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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Lab

<또 하나의 약속 Another Family> 시사회 관람 후기(14.01.27 - 용산CGV)




또 하나의 약속 (2014)

Another Family 
9.9
감독
김태윤
출연
박철민, 김규리, 윤유선, 박희정, 유세형
정보
드라마 | 한국 | 120 분 | 2014-02-06


한국사람들 가족이라는 말 참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가족같은'이라는 형용사를 많이 쓴다. 하다못해 아르바이트 채용공고에도 "가족같은 분위기에서 일하실 분 모집합니다"고 하지 않던가. 가족家族. 참 좋은 말이다. 요새처럼 각박한 시절에 가족처럼 온기가 느껴지는 말이 몇 마디나 될까. "아버지는 자식을 버리지 않는다"는 잠자리눈깔 김성근 감독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가족은 서로를 버리지 않는다. 가진 것이 많든 적든, 머리가 똑똑하든 모자라든, 몸이 아프든 건강하든. 인간이 살면서 겪는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서로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애정으로 똘똘 뭉친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이다.


지금도 '또 하나의 가족'이 되고 싶은 사람이 많다 ⓒbookplayground.com


자 여기 '또 하나의 가족'을 모토로 하는 기업이 있다. 그 기업의 가족이 된 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식구들 중 몇몇이 갑자기 희귀병에 걸리기 시작한다. 10만명에 한 명꼴로 발병한다는 희귀병에 걸리는가 하면, 이름조차 생소한 신종질병에 걸려 죽는 사람도 발생했다. 그런데 식구가 병에 걸리자 회사는 가족이라던 사람들에게 집에서 나가줄 것을 요구한다. 가족이라던 입장은 어느새 위압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로 뒤바뀌어 몸이 아픈 식구를 협박하고 겁박한다. 놀부가 아우 흥부네 식구를 집에서 쫓아냈던 것처럼. (관련기사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2401.html) 그리고 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편의 영화가 제작된다. '또 하나의 가족'의 잘못을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한 아버지의 <또 하나의 약속>이다.


무대인사 중인 김태윤 감독과 출연배우들 ⓒbookplayground.com


우연하게 응모한 <또 하나의 약속>의 시사회에 당첨이 되는 바람에 남들보다 조금 앞서서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김태윤 감독을 비롯 박철민, 윤유선, 박희정, 김규리 등 출연진의 무대인사를 볼 수 있었던 것 역시 시사회에 참석했기에 가능한 행운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멘트는 김태윤 감독의 "이 자리에 서기까지가 너무 힘들었고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심장한 한 마디였다. 물론 주연배우 김규리의 "여기 참석해주신 관객 한 분, 한 분이 너무나 소중하다. 이 영화는 눈이 아닌 가슴으로 봐 주시기를 부탁드린다"는 인사말 역시 그랬지만. 배우들의 말을 모두 옮길 수는 없었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이 영화를 많이 봐주시길 바란다. 꼭 잘돼야 하는 작품이다"고 입을 모았다.



극 중 아버지 한상구 역을 맡은 박철민이 딸 윤미(박희정 분)의 죽음을 지켜보고나서 노무사 유난주(김규리 분)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던 대사는 오래도록 기억이 남는다. "제가요, 여기 저기 이야기를 해봤거든요. 그런데 아무도 우리 말을 안 들어줬어요. 그런데 노무사님만 우리 말을 들어줬어요. 그래서 윤미가 고맙다고 전해달래요." 그의 말처럼 반올림(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단체)을 비롯 유가족들이 수없이 호소했지만 우리 사회는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신문도 방송도 국회의원도. 심지어 시민들도. 부끄러운 일이다. 이 억울한 실화를 영화로 보는 내내 죄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인권변호사로 시작해 나중에 대통령에까지 오르는 어느 국회의원이 초선시절 5공청문회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가 풍산금속 유찬우 대표를 상대로 뿜어냈던 사자후는 (그에 대한 사후 평가가 어쨌든간에) 명대사가 아닐 수 없다.


"항상 기업인들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 식구, 우리 가족, XX가족,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 가족이 죽었는데 3천만원, 4천만원, 8천만원 주니, 7월 25일까지만 해도 8천만원을 주니 못주니 싸우다가 며칠 지나니까 2천만원 더 올라갔는데. 아마 다부지게 누가 달라들었던 모양입니다. 돈 10억, 5년 동안에 말입니다. 34억 5천만원! 이것은 증인에게만 묻는 것이 아니고, 앞에 증언하고 간 증인들! 그리고 앞으로 증언을 하러 나올 재벌 증인들! 그 모두에게 함께 본 의원이 던지는 질문입니다.


오히려 증인은 좀 후했던 편도 있습니다. 3천만원, 후합니다. 지금까지 주어 왔던... 그러나 천만원, 이천만원, 육백만원 이래 싸가지고 돈을 주면서 어떻습니까? 증인은 기업인으로서, 이점에 관해서 한 번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는 군부에는 5년 동안에 34억 5천만원이라는 돈을 널름널름 갔다주면서, 내 공장에서, 내 돈 벌어주려고 일하다가 죽었던 이 노동자에 대해서 3천만원 주느냐 8천만원을 주느냐를 가지고 그렇게 싸워야 합니까? 그것이 인도적입니까? 그것이 기업이 할 일입니까? 답변 하십시오."


엔딩크레딧에 끝없이 이어지던 <또 하나의 약속> 제작두레에 참여한 시민들의 이름 ⓒbookplayground.com


이 초선의원의 질문이 지금의 노동현실에서도 그대로 유효하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을 스크린에 담아 올리기가 어렵다는 점 역시 여전히 유감이다. 전직 대통령을 지낸 사람의 젊은 시절을 배경으로 찍은 영화조차 은근한 견제를 받는 마당에, 거대기업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영화화 되기가 어디 그리 녹녹했을까. 여러 난관을 헤치며 이제 갓 개봉하려는 <또 하나의 가족>. 그 제작에 따른 고충은 다음의 감독 인터뷰를 읽어보면 능히 짐작해 볼 수 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3034) 1만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펀딩으로 겨우겨우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지금, 대한민국의 노동자 관객들에게 <변호인>보다는 감히 <또 하나의 약속>을 봐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시사회에 다녀온 나로서 김태윤 감독과 출연진, 그리고 반올림 가족들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이, 이 블로그에 참관기를 써서 관람을 부탁하는, 이것 밖에 없다.


故 황유미씨와 아버지 황상기씨 ⓒ반올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다시는 이런 잘못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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