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사비) 기행 - 2] 백제의 여운을 느꼈던 정림사지와 궁남지 (13.02.02)
1부에 이어서 2부를 계속해볼까 한다. 어렵사리 유람선(이라고 쓰고 실제는 통통배다)을 탔다.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선착장을 떠나자마자 금방 낙화암과 멀어졌다.
낙화암을 뒤로 하고....
반대편으로 다른 유람선이 떠나고 있다. 마치 기차를 타고 갈 때 옆 선으로 반대편 열차가 지나는 듯하다.
넘실대는 백마강물이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하게 느껴진다.
때마침 선내에는 '백마강'이란 곡이 흘러나온다. 노래를 아는 어르신들은 흥겹게 흥얼거리신다.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에 종소리가 들이어 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꿈이 그립구나.
아~아 달빛 어린 낙화암에 그늘아래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철갑옷에 맺은 이-별 목메어 울면
계백장군 삼척님은 님사랑도 끊었구나
아~아 오천결사 피를흘린 황산벌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선미에서 바라본 백마강. 황금빛이 강물에 뿌려져 눈부시다.
작은 배 답게 키도 조그만해서 귀엽다.
구드래 포구에 내려 바라본 백마강 북쪽의 풍경. 강가의 난개발이 없어서 평온하고 아름답다.
포구에서 걸어나와 정림사지로 향했다. 푹신한 흙길이 걷기에 더없이 좋았다.
걸음이 빨라서인지 구드래 포구에서 얼마 걷지 않으면 금새 부여읍내에 위치한 정림사지에 닿을 수 있다.
정림사지 5층 석탑과 정림사지가 한 눈에 보인다. 정림사지는 원래 정확한 이름은 모르나 이 절터에서 발견된 기와에 적힌 '정림사지定林寺址'라는 글자를 보고 추정한 것이라 한다. 박물관은 시간이 부족해 다음을 기약했다. 절터의 규모로 봐서 백제왕성에 자리한 대규모 절이었음을 충분히 추측해볼 수 있다. 또한 정림사지 5층석탑은 백제의 목탑이 석탑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양식이라고 한다(는데 나는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불타버린 절터에 저 탑 하나만 덩그러니 오늘까지 남게 된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터만 남은 정림사지를 지나 궁남지宮南池로 향했다. 이번 기행의 마지막 코스였다.
이미 해는 서쪽으로 뉘엿뉘엿 지고 있는 시간이었다.
여름에는 연꽃이 피어 아름다운 호수지만 겨울에는 쓸쓸한 갈대만이 부스스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인적 역시 드물었으나 오히려 조용하고 한적해서 좋았다.
갈림길이 많았다. 마치 인생의 여로처럼. 이 사거리에서 우린 어떤 길을 택하는 걸까. 그 선택이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를 만들게 될 것이다. 선택의 연속인 이 길처럼 우리의 삶도 녹녹치 않다.
멀리 정자가 보인다. 오래 전 이곳에서 먹고 마시며 즐겼던 이들은 지금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존재가 됐을 터이다. 지나버린 세월과 흔적도 없는 그들의 영화를 생각해보면 덧없기 짝이 없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궁남지를 마지막으로 부여기행은 마무리 됐다.
오후 내내 걸었더니 다리가 피로했다. 궁남지를 벗어나 걷다보니 작고 예쁜 가게가 보였다.
부여까지 와서 프랜차이즈(역시 여기도 카페ㅂㄴ가 들어와 있더라)를 가기는 싫어서 고민하던 중 횡재했다. 작고 아담한 카페를 보자마자 고민하지 않고 들어갔다.
대도시 카페 못지 않다. 깔끔하고 섬세한 내부가 맘에 든다.
카푸치노 한 잔을 시켜놓고 지친 다리를 쉬며 책을 읽었다. 여행과 책도 제법 잘 어울린다.
밤이 으슥해져서야 나왔다. 이미 다리의 피로도 말끔히 풀렸고 상경할 버스 시간도 거의 다 됐다.
카페에서 터미널로 가는 길에 동네빵집이 있어서 찍어봤다. 손님도 많고 맛도 있어 보이고... 아직도 프랜차이즈 빵집에게 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빵집이 있어서 반가웠다. 이름도 부여와 어울리는 백제당. 오래도록 지역 주민들에게 몸에 좋고 맛있는 빵 만들어 주시길.
이제 정말 떠나야 할 시간. 15년 전에 왔었고 오늘 왔으니 언젠가는 다시 만날 날도 있겠지요. 아쉬워 마세요. 인연이라는 것은 또 모르는 거니가요. 잘 지내요 부여.
다시 소돔과 고모라도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의 욕망과 한숨과 탄식이 가득 쌓여 있는 이곳을 다시 바라보니 소금기둥이 되버릴 것 같았다. 진정한 부여기행의 끝이자 마무리. 힘내자 다시.