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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의 속사정 - 이순혁] 당위를 넘어선 검찰 개혁

한량의독서 2012. 3. 9. 23:24


검사님의 속사정

저자
이순혁 지음
출판사
씨네21. | 2011-12-12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산 권력엔 충성하고 죽은 권력엔 냉혹한 대한민국 검찰의 부당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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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의 속사정은 한겨레신문 법조팀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순혁 기자가 집필한 책이다. 현장에서 현직 검사들과 부대끼면서 쌓은 내공은 저자를 민간 검찰전문가로 성장시킨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조직과 생리,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는 이만큼 솔직함과 깊이를 보여준 책은 없었기 때문이다. (검사나 판사 출신 저자들이 집필한 책들은 은연 중에 검찰이나 법원에 대해 함구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

저자는 검찰개혁을 외치면서도 검찰에 대해서는 너무 모르고 당위성만을 내세우는 주장을 보고 집필을 마음먹었다고 한다.

검찰에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의 핵심은 무엇이고, 이 핵심이 검찰 내외부의 어떤 사안들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돼 작동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우선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검찰에 대한 논의는, 이런 맥락에 대한 분석보다는 검찰을 싸잡아 옹호하거나 싸잡아 비판하는 이들이 나뉘어 대립하는 것 같았다. (p.270)

학계와 언론, 정치계 등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검찰 개혁을 외친다. 또 한편에서는 검찰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있다. 저자는 양쪽이 모두 왜 검찰 개혁을 해야하고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목표해서 해야 하는가에 대한 기획이 부족하다고 본 듯 하다. 생산

성 없는 정치적 구호로 '상대를 수사하면 정의, 내가 수사당하면 표적수사'란 이중적 잣대는 이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같은 검찰, 같은 법원에서 내는 기소나 판결도 어디에 유리한가만 따지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나름 편리한 이 방식에는 일관된 논리가 없다. 검찰이나 법원 개혁이 같은 방식으로 진행될 경우, 주도하는 세력의 입맛에 맞는 '무늬만 개혁'이 될 거란 예상을 어렵지 않게 해볼 수 있다.

저자는 어떤 사람이 검사가 되는가부터 검찰의 조직, 검찰의 인사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통해 '검찰조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검찰조직이 어떤 곳이 어떤 생리를 지니고 있는지를 모르는 일반인에게는 매우 유용한 대목이다. 현장을 뛴 기자출신 저자답게 디테일이 살아있는 컨텐츠가 독자들을 유혹한다. 검사들의 음주습관 묘사는 그 중의 백미다. 머신을 쓸 정도로 폭탄주에 대한 애정은 각별해 보였다. 영화 '부당거래'에서 주양 검사(류승범 분)를 왜 '주프로'라 불렀는지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특히, 검찰조직이 왜 검찰총장 인선과 검찰인사에 예민한지를 설명한 인터뷰는 꽤나 인상적이었다.

이 법조인은 "(검찰을)나와서 보니 말이야, 매년마다 한 기수 검사 전체를 '나래비' 세우는 한 검찰은 안 바뀐다"고 단언했다. (p.247)

검찰에서 퇴직했다는 한 간부의 말이다. 피라미드적 구조로 상명하복이 뚜렷한 검찰조직에서 결국 주도권을 갖고 검찰을 대표하는 검찰 내 10% 엘리트가 왜 승진에 목을 매고, 인사에 영향력을 가진 정권핵심부와 은밀한 커넥션을 유지하는지 함축적으로 설명한 부분이다. , 검찰개혁이 어느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 경찰의 수사권 향상과 기소담당 특별청 신철을 통한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 전국적으로 일원적인 검찰조직을 혁파해 지방마다 독립적인 검찰청 운영 등 현실적이고 유용한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 부분을 눈여겨 본다면 현재 검찰조직의 문제점과 그 개혁방안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발로 뛰면서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한 기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마지막으로 3장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수사했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가 사석에서 했다는 말을 옮긴다.

이와 관련해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사석에서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참여정부 시절 장,차관에 총장을 지냈던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노 전 대통령 수사가 진행될 때 그 가운데 나에게 전화 한 통 걸어온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정치인이건 재벌이건 검찰조사를 받게 되면 그쪽에서 어떤 창구를 통해 연락이 오고 사전에 조율을 거치는 법이다. 그쪽으로서는 최소한의 상황파악은 해야 하고, 우리로서도 예우라든지 해줄 수 있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통 수사 때는 하다못해 '이거 어떻게 돼가는 것이냐'고 물어온 이조차 단 한 명도 없었다." (p.228)

노 전 대통령 수사를 담당했던 이인규 전 중수부장도 적지않이 놀란 눈치다. 선거철이 다가오고 야권에서는 너나없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기에 더욱 쓸쓸하다. 정치적 올바름을 차치하고, 자신을 위해 빵에도 다녀온 장세동을 거느린 전두환은 분명 노 전 대통령보다는 나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부채는 애써 외면하거나 변명하면서 자산을 승계하려는 사람들은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말을 보고 어떤 감정을 느낄지 자못 궁금하다.

요새 SBS에서 방영하는 '샐러리맨 초한지'란 드라마가 있다. 드라마에서 재벌총수인 진시황 회장(이덕화 분)이 후계를 두고 실명한 듯한 연기를 하자 측근들은 바로 비리와 암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이를 직접 확인한 진회장이 인간적인 배신감과 외로움을 토로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아마 노 전 대통령도 많이 외로우셨을거다. 부엉이바위에 서서 담배를 한 대 달라던 그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먹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