 군인들도 백병전을 벌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우리가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다시 현대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결국 그 시대에 적응하고 살아가려 할 것입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누리던 현대문명의 이기利器가 없습니다. 전기와 석유 같은 에너지도 없고, 활용할 수 있는 자원도 지극히 제한적일 것입니다. 현대인들도 그것을 누리기는 하지만 실제로 스스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하다못해 칼 한자루도 스스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거대한 분업과 협업관계로 이루어진 현대산업사회의 거대한 생산력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평소 일상생활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누리던 것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그 중에서 금속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금속으로 된 자동차를 타고, 금속으로 뼈대를 세운 건물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이라 하더라도 현대인 몇몇이 금속을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현대인 여럿이 모여도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이지요. 산업의 꽃이라 불리는 제철산업을 시작하기 위해 과거 우리 정부는 국가적 역량과 자원을 총동원했지요. 그래서 생긴 제철회사가 바로 현재의 포스코입니다. 포스코를 통해 생산된 철강제품들이 비로소 각 산업분야에 공급되면서 우리는 비로소 중화학공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포스코 탄생 이전에는 어땠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철강제품들은 전량 수입품으로서 귀하신 몸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무심결에 쓰고 있는 각종 철강제품들은 주위에 흔하지만 귀하기도 한 물건들입니다.
<금속의 세계사>는 이런 철강을 비롯한 금속들의 역사를 재미있게 풀어낸 책입니다. 너무나 당연했던, 그래서 생각없이 사용하던 각종 금속들이 인류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해 줍니다. 금속이 인류의 발전과 어떻게 발맞추어 왔는지도요. 저자들은 금속공학 등을 전공한 전문가들이지만 어렵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전문가 특유의 전문성이 녹아들어가 있지만 <금속의 세계사>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와 함께 해온 7개의 금속, 즉, 구리, 납, 은, 금, 주석, 철, 수은을 각 장으로 하여 7개장으로 각각 설명합니다. 이 7개의 금속이 인류의 문명사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에 흥미가 있는 독자라면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금속은 아무래도 자연상태로 바로 사용할 수가 없는 물질이지요. 제련製鍊과 정련精鍊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순도높은 금속을 얻을 수 있고, 다시 사용목적에 따라 합금을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금속은 특수한 지위와 가치를 가졌습니다. 그것은 제사를 위한 제기가 되기도 했고, 권위를 상징하는 장신구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인명살상을 위한 무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느 쪽으로 보나 결국 인류사에서 금속은 꽤 큰 가치를 가진 물질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리나 납, 주석 같은 비귀금속도 가벼이 보기 어렵습니다.
일단 독자님들은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에 먼저 흥미를 느끼실 것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발췌해 보고자 합니다. 금이 지배하는 현대를 살고 있는 독자에게 은이 금보다 더 비싼 시절도 있었다고 하면 믿어 주실까요? 설마 그랬겠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입니다.
1940년 프랑스 출신 이집트 학자 피에르 몽테Pierre Montet, 1885~1966는 나일강 삼각주 북동부에 위치한 고대 도시 타니스에서 파라오의 무덤을 발견했다. ..... 그곳에서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유물을 하나 발견했다. 훗날 프수산네스1세를 '실버 파라오'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한 유물, 바로 파라오의 미라가 담긴 은관銀棺이었다.
혹시 지금 '은관'이라는 사실에 실망하신 분이 있다면, 아마 텔레비전이나 박물관에서 본 번쩍이는 이집트 금관을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금은 은의 70배에 달하는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실망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에서 금과 은의 가치는 지금과 상당히 달랐다는 신기한 사실을 알고 나면 그 실망이 가시지 않을까?
금속계의 능력자인 은은 고대부터 귀중한 금속, 즉 귀금속의 신분으로 극진히 모셔졌다. 특히 기원전 2500년경 이집트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는 은이 금보다 더 귀하게 대접받기도 했다. 당시에는 금이 은으로 도금되는 굴욕을 겪었고, 은으로 만든 장식의 두께는 금으로 만든 것들보다 대부분 얇았다.
- 김동환, 배석, <금속의 세계사>, 다산에듀, 2015, 113~114pp.
흥미로운 이야기지요. 지금 어디가서 은을 주면서 금을 더 많이 달라고 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헌데 실제로는 과거에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이지요. 고대에도 금은 귀한 금속 대우를 받았는데 왜 은이 더 높은 대접을 받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독자님께서 <금속의 세계사>를 통해 확인하시는 것이 작가들의 노고에 보답하는 것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으며 문명의 흥망에 큰 역할을 한 금속. 그래서 이 외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원정에서 실패한 이유, 여성들이 예뻐지기 위해 수은과 납 같은 중금속을 쓴 이유와 그 부작용 등등 일반인이 흥미로워할 이야기가 풍성합니다. 저자의 재미있지 않은 유머(...)가 분위기를 얼어붙게 하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리뷰하는 것은 일단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너무나 멀고 어렵게만 보였던 금속과학 주제를 역사와 통섭하여 일반인이 다가가기 쉽게 만들어줬다는 미덕만으로도 저자의 썰렁한 유머를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요즘 역사전쟁으로 온 나라가 편을 갈라 시끄러운 상황이지요.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우익역사관에 맞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국내의 편협한 현대사 해석에 그 방점이 찍혀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허나 일반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어렵고 지겨운 대목일 것입니다. 역사라면 머리가 아프고 재미없는 것으로 느끼는 독자들에게 <금속의 세계사>는 재미있는 역사도 있다는 반증이 되어 줄 것입니다. 역사공부의 즐거움을 독자들에게 돌려드리는 <금속의 세계사>를 역사전쟁 중에 권해드리는 이유입니다. '금속의 세계사'는 일개권력이 어찌할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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