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빈 소총이 말을 걸어왔다
얼마 전, 인생 마지막 예비군 훈련을 향방작계 무슨 훈련으로 마쳤다. 그 날도 어김없이 무기라도 지급된 M1 카빈 소총. (심지어 이걸로 실제 사격도 시킨다 -_-)
VIP가 시내로 나오시는 바람에 한동안 무기가 도착하지 않았다. 덕분에 한 시간 가까이 이 소총과 관련된 동대장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5.56mm 식스틴이나 K-2와는 달리 구경이 7.76mm이나 되서 파괴력은 더 강하지만 탄신이 짧아 유효사거리는 200m도 안된다(K-2가 600m쯤 되나), 미육군 기병용으로 만든 총이지만 여기서 기병이란 우리가 아는 기마병이 아니라 특수부대를 말한다는 사실, 개머리판이 나문데 잘 부러진다는 둥, 착검용 대검이 엄청 길다는 둥, 노리쇠뭉치가 노출되어 있어서 전투 현장에서는 모래 등이 들어가 기관고장이 심하다느니.... -_- (그걸 다 듣고 기억하는 내가 밀덕후라서 이러는 건 아니라능)
이제 몇 년 후면 예비군 지급 총기도 모조리 식스틴으로 바꿀 예정이라니 카빈은 곧 자취를 감출거다. 6.25 전쟁 당시 미군이 국군에 뿌리면서 이 땅에 보급된 소총이 반세기가 넘어야 사라진다는 의미.
내가 쥐고 있던 그 많은 카빈들은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해치고 퇴역하는 것일까. 전쟁 때나 4.19전 경무대 앞 발포 당시엔 분명 불을 뿜었을 것이 틀림없을 소총(사진보면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들도 이 총으로 무장했더라). 그 피묻었던 소총을 덜렁덜렁매고 나라 지킨다며 동네를 돌아다닌 나같은 예비군들은 그 피의 냄새를 조금이라도 느꼈을지 모르겠다.
문득 카빈 소총을 들고 애록고지를 향하던 악어중대가 떠오른다. 2년 반 동안의 땅따먹기로 50만명을 죽이고서도 정전(휴전)협정 발효 12시간을 앞뒀다는 이유로 또다시 죽어간 사람들. 안개 속 멀리 들려오던 <전선야곡>의 소름끼치는 비장함. (영화 <고지전>)
그렇게 카빈소총은 그 전쟁을, 그 피와 살점을, 그 기억을, 그 노래를, 그 영화를 뒤로 하고 퇴역한다. 그 빈자리는 더욱 강력하고 무서운 살상무기들이 이어받을 것이다. 우리는 카빈소총을 쏘며 한 뼘의 땅을 놓고 피비린내 나게 다투던 그 전쟁으로부터 발전했는가? 그 날을 기억하자며 정작 인간이 배운 건 무엇인지는 잊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