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꾸는 책 읽기 - 정혜윤] 매혹의 독서가가 안내하는 독서 그리고 삶의 여행
나는 옷 사는데 굉장히 인색하다. 화장품이나 액세서리, 먹는 것 등을 구입하는데도 인색한 편이다. 하지만 유달리 지갑을 잘 여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서점이다. 반빈민의 상태로 연명하던 대학시절에도 대학교재만큼은 꼭 정가주고 새교재를 구입하는 편이었다. 그러고는 책값만큼 굶거나 못먹었다. 그러고도 방학에 등록금 벌겠다고 서점으로 알바를 가서 월급의 절반 이상을 책으로 사서 돌아오는 괴짜기도 했다. 너무 책을 사서 읽다보니 방이 좁아져서 어쩔 수 없이 중고책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지만(그 때 팔았던 책 중에 가장 아깝게 생각하는 책은 <살아있는 아프리카의 역사>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이다. 다 읽고 팔고서도 한참이 지난 요새 다시 주목을 받는 걸 보며 왜 팔았을까 후회 중...) 한 번 산 책은 잘 간수하는 북컬렉터이기도 하다. 나는 왜 이런 짓을 하며 살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릴 적 기억들이 살아나며 그 실마리가 잡혔다.
80년대에는 계몽사 등 출판사에서 영업직원이 직접 가정을 방문하며 전집류를 파는 일이 흔했다. 세계문학전집에서부터 한국사 시리즈 등등 그 종류도 다양했는데 난 이 전집 한 질을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하지만 남의 집에 방 한 칸짜리 전세로 산다는데 스트레스를 받던 어머니는 '내 집 마련'이라는 지상목표를 위해 나의 소원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저 어머니의 지상목표를 위한 주택청약부금을 붓기 위해 시내에 있는 은행을 갈 때 같이 따라나가서 민중서관, 홍지서림 등에서 고르고 고른 한 권의 책을 받아드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받아든 한 권의 동화책과 소설(지금도 있는지는 모르나 나는 <예림당>에서 낸 동화책의 광팬이었고 그 시리즈의 동화책을 10권이상 모으기도 한 매니아였다!)은 책에 고픈 꼬마에게 가뭄 속 단비와 같았다.
조금 더 큰 다음에도 맘대로 책을 살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작전을 바꿨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거의 절대적으로 '노는 시간'이었던 방학에 학원조차 보내지 않는 집안 분위기에 편승해 친구집 원정을 다녔다. 목표는 전집류가 잘 갖춰진 책 많은 친구들 집이었다. 이 친구들은 책이 많아서 그랬는지 관심도 없었고 읽지도 않았다. 나는 옳다구나 친구네 집으로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하며 그 책들을 읽어댔다. 퇴근할 때는 등에 빌린 책들을 가득 메고서 집으로 향했다. 친구 부모님들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내 유년 시절의 독서는 순전히 그 분들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어느 날에는 마구 읽어대던 책들을 앞에 두고 '내가 이걸 왜 읽는가'를 고민하게 됐다. 누군가는 진학과 스펙쌓기, 취직, 승진 등을 위해서 실용서를 읽느라 정신없었다. 또 써클에서 만난 누군가는 상대방을 논박하고 공격하기 위해 책을 읽고 있었다. 또 누구는 어느 누가 내린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울면서) 손에 책을 쥐고 있었다. 과연 나는 어떤 목적으로 책을 읽는 것일까? 사교육 제로(실제로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단 한 번도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의 현실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이었을 수도 있고, 단순히 공부하는 것보다는 재미있어서였을 수도 있다. 아직도 정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두 가지 정도가 유력한 이유로 좁혀져 있다. 첫 번째는 독서가 가장 저렴하고 오래가는 놀이이기 때문이고(독서는 비용 대비 효율이 높은 놀이다. 오래 읽어야 되고 몇 번이고 읽을 수 있기 때문...), 두 번째가 천성적으로 타고난 '왜?'라는 호기심을 충족할 답을 찾아가는 자기만족의 탐구과정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여튼 반버릇, 반재미로 해오던 책과의 인연에 신선한 관점을 던지는 책을 발견하고 핫식스 한 병 원샷한 느낌을 받았다. 핫식스는 정혜윤의 신간 <삶을 바꾸는 책 읽기>였다.
저자인 정혜윤을 실제로 본 적은 딱 한 번 있다. 그는 당시 <여행, 혹은 여행처럼>을 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았었는데, 엉뚱하게도 그를 만난 것은 신촌 서강대 옆 어느 북카페에서 금태섭 변호사의 책 <확신의 함정> 출간을 기념한 북토크였다. 북토크가 금 변호사와 정혜윤 PD의 대담식으로 진행되고 질문을 받는 형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정 PD가 참석했던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에 정혜윤 PD를 몰랐다. 첫인상은 '나이를 측정하기 어렵지만 마성의 매력을 지닌, 야하면서 매력적인 여자' 정도였다. (평소에도 그러시는지는 모르지만 의상이 아주 센세이션했다. 이번 책표지와 거의 비슷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두 시간이 넘는 북토크 동안 그에 대한 생각은 또다른 모습으로 변신했지만 강렬했던 첫 인상만큼은 또렷이 기억나는건 어쩔 수 없다. 그 영향인지 이후 <침대와 책> 등 정혜윤 PD가 쓴 책을 몽땅 사들여 읽었다. 그의 글은 몽환적이면서도 분명했고 그러면서도 향기가 났다.
이번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역시 그렇다. 저자가 쌓아온 독서의 깊이가 느껴짐은 물론 저자 특유의 향기가 글 곳곳에서 풍겨난다. 책의 표지에는 '세상 모든 책을 삶의 재료로 쓰는 법'이라는 글귀가 씌여져 있다. 차례를 확인해 보면 여덟 개의 질문과 한 개의 비밀질문으로 나뉘어진 챕터를 확인할 수 있는데 어설픈 독자라면 이 책을 독서를 위한 자기계발서 쯤으로 착각하기 쉬운 외관이다. 하지만 <삶을 바꾸는 책 읽기>는 결코 시중에 떠도는 싸구려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실제는 유명한 독서가인 정혜윤이 '책읽음과 우리의 삶'이라는 주제로 8가지 질문을 통해 더 나은 삶과 독서를 위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루에 책 두 권 읽기를 가능케 하는 생활습관'같은 엉터리 자기계발서를 찾아오셨다면 번지수 잘못 찾으셨으니 속히 돌아가시라고 전해드리는 바이다.
천년 묵은 산삼도 이를 알아보는 명의에게 가야 최고의 약재가 되는 것이지, 동네 주막집 아낙에게 쥐어지면 도라지로 보여 초장이 발라져 무침이 되는 비극적 운명에 처한다 했던가. 발터 벤야민, 니코스 카잔차키스, 레프 톨스토이 등 다양한 작가들이 풀어놓은 이야기 중 명약을 골라내 적재적소에서 탕약을 달이는 정혜윤의 모습에서 명의의 모습을 본다. 책과 우리의 삶에 대한 8+1개의 질문에 대답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가 인용한 작가들과 그 작품들(그는 '스승'을 만났다고 표현한다)은 독자가 놓치기 쉬운, 그러면서도 정혜윤만의 색깔이 잔뜩 묻어나는 의미있는 내용들이다. 물론 바로 답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각 문제에 대해 고민한 작가와 그 내용을 선정한 정혜윤의 배려로 독자는 다시금 작품을 생각하게 되고 삶을 생각하게 되고 책을 다시 보게 된다. 그 감칠맛이 <삶을 바꾸는 책 읽기>가 지닌 매력이라 생각한다. (책 마지막에는 '책속의 책'이라 해서 인용한 책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수만 100여권 이상이다)
하지만 <삶을 바꾸는 책 읽기>가 단순히 어느 독서가의 독서량 자랑 정도로 끝나는 책은 아니다. 라디오PD이자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 인간 정혜윤이 만난 사람들과 겪은 경험들이 찬찬히 소개되어 자못 딱딱해질 수 있는 책을 유연하게 만들어준다. 책에서 정혜윤 역시 말하지만, 결국 책은 따로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우리네 삶이 존재하는 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정혜윤은 자기가 만났던 사람들과의 경험들을 소개하면서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과 그네들의 삶이 자신이 읽은 책과 괴리되어 있지 않음을 전하고 있다. 자칫 거실 벽 박제된 동물처럼 딱딱해질 뻔 했던 <삶을 바꾸는 책 읽기>가 36.5도의 체온을 갖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삶과 인간, 사회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은 매력적인 독서가가 뿌려놓은 애정과 관심의 씨앗들은 독자가 첫 장을 펼 때 싹을 틔우고 글을 읽는 동안 꽃을 피워 책장을 덮을 때쯤에는 향기가 되어 독자에게 전해진다.
풍요롭지만 빈곤한 시대, 외롭지만 사랑하기 두려워하는 사람들, 매번 행복보다는 불행을 전하는 사회. 누구나 막연한 불안에 떨고, 외로움에 몸서리치지만 비상구를 찾지 못하고 떠도는 이들에게 정혜윤은 슬며시 스스로를 사랑하자고, 그래서 삶을 회복하자고 권한다. 그리고 그 치유방법으로 책을 드는 것이 어떠냐고 묻고 있다. 그 놀라운 치유와 삶의 회복에 대해 알고 싶다면 <삶을 바꾸는 책 읽기>를 펼쳐보길 바란다. 정혜윤이 대답한 8+1가지의 질문들은 다름아닌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매일 같이 던지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난 왜 불안하지?', '난 위로가 필요하다구!' 등등. 독서를 통해 그 정답을 알 수는 없지만 원래 그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독서가 당신이 '당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안내할 따름이다. 주위의 어설픈 충고나 순간적인 정신적 자기위안만을 제공하는 자기계발서에 충분히 속은 당신이라면 다시 책으로 돌아오라. 그리고 그 안내는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를 통해 받으면 된다. 적지 않은 위로와 자신감을 얻게 될 것이다. 여기 <삶을 바꾸는 책 읽기>가 삶을 소중히 여기고 책을 통해 길을 찾아 삶을 회복하려는 사람들을 기다린다.
(아래 동영상은 저자직강으로 서비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